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1.29)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1-29 조회수1,474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9년 1월 29일

연중 제3주간 화요일

제1독서 히브 10,1-10

형제 여러분,

 1 율법은 장차 일어날

 좋은 것들의 그림자만

지니고 있을 뿐 바로

 그 실체의 모습은 지니고

 있지 않으므로,

해마다 계속해서 바치는

같은 제물로는 하느님께

나아가는 이들을 완전하게

 할 수 없습니다.

 2 만일 완전하게 할 수 있었다면,

예배하는 이들이 한 번 깨끗해진

다음에는 더 이상 죄의식을 가지지

않아 제물을 바치는 일도

중단되지 않았겠습니까?

3 그러한 제물로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될 뿐입니다.

4 황소와 염소의 피가 죄를

없애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5 그러한 까닭에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실 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께서는 제물과 예물을

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저에게 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6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기꺼워하지 않으셨습니다.

 7 그리하여 제가 아뢰었습니다.

 ‘보십시오, 하느님! 두루마리에

 저에 관하여 기록된 대로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8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제물과 예물을”, 또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원하지도

 기꺼워하지도 않으셨습니다.”

하고 말씀하시는데, 이것들은

율법에 따라 바치는 것입니다.

 9 그다음에는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 것을 세우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 것을

치우신 것입니다.

10 이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복음 마르 3,31-35

31 그때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왔다.

그들은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불렀다.

32 그분 둘레에는

군중이 앉아 있었는데,

사람들이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스승님을

찾고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3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34 그리고 당신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35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고등학생 때의 일 하나가 생각납니다.

같은 반의 한 친구가

 여자 친구를 사귀고 있었는데

고민이 생겼다고 합니다.

글쎄 여자 친구가 자신의

친한 친구를 데리고 왔는데,

이 친구를 보자마자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여자 친구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질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도

일부다처제가 되어야 해.”라면서,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할 지

도저히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친구의 선택은

 양다리였습니다.

둘 다 사랑하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었지요.
어떻게 되었을까요?

결과는 양다리 걸친 것이

들통이 나서 둘에게 동시에

차이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사랑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사랑이라는 에너지는 한 곳에만

집중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 친구가 말했던 둘 다

사랑한다는 말은 둘 다 소유하겠다는

욕심이었습니다. 사랑은 선택이고,

사랑은 희생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야 온전히 사랑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랑을 늘 강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사랑의

모습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하느님도 사랑하고,

세상의 물질적인 것들도

사랑하는 양다리의 사랑이었습니까?

이것도 사랑하고, 저것도 사랑하는

 양다리 걸치는 사랑이 아니라,

철저히 하느님께 온 힘을 기울일 수

 있는 사랑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것들이

중요할 수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혈연관계까지도

하느님께 대한 사랑보다 우선시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머니와 형제들이 찾아왔다는

말을 듣고 예수님께서는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라고 반문하십니다. 부모와 형제들과의

 인연을 끊어버리신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보다는 사람들에게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세상의 혈연관계보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 안에서만 참 가족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당신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면서 말씀하시지요.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마르 3,34.35)
우리의 사랑을 다시금

떠올려 보았으면 합니다.

혹시 세상이 먼저이고 하느님은

늘 나중에 위치하는

사랑이 아니었을까요?

혹시 세상의 물질적인 것들을

얻기 위해 하느님께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것은 아닐까요?

이렇게 나의 욕심에서 나오는

 사랑은 이제 버려야 합니다.

그보다 우리를 지켜주시고

함께 하시는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사랑이 첫 번째 자리에 올 때,

우리는 진정한 사랑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으로

 함께 하는 사람들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입니다.

건강한 삶의 핵심은

 사랑하는 것과 일하는 것이다.

(지크문트 프로이트)

(서울신학교 동창들과 서품 20주년 기념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사랑할 수 있는 나’를 만들어라.”

자존감이 없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한 만족을 못하고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입니다.

이러한 모습의 자신이

싫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냥 “너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라고 말해주면 될까요?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답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조금 쉬운 방법은 무엇일까요?

이렇게 말해주는 것입니다.
“‘사랑할 수 있는 나’를 만들어라.”
내가 부러운 사람, 그 사람을 보면서

내가 지금 해야 할 것,

변화해야 할 것들을 찾으면서

 바꿔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떨까요?

조금이라도 사랑할 수 있는

나의 모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대전 새얼센터 십자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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