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19년 1월 25일(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여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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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19-01-25 | 조회수1,133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19년 1월 25일 금요일 [(백)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 바오로 사도는 소아시아 킬리키아 지방의 타르수스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율법을 엄격히 준수하도록 교육받은 철저한 유다인이었다.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던 그였으나,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하고 극적으로 회심한 뒤 그리스도의 사도로 변신하였다. 교회가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을 별도로 지내는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발현으로 이루어진 그의 회심이 구원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바오로 사도는 많은 이방인의 눈을 뜨게 하여 그들을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세력에서 하느님께 돌아서게 하였다. 말씀의초대 바오로는 백성에게, 신자들을 박해하던 자신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사도가 된 경위를 말한다(제1독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고 하신다. ◎제1독서◎ <일어나 예수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며 세례를 받고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말씀입니다. 22,3-16 백성에게 말하였다. 태어났지만 이 도성 예루살렘에서 자랐고, 조상 전래의 엄격한 율법에 따라 교육을 받았습니다.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새로운 길을 박해하여, 감옥에 넣었습니다. 나에 관하여 증언해 줄 수 있습니다. 가는 서한까지 받아 다마스쿠스로 갔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끌고 와 다마스쿠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번쩍이며 내 둘레를 비추었습니다.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고 하고 여쭙자, 이르셨습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다.’ 빛은 보았지만, 소리는 듣지 못하였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내가 여쭈었더니, ‘일어나 다마스쿠스로 들어가거라. 모든 일에 관하여 일러 줄 것이다.’ 앞을 볼 수가 없어, 다마스쿠스로 들어갔습니다. 사람이 있었습니다. 독실한 사람으로, 좋은 평판을 받고 있었습니다. 하고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를 보게 되었습니다. 말하였습니다. 당신을 선택하시어, 의로우신 분을 뵙고 소리를 듣게 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그분의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받들어 부르며 세례를 받고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화답송◎ 시편 117(116),1.2ㄱㄴ (◎ 마르 16,15 참조) 복음을 선포하여라. 모든 민족들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모든 겨레들아. ◎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주님의 진실하심 영원하여라. ◎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여라. ◎복음환호송◎ 요한 15,16 참조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아 세웠으니, 가서 열매를 맺어라. 너희 열매는 길이 남으리라. ◎복음◎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여라.> 음입니다. 16,15-18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시어 15 그들에게 이르셨다.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 표징들이 따를 것이다.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으며, 병이 나을 것이다.” ◎오늘의묵상◎ 오늘은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본디 교회를 박해하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그런 그를 선택하시어 복음 선포의 선봉장으로 삼으셨습니다. 교회 안에도 많은 인물이 있었을 텐데 교회를 박해하던 바오로를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오로만큼 ‘열정적’인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목숨을 내어던질 줄 아는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눈이 멀었다는 것은, 열정이 어떻게 사람의 눈을 멀게 만드는지 잘 보여 줍니다. 사랑은 눈멀게 합니다. 눈이 멀지 않았다면 덜 사랑하는 것입니다. 믿는 것을 위해서는 앞뒤 안 가리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차갑거나 뜨거운 것을 좋아하시지 미지근한 것을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묵시 3,16 참조) 사람이 미지근해지는 이유는 열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옆을 보지 못하게 눈을 가린 말처럼 앞만 보고 달려갈 수 있어야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잘못되었다면 바오로처럼 주님께서 바로잡아 주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말을 듣고 “머물까, 떠날까?”만을 고민했다면, 결코 홍해를 건너지 못했을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려면 ‘결단’이 필요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지금도 바오로 사도와 같은 열정적인 인물을 찾고 계십니다. 교회 안에 없으면 밖에서라도 찾으실 것입니다. “‘적당히’ 믿는다.”란 말은 믿지 않는다는 말과 같습니다. 배우자를 어떻게 적당히 믿을 수 있겠습니까? 바오로는 믿음을 위해서는 적당히 할 줄 몰랐기에 위대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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