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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1.31)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1-31 조회수1,498 추천수10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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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31일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

제1독서 히브 10,19-25

19 형제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의 피 덕분에

성소에 들어간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20 그분께서는 그 휘장을 관통하는

새롭고도 살아 있는 길을 우리에게

열어 주셨습니다.

곧 당신의 몸을 통하여

그리해 주셨습니다.

21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집을

다스리시는

위대한 사제가 계십니다.

22 그러니 진실한 마음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나아갑시다.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악에 물든 양심을 벗고

깨끗해졌으며, 우리의 몸은

 맑은 물로 말끔히 씻겼습니다.
23 우리가 고백하는 희망을

굳게 간직합시다.

약속해 주신 분은

성실하신 분이십니다.

24 서로 자극을 주어

사랑과 선행을 하도록

주의를 기울입시다.

 25 어떤 이들이 습관적으로

 그러듯이 우리의 모임을

소홀히 하지 말고,

서로 격려합시다.

여러분도 보다시피

그날이 가까이 오고 있으니

더욱더 그렇게 합시다.

복음 마르 4,21-25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21 말씀하셨다. “누가 등불을

가져다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겠느냐?

등경 위에 놓지 않느냐?

22 숨겨진 것도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도

 드러나게 되어 있다.

 23 누구든지 들을 귀가

 있거든 들어라.”
24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새겨들어라.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

25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어떤 중학교 여학생이

 자신은 용돈을 달라고 엄마에게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용돈이 필요하면 말을 해야지,

왜 말을 하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뻔해요.”라고 말합니다.

엄마의 반응은 뻔하다는 것이지요.

자신을 향해 화를 내면서 온갖 잔소리를

늘어놓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잔소리만 들을 뿐 원하는 용돈은

 얻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지요.

만약 엄마에게 “용돈 좀 주세요.”

라고 말을 했을 때,

 “요즘 어려운 일이 있나 보구나.

엄마가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없을까?”

라면서 화내지 않고 이야기해주고

또 용돈도 준다면 이런 엄마를 향해서

“뻔하다.”라는 말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예상하는 반응을 상대가

하지 않을 때에는 절대로 ‘뻔하다’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대신 마음을 열고서 그 사람을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그래서일까요?

주님께서도 절대로 뻔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지 않습니다.

늘 뜻밖의 모습으로, 뜻밖의 사랑으로

우리들에게 다가오십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따른다는

우리의 모습은 어떻게 되어야 할까요?

 뻔한 모습이 아니라,

마음을 활짝 열고서 받아들이는

 의외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뻔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것만을 주장하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입니다.

그래서 뻔한 예상을 상대방이

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늘 나의 관점만 옳다고 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가 아닌 남에게 중심이

맞춰져 있는 사람은 상대방으로부터

절대로 뻔한 사람이 아닙니다.

대신 함께 하고 싶고 내 마음으로

드러내고 싶은 따뜻한 사람입니다.
사랑은 자기중심적이지 않기 때문에

절대로 뻔할 수가 없습니다.

의외의 모습으로 뜨겁고 열정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사랑입니다.

나의 욕심과 이기심을 내려놓고

주님의 뜨거운 사랑으로 채우는

우리가 될 때 주님을 이 세상에 환하게

드러내는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복음은 바로 이러한 점을

우리에게 전해 줍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누가 등불을

 가져다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겠느냐?”라고 질문하시지요.

등불은 주위를 밝게 밝히는

역할을 하는데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으면

그냥 꺼질 수밖에 없습니다.

꺼지지 않더라도 주위를

밝힐 수가 없게 되겠지요.

여기서 등불은 예수님 자신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이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예수님을 세상에 드러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늘 힘주어

강조하셨던 사랑의 실천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의 실천은 과연

어떤 것입니까? 말로만 사랑한다고

외치는 것? 아닙니다.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사랑,

그래야 세상의 환하게 비출 수 있는

사랑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보상을

이렇게 말씀해 주시지요.
“너희는 새겨들어라.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
바로 우리가 사랑에 힘쓴 만큼

주님으로부터 사랑이 주어질 것이며,

오히려 거기에 더 보태어서
받게 된다는 보상의 말씀입니다.

어떻습니까? 이 정도면

사랑할만하지 않습니까?

아이는 아이의 삶을,

부모는 부모의 삶을 살아야 한다.

(성 요한 보스코 사제)


넋두리

(한희숙)

마음이 편해야 입은 옷이 명품이고
시간을 아끼고 잘 지켜야 시계가 명품이고
반가워하는 물건이 나와야 가방이 명품이고
배고픈 사람에게 지폐가 나와야

지갑이 명품이라는데...
언제나 너그러움이 따뜻함이

가득한 마음을 가진
명품인 그대는 어디에 계시는지요?
나는 과연 명품일까를 반성해 봅니다.

명품을 지향하지만,

겉으로만 그럴싸할 뿐 명품이 아닌

짝퉁의 모습은 아닐까요?

(세상에는 명품이 많습니다.

그러나 내가 먼저 명품이 되어야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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