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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1.25)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1-25 조회수1,476 추천수8 반대(0) 신고

 


2019년 1월 25일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

제1독서 사도 22,3-16

그 무렵 바오로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3 “나는 유다 사람입니다.

킬리키아의 타르수스에서

태어났지만 이 도성

예루살렘에서 자랐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조상 전래의 엄격한

율법에 따라 교육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모두

그렇듯이 나도

하느님을 열성으로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4 또 신자들을 죽일 작정으로

이 새로운 길을 박해하여,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포박하고

감옥에 넣었습니다.

5 대사제와 온 원로단도

나에 관하여

증언해 줄 수 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서 동포들에게

가는 서한까지 받아

 다마스쿠스로 갔습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고 와 처벌을

받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6 그런데 내가 길을 떠나

정오쯤 다마스쿠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큰 빛이

번쩍이며 내 둘레를

비추었습니다.

7 나는 바닥에 엎어졌습니다.

그리고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고 나에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8 내가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

하고 여쭙자, 그분께서

나에게 이르셨습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자렛 사람 예수다.’

9 나와 함께 있던 이들은

빛은 보았지만,

나에게 말씀하시는 분의

소리는 듣지 못하였습니다.
10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내가 여쭈었더니,

주님께서 나에게 이르셨습니다.

‘일어나 다마스쿠스로

들어가거라. 장차 네가 하도록

결정되어 있는 모든 일에 관하여

거기에서 누가 너에게

일러 줄 것이다.’
11 나는 그 눈부신

빛 때문에 앞을 볼 수가 없어,

나와 함께 가던 이들의 손에

이끌려 다마스쿠스로

들어갔습니다. 1

2 거기에는 하나니아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율법에 따라 사는

독실한 사람으로, 그곳에 사는

모든 유다인에게 좋은 평판을

받고 있었습니다.

 13 그가 나를 찾아와 앞에 서서

‘사울 형제, 눈을 뜨십시오.’

하고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그 순간 나는 눈을 뜨고

그를 보게 되었습니다.
14 그때에 하나니아스가

 말하였습니다.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선택하시어,

그분의 뜻을 깨닫고 의로우신 분을

뵙고 또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게 하셨습니다.

15 당신이 보고 들은 것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그분의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16 그러니 이제

무엇을 망설입니까?

일어나 그분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며 세례를 받고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복음 마르 16,15-18

그때에 예수님께서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시어

15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16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

17 믿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표징들이 따를 것이다.

곧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

18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으며,

또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

한 관광객이 어느 도시를

지나가다가 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현자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그는 유명한 현자의 집에

 들어가서는 깜짝 놀랐습니다.

 현자의 집은 초라한 방 한 칸에

가구라고는 책상과 의자 한 개만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혹시 다른 곳에 가구들이

 있는가 싶어서 “현자님,

구들은 어디 있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이 물음에 현자는 뜬금없는

질문을 합니다.
“당신의 가구는 어디에 있지요?”
“제 거요? 당연히 제 집에 있지요.

저야 이곳에선 그저 지나가는

나그네 아닙니까?”
이에 현자는 말합니다.
“나도 그렇소.”
소유하고 있는 많은 것들에

대해 놓지 못하는 집착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이는 내 자신이 이 세상의

나그네라는 점을

잊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유에는 물질적인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나를 드러내고 싶어 하는 마음,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

쉽게 판단하고 단죄하는 마음

등도 소유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어차피 이 세상 삶을 마치고나면

모든 것을 두고 떠나야 한다는 것은

 변함없는 진실이지요.

그럼에도 왜 이다지도 많은

소유에 집착하고 있을까요?

이런 집착이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갈 수 없도록 만듭니다.

지금의 집착하는 내 모습을 내려놓고,

 대신 철저히 주님의 뜻에 맞춰 사는

삶이 바로 회심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은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원래 예수님을

박해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박해했던 이유는 예수님은 틀렸고,

율법을 철저히 따르는 자신의 생각이

맞다는 집착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 뜻에만

맞춰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얼마나 큰 죄책감에 시달렸을까요?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사실,

그것도 모자라 하느님을 박해까지

했으니 도저히 주님 앞에 얼굴을

들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과거 자신의

 모습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런 자신까지도 선택해서

당신의 일꾼으로 삼는

주님의 사랑을 발견했고,

그래서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의 일을

하는데 자신의 모든 것을 봉헌합니다.

 즉,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라는 주님 말씀을 따라,

이방인의 사도로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이 바오로의 회심을 바라보면서,

지금 내 자신이 내려놓을 것은

무엇인지를 떠올려 보았으면 합니다.

나중에 이 세상을 떠날 때에는

 어떤 아쉬움도 없이 주님 앞에

기쁘게 나아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죄는 취소될 수 없다.

다만 용서될 뿐이다.

(스트라빈스키)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하루 15분

사는 게 너무 바빠서

하루 단 15분도 주님을

생각하지 못하고 지내는 날이

수두룩하다고 하지요.

그런데 살레시오 수녀회를 창설한

마리아 도미니카 마잘레로 성녀는

이런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큰일 났습니다.

오늘 저는 하루 동안

15분이나 주님을 생각하지

않고 지냈습니다.”
큰 반성을 하게 하는

 성녀의 말입니다.

 성녀는 주님께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생각하지 않은

 15분이 죄송한 마음이었지요.

그런데 우리들은 하루 15분만

주님을 생각해도 대단하다고

평가하곤 합니다.

바쁨 삶에서 이 정도만 해도

어디냐면서 말이지요.
진정한 봉헌의 삶을 살기는

 힘들다 해도 그러한 노력은

해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 않고 그냥 포기한다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지만,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다면

조금이나마 변화되는 내 자신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개인 피정을 모두 마치고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갑니다.

이번 피정 동안 제일 많이

묵상할 수 있었던 것은

봉헌이었습니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만을

봉헌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살았던 것은 아니었는지를

크게 반성할 수 있었고,

이제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는

참된 봉헌을 해보자는 다짐을

할 수 있었습니다.

래서 기쁜 마음으로

다시 갑곶성지로 돌아갑니다.

(4박 5일간 피정을 했던

성바오로 피정의 집과 수녀원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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