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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1.24)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1-24 조회수1,445 추천수8 반대(0) 신고

 


2019년 1월 24일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제1독서 히브 7,25―8,6

형제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25 당신을 통하여 하느님께

나아가는 사람들을 언제나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늘 살아 계시어

그들을 위하여 빌어 주십니다.
26 사실 우리는 이와 같은

대사제가 필요하였습니다.

거룩하시고 순수하시고

순결하시고 죄인들과

 떨어져 계시며 하늘보다

 더 높으신 분이 되신

대사제이십니다.

27 그분께서는 다른 대사제들처럼

날마다 먼저 자기 죄 때문에 제물을

바치고 그다음으로 백성의 죄 때문에

 제물을 바칠 필요가 없으십니다.

당신 자신을 바치실 때에 이 일을

단 한 번에 다 이루신 것입니다.

28 율법은 약점을 지닌 사람들을

 대사제로 세우지만, 율법 다음에

이루어진 맹세의 그 말씀은 영원히

완전하게 되신 아드님을

 대사제로 세웁니다.
8,1 지금 하는 말의 요점은

우리에게 이와 같은 대사제가

 계시다는 것입니다.

곧 하늘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어좌 오른쪽에 앉으시어,

2 사람이 아니라 주님께서

세우신 성소와 참성막에서

직무를 수행하시는 분이십니다.
3 모든 대사제는 예물과 제물을

바치도록 임명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대사제도 무엇인가

바칠 것이 있어야 합니다.

4 만일 그분께서 세상에 계시면

사제가 되지 못하십니다.

 율법에 따라 예물을 바치는

사제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5 모세가 성막을 세우려고

할 때에 지시를 받은 대로,

그들은 하늘에 있는 성소의

모상이며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성소에서 봉직합니다.

하느님께서 “자, 내가 이 산에서

 너에게 보여 준 모형에 따라

모든 것을 만들어라.” 하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6 그런데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더 훌륭한 직무를 맡으셨습니다.

더 나은 약속을 바탕으로 세워진

 더 나은 계약의 중개자이시기

때문입니다.

복음 마르 3,7-12

그때에

 7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호숫가로 물러가셨다.

그러자 갈릴래아에서

큰 무리가 따라왔다.

또 유다와 8 예루살렘,

이두매아와 요르단 건너편,

그리고 티로와 시돈 근처에서도

그분께서 하시는 일을

전해 듣고 큰 무리가

그분께 몰려왔다.
9 예수님께서는 군중이

당신을 밀쳐 대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시려고,

당신께서 타실 거룻배

한 척을 마련하라고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10 그분께서 많은 사람의

병을 고쳐 주셨으므로,

병고에 시달리는 이들은

누구나 그분에게 손을

대려고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11 또 더러운 영들은 그분을

보기만 하면 그 앞에 엎드려,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12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하게 이르곤 하셨다.

처음 신학교에 들어가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공부를 못하면

신부가 될 수 없는데,

그렇다고 밤늦게까지

공부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이야 제가 새벽형

인간이 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올빼미형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무조건 밤 11시에

잠을 자야한다는 것이 크게

불합리해 보였습니다.

더군다나 시험 때에도

이 규칙을 어겨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시험 때에는 교칙을

어기고 일탈(?)을 하는

 신학생들이 생깁니다.

물론 저 역시 마찬가지였지요.
합법적으로 불을 켤 수 있는

화장실에서 공부를 하기도 하고,

머리에 쓰는 등산용 헤드 랜턴을

구입해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공부하는 사람도 있었지요.

한 친구는 옷장 안에 쪼그려

앉아서 공부하다가 옷장 문이

 안에서 열리지 않아서 아침에서야

친구의 도움으로

 탈출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어디에서

몰래 공부했을까요?

등잔 밑이 어둡지 않을까 싶어서

함께 모여 공부하는 연학실에서

 새벽에 일어나 공부했습니다.

저 말고도 몇몇 친구들이

더 있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연학실에서

시험공부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꼼짝마~~”라는

큰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담임신부님이셨습니다.

신부님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어떠했을까요?

신부님이 반가웠을까요?

아니면 두려웠을까요?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이렇게 두려움을 가지고

신부님을 만나게 되었을 때에는

고개조차 들 수가 없습니다.

절대로 신부님은 가까운 분이

아니라 아득하게 먼 분이 됩니다.

하지만 기쁨을 가지고 신부님을

만나게 될 때는 어떨까요?

계속해서 신부님 얼굴만

 보고 싶습니다.

너무나도 가까운 분이고

그 순간이 행복합니다.

이때를 떠올리면,

주님을 만나는 것도

두려움으로 만나고 있는지,

기쁨으로 만나고 있는 지가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두려움으로 만날 때에는

내 자신이 잘못이나

죄를 지었을 때였습니다.

그러나 기쁨으로 만날 때에는

내 자신이 칭찬받을 일을 했거나,

 사랑으로 다가설 수

있을 때였습니다.
더러운 영들은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정답을 말했다고 예수님께서

칭찬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엄하게

함구령을 내리십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당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 것은

잘 하는 것이 아닐까요?
더러운 영들은 예수님 앞에

두려움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 앞으로는 두려움이 아니라

기쁨으로 다가와야 합니다.

이를 위해 죄로부터 멀어진 삶,

 주님의 뜻인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통해서 주님 앞에 기쁘게

나아갈 수가 있게 됩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분명히

칭찬하실 것입니다.
주님 앞에 어떤 모습으로

나아가고 계십니까?

기쁨입니까? 두려움입니까?

백 퍼센트 행복은 없다.

 하지만 우리가 만들어 낸

 기쁨은 분명히 존재한다.

(크레이그 데이브드슨

(예수님께 기쁨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는

‘할부’로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자동차를 구입하는 방법은

일시불과 할부를 통해서

구입하는 것이 있습니다.

(리스나 렌탈 등은 제외하겠습니다).

물론 일시불로 현금을 내고서

구입하는 것이 제일 좋겠지만,

그렇게 큰 현금이 없을 때에는

할부를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매달 할부 금액을

충분히 낼 수 있겠다 싶으면

할부 구입을 선택합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일시불로 새차를 구입하는 것처럼

 순교를 하거나 성인처럼 살아서

곧바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면

가장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그래서 주님께서는 사랑의

삶을 통해서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또 다른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거룩한 삶이라는 높고 큰 가치를

특별한 사람만 얻을 수 있다고

생가하면 평범한 사람들은

쉽게 포기할 것입니다.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겠지요.

그러나 주님께서는 작은 사랑의

실천까지 모두 받아주십니다.

자동차 할부금을 내듯이,

일상의 작은 사랑의 실천으로도

 충분히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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