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1.30)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1-30 조회수1,398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9년 1월 30일

연중 제3주간 수요일

제1독서 히브 10,11-18

11 모든 사제는 날마다 서서

같은 제물을 거듭 바치며

직무를 수행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결코 죄를

없애지 못합니다.

12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없애시려고

한 번 제물을 바치시고 나서,

 영구히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13 이제 그분께서는

 당신의 원수들이

 당신의 발판이 될 때까지

기다리고 계십니다.

14 한 번의 예물로,

거룩해지는 이들을 영구히

완전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15 성령께서도 우리에게

 증언해 주시니, 먼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6 “그 시대가 지난 뒤에

내가 그들과 맺어 줄 계약은 이러하다.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나는 그들의 마음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생각에 그 법을 새겨 주리라.”

17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나는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의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리라.”
18 이러한 것들이 용서된 곳에는

더 이상 죄 때문에 바치는

예물이 필요 없습니다.

복음 마르 4,1-20

그때에 1 예수님께서

호숫가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너무 많은 군중이 모여들어,

그분께서는 호수에 있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군중은 모두

호숫가 뭍에 그대로 있었다.

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비유로 가르치셨다.

그렇게 가르치시면서 말씀하셨다.
3 “자, 들어 보아라.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4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

 5 어떤 것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아났지만,

 6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다.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 것이다.

 7 또 어떤 것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8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를 맺었다.

그리하여 어떤 것은 서른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백 배의 열매를 맺었다.”

 9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셨다.

 “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10 예수님께서 혼자 계실 때,

그분 둘레에 있던 이들이

열두 제자와 함께 와서

비유들의 뜻을 물었다.

 1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주어졌지만, 저 바깥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그저 비유로만 다가간다.

 12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여

저들이 돌아와 용서받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13 예수님께서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 비유를 알아듣지 못하겠느냐?

그러면서 어떻게 모든

비유를 깨달을 수 있겠느냐?
14 씨 뿌리는 사람은 실상

 말씀을 뿌리는 것이다.

15 말씀이 길에 뿌려지는 것은

 이러한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들이 말씀을 들으면 곧바로

사탄이 와서 그들 안에 뿌려진

말씀을 앗아 가 버린다.

16 그리고 말씀이 돌밭에

뿌려지는 것은 이러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씀을

들으면 곧 기쁘게 받는다.

17 그러나 그들에게

 뿌리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곧 걸려 넘어지고 만다.

18 말씀이 가시덤불 속에

뿌려지는 것은

 또 다른 사람들이다.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19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과

그 밖의 여러 가지 욕심이 들어가,

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다.
20 그러나 말씀이 좋은 땅에

뿌려진 것은 이러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

어떤 이는 서른 배,

어떤 이는 예순 배,

어떤 이는 백 배의 열매를 맺는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행복지수가 너무 낮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미래라 할 수 있는

청소년들이 희망적이지 않으니

과연 우리나라에 어떤 희망이

 있겠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책을 보니,

이런 모습들이 오히려 희망적이라는

아주 의외의 주장을 펴더군요.
일본을 예로 듭니다.

지금 현재 일본 젊은이들의

 행복 지수는 역대 최고치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미래에 더 큰 희망을

 걸지 않게 되었을 때 자신의 처지에

 만족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일본의 청소년들의 행복 지수가

 올라간 것은 현재의 격차사회,

계급사회를 그대로 인정하면서

자신들의 처지에 만족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지요.

일본의 고도성장기의 버블이

모두 꺼진 지금,

 미래에 대한 희망이 더 이상

없기 때문에 현실에

만족하게 된 것입니다.
행복지수가 낮음은 곧 행복한 상태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단순히 행복지수가 낮다고 일찌감치

 포기하고 절망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지금 어렵고 힘들다는

생각을 품고는 있지만, 여기에 계속

머물 것이 아니라 여기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간직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늘 희망으로 다가오십니다.

그래서 이 순간을 더욱 더 의미 있는

시간으로 만들어주십니다.

이를 군중에게 많은 것들을 비유로

가르치시는 주님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평범한 일상이라는

순간을 의미 있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이해하기 쉽게 전해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이 주님의 사랑은 우리가

조금만 주의 깊게 주위를 둘러보면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많은 사람들,

 특히 지도층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쉬운 말씀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들으면 ‘아~~’라고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그들의 주관심사는

 ‘저 예수라는 사람을 제거할 수 있을까?’

뿐이었기에 어떤 말씀을 통해서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삼십 배, 육십 배, 백배의 열매를 맺을

 기회를 과감하게 버리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일상 삶 안에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전해주시는 긍정적이고

희망의 메시지를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부정적인 마음으로는 절대로 주님의

메시지를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 엉뚱한 곳에 신경 쓰지 마시고,

행복만을 바라보면서 앞으로

힘차게 나아갔으면 합니다.

그런 우리가 될 때, 주님의 작은 씨앗이

우리 안에서 삼십 배, 육십 배,

백배의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얻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하지만,

베풂으로 삶을 살아간다.

산에 오르지 않으면,

평원을 볼 수 없다.

(빈센트 반 고흐의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

행복을 조정할 수 있는 능력.

미국의 어느 통계에 따르면

무료 양로원에서 노후를

외롭게 보내는 노인들의 몇 가지

공통점이 있는 것입니다.

첫째. 스케이트를 탈 줄 모른다.

다칠까봐.
둘째. 자전거를 탈 줄 모른다.

무서워서.
셋째. 수영을 배우지 못했다.

 죽을 수 있으니까.
넷째 먼 곳으로 여행해 보지 못했다.

 겁이 나서.
외롭게 보내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나이가 들어서가 아니었습니다.

힘이 빠져서도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정면으로 마주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칠까봐 피하고,

무서워서 피하고,

 죽을 수 있으니까 피하고,

 겁이 나서 피하고... 이렇게

피하다보면 결국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외로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소냐 류보미르스키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행복을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의

 40%는 본인에게 달려 있다.”
맞습니다. 내 자신에게 달려 있는

 40%를 포기하면 행복도 없습니다.

 갓난아기는 걷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합니다.

 만약 넘어져서 다칠까봐

걷는 것을 포기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걸음으로 인해서 얻게 될 행복도

나의 것이 될 수가 없습니다.
내 자신에게 다가오는

그 많은 것들에 할 수 없다는

이유를 붙여서는 안 됩니다.

 어렵고 힘든 모습으로 다가오는

그 모든 것들이 나를 행복으로

이끌어줄 지도입니다.

(동창신부가 보내준 30년 전의 사진이네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