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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1.27)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1-27 조회수1,437 추천수8 반대(0) 신고

 


2019년 1월 27일

연중 제3주일

제1독서 느헤 8,2-4ㄱ.5-6.8-10

그 무렵

2 에즈라 사제는 남자와 여자,

그리고 말귀를 알아들을 수 있는

모든 이로 이루어진 회중 앞에

율법서를 가져왔다.

때는 일곱째 달 초하룻날이었다.

3 그는 ‘물 문’ 앞 광장에서,

 해 뜰 때부터 한낮이 되기까지

남자와 여자와 알아들을 수 있는

이들에게 그것을 읽어 주었다.

백성은 모두 율법서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4 율법 학자 에즈라는 이 일에

쓰려고 만든 나무 단 위에 섰다.

 5 에즈라는 온 백성보다

높은 곳에 자리를 잡았으므로,

그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책을 폈다.

그가 책을 펴자 온 백성이 일어섰다.
6 에즈라가 위대하신

주 하느님을 찬양하자,

온 백성은 손을 쳐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였다.

그런 다음에 무릎을 꿇고 땅에

엎드려 주님께 경배하였다.
레위인들은

8 그 책, 곧 하느님의 율법을

번역하고 설명하면서 읽어 주었다.

그래서 백성은 읽어 준 것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9 느헤미야 총독과 율법 학자며

사제인 에즈라와 백성을 가르치던

 레위인들이 온 백성에게 타일렀다.
“오늘은 주 여러분의 하느님께

거룩한 날이니, 슬퍼하지도

울지도 마십시오.”
율법의 말씀을 들으면서

온 백성이 울었기 때문이다.

10 에즈라가 다시

그들에게 말하였다.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단 술을 마시십시오.

오늘은 우리 주님께

거룩한 날이니,

 미처 마련하지 못한 이에게는

 그의 몫을 보내 주십시오.

 주님께서 베푸시는 기쁨이 바로

여러분의 힘이니,

서러워하지들 마십시오.”

제2독서 1코린 12,12-30

형제 여러분,

12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모

 한 몸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십니다.

13 우리는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또 모두 한 성령을 받아 마셨습니다.

14 몸은 한 지체가 아니라

많은 지체로 되어 있습니다.
15 발이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속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해서,

몸에 속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16 또 귀가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속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해서,

 몸에 속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17 온몸이 눈이라면 듣는 일은

 어디에서 하겠습니까?

온몸이 듣는 것뿐이면

냄새 맡는 일은 어디에서

하겠습니까?
18 사실은 하느님께서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각각의 지체들을

그 몸에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19 모두 한 지체로 되어 있다면

몸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20 사실 지체는 많지만

몸은 하나입니다.

21 눈이 손에게

 “나는 네가 필요 없다.”

할 수도 없고, 또 머리가 두 발에게

“나는 너희가 필요 없다.”

할 수도 없습니다.

22 몸의 지체 가운데에서

약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오히려 더 요긴합니다.

23 우리는 몸의 지체 가운데에서

 덜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특별히 소중하게 감쌉니다.

또 우리의 점잖지 못한 지체들이

아주 점잖게 다루어집니다.

24 그러나 우리의 점잖은 지체들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자란 지체에

더 큰 영예를 주시는 방식으로

사람 몸을 짜 맞추셨습니다.

 25 그래서 몸에 분열이 생기지 않고

지체들이 서로 똑같이

 돌보게 하셨습니다.

26 한 지체가 고통을 겪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겪습니다.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합니다.
27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

28 하느님께서 교회 안에

세우신 이들은,

첫째가 사도들이고

둘째가 예언자들이며

셋째가 교사들입니다.

그다음은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들,

 그다음은 병을 고치는 은사,

도와주는 은사, 지도하는 은사,

 여러 가지 신령한 언어를 말하는

은사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29 모두 사도일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예언자일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교사일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기적을 일으킬 수야

 없지 않습니까?

30 모두 병을 고치는

은사를 가질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신령한 언어로

말할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신령한 언어를

해석할 수야 없지 않습니까?

복음 루카 1,1-4; 4,14-21

1 우리 가운데에서

이루어진 일들에 관한

이야기를 엮는 작업에

많은 이가 손을 대었습니다.

 2 처음부터 목격자로서 말씀의

종이 된 이들이 우리에게

전해 준 것을

그대로 엮은 것입니다.

3 존귀하신 테오필로스 님,

이 모든 일을 처음부터 자세히

살펴본 저도 귀하께 순서대로

 적어 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4 이는 귀하께서 배우신

것들이 진실임을 알게

해 드리려는 것입니다.
그때에 4,14 예수님께서

성령의 힘을 지니고

 갈릴래아로 돌아가시니,

 그분의 소문이 그 주변

모든 지방에 퍼졌다.

15 예수님께서는 그곳의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모든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셨다.

16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으로 가시어,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성경을

봉독하려고 일어서시자,

17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가

 그분께 건네졌다. 그분께서는

 두루마리를 펴시고 이러한

말씀이 기록된 부분을 찾으셨다.
18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19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20 예수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시니,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하였다.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걸어서 성지순례를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힘들어서 잠시 쉬고 있는데

그 앞으로 마차가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길을 물었습니다.
“예루살렘까지 가려면 아직 멀었습니까?”
마차를 끌고 가던 남자는

 “한 30분 정도면 됩니다.”

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이 말에 ‘다 왔구나.’라는

안도감이 생기면서,

조금 편하고 싶은 마음에

“혹시 마차에 저를 태워줄 수 있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마음씨 좋게 생긴

남자는 흔쾌히 허락했습니다.
이제 마차에 탄 그는 풍광을 즐기면서

편안하게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30분이 지났음에도

예루살렘에 도착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는 “아직 멀었나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마부는 “한 1시간쯤 가야 합니다.”

라고 대답하는 것이 아닙니까?

“아까 30분이면 간다고 말하지 않았소?”

라고 물으니, 마부의 대답에

이 순례자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대답은 이러했거든요.
“저는 예루살렘 반대편으로

가고 있는 중입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제대로 된 방향이 아니면

 더 고생을 할 뿐입니다.

그만큼 방향이 중요합니다.

방향만 제대로 알면 어떻게든

목적지에 도달할 수가 있지만,

이 방향을 알지 못하면 목적지와

정반대로도 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일까요?

혹시 주님이라는 밝게 빛나는

별을 향해서 아니라,

잘 보이지 않는 세상의

물질적인 것들만을

쫓아서 가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회당에

들어가셔서 이사야 예언서의

 말씀을 읽으시면서 주님의 은혜로운 해,

 즉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십니다.

이렇게 선포하실 때의 주님의 입장을

생각해보십시오. 마냥 기쁘셨을까요?

죄 많은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이끄는

어렵고 힘든 길이었습니다.

또한 이 선포를 통해 그만큼 당신의

죽음도 가까워진다는 것을

아셨을 것입니다.

당신께 찾아올 고통과 시련 그리고

죽음까지도 모두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이 하느님 나라의 선포가

과연 기쁘셨을까요?
하지만 주님께서는

힘차게 선포하십니다.

이 하느님 나라의 선포가 하느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제대로 된

방향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세상의 어렵고 힘듦을 피하기 위해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거부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주님처럼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삶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나중으로 미루면서 결단을 세우지

못하는 미적미적한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을 쫓는 길이 아닌,

하느님을 쫓는 길.

이 길을 통해서만 구원의 길이

 활짝 열려 있으며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 자신이

태어나기 전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을

만들어 놓고 가는 것.

당신이 이곳에 살다 간 덕분에

단 한 사람의 삶이라도

더 풍요로워지는 것.

이것이 바로 성공이다.

(랄프 왈드 에머슨)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심)


가능성이 무궁무진합니다.

가로세로 각 30Cm, 깊이 56Cm의

나무 상자에 모래를 채우고

호밀 한 포기를 심습니다.

그리고 4개월 동안 물을 주면서

그른 뒤에 호밀을 꺼내어

모래를 깨끗이 털어냅니다.

이 호밀의 뿌리의 총길이를

재면 얼마나 될까요?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

생물학교에서 한 실험이었습니다.

호밀 뿌리 중에서 눈에 보이는 것은

자로 정확히 재고,

잘 보이지 않는 실뿌리는

 현미경으로 조사하면서 재보니

11,200Km라고 합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10번 이상

왕복할 수 있는 길이였습니다.
식물도 땅 속에 어마어마한

뿌리를 감추고 있었습니다.

하물며 하느님의 가장 놀라운

창조물인 인간은 어떨까요?

우리는 어마어마한 가능성을

숨기고 있습니다.

그만큼 신비롭고 놀라운 존재인

내 자신임을 기억하면서

할 수 없다는 말보다는

할 수 있다는 말을 더 많이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내 안에 있는 가능성을

계속해서 찾아내야 합니다.

(자신의 가능성을 생각해보세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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