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2.01)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2-01 조회수1,409 추천수8 반대(0) 신고

 


2019년 2월 1일

연중 제3주간 금요일

제1독서 히브 10,32-39

형제 여러분,

 32 예전에 여러분이 빛을 받은 뒤에

많은 고난의 싸움을 견디어 낸 때를

 기억해 보십시오.

33 어떤 때에는 공공연히

모욕과 환난을 당하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그러한 처지에 빠진

이들에게 동무가

되어 주기도 하였습니다.

34 여러분은 또한 감옥에

갇힌 이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었고,

재산을 빼앗기는 일도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보다 더 좋고 또 길이 남는

 재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35 그러니 여러분의

그 확신을 버리지 마십시오.

그것은 큰 상을 가져다줍니다.

36 여러분이 하느님의 뜻을

 이루어 약속된 것을 얻으려면

 인내가 필요합니다.

37 “조금만 더 있으면

 올 이가 오리라.

지체하지 않으리라.

 38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그러나 뒤로 물러서는 자는

내 마음이 기꺼워하지 않는다.”

 39 우리는 뒤로 물러나 멸망할

사람이 아니라, 믿어서

 생명을 얻을 사람입니다.

복음 마르 4,26-34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26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

 27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

28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

처음에는 줄기가,

다음에는 이삭이 나오고

그다음에는

이삭에 낟알이 영근다.

29 곡식이 익으면

그 사람은 곧 낫을 댄다.

수확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30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무슨 비유로 그것을 나타낼까? 3

1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다.

32 그러나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
33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이처럼 많은 비유로 말씀을 하셨다.

34 비유를 들지 않고는

그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당신의 제자들에게는

 따로 모든 것을 풀이해 주셨다.

스페인에 살고 있는

중년의 부부가 15명의 청소년과

한 줄로 서서 웃는 사진을

인터넷에서 우연히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사진에 대한 설명을

보는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지요.

글쎄 부부가 청소년들의 무리와 함께

 찍은 단체 사진이 아니라,

가족사진이라는 것입니다.
어머니인 로사 피크는 1989년에

남편 호세 포스티고와 결혼해서

 18남매를 낳았습니다.

 가족 전체가 한 달 동안 먹는

비스킷이 1,300개,

화장지가 95개 필요하다고 합니다.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서 육아에만

전념하지 못하고 맞벌이를 해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일을 하면서

아이를 키웠습니다.

아이들 모두가 건강하게

잘 성장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18남매 중에서 셋은 심장병으로

하느님 곁으로 보내는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도저히 힘들어서

못 살 것 같은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누구보다도 기쁘게

 생활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물으니

이렇게 대답합니다.
“매일 아침 미사에 갑니다.

미사 후 30분 동안 묵상을 해요.

그날 할 일을

정리하고 계획을 세우죠.

 그게 저의 가장 큰 힘입니다.

저만의 마약인 셈이죠.

하루 30분의 기적입니다.

종교가 달라도 누구나 할 수 있어요.

 바쁘면 바쁠수록 멈춰 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미사와 묵상을 통해 자신의

삶 안에 작지만 가장 커다란 힘이

되었다는 로사 피크의 말에

큰 공감을 하게 됩니다.

주님 안에서만 그 어떤 것도

이겨낼 수 있는 힘과 함께

 참 기쁨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은 남들과

비교하면서 자신이 지금 가지고

 있지 못한 것에 그리고 불행이라고

생각하는 그 자체에만

매달리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를

 땅에 뿌린 씨에 비유하십니다.

 씨를 땅에 뿌리는 것은

 사람의 역할입니다.

그런데 땅에 뿌려진 뒤로는

어떻게 자라는지 알 수가 없지요.

 어느 순간에 줄기가 나오고,

또 이삭이 나오고, 또 낟알이

영글고 곡식이 익습니다.

이 모든 것이 어느 순간에

이루어집니다.

 하느님 나라도 어느 순간에

하느님의 힘에 의해서 우리에게

갑자기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느님의 나라를

겨자씨에 비유하십니다.

아주 작은 씨앗에서 가장 큰 관목으로

 성장하는 것처럼 하느님 나라 역시

처음에는 작고 볼 품 없어 보이지만,

 모든 새들이 깃들일 수 있는

겨자나무처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주님 안에서만 가장 큰 힘과

큰 기쁨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주님의 일 자체가 바로 하느님의 나라로

가는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일 자체가 처음에는 보잘 것 없고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 세상 것들로는 느낄 수 없는

님의 은총과 사랑을 체험하게 합니다.

이 주님의 일을 행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세상 일이 바쁘다고 주님의 일을

계속해서 뒤로 미루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나의 변화를

또한 하느님 나라를

체험하고자 한다면

지금 당장 실천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는

이미 우리에게 와 있습니다.

비교해서 기뻐하면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고,

 비교해서 슬퍼하면 자신을 잃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비교 자체를 피해야 한다.

(호세 포스티고와 로사 피크 부부와 그 자녀들의 한국 방문 사진)


커피 반잔

제2차 세계대전 때,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는

추운 겨울 오후에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수용되어 있는

유다인들에게 주었다고 합니다.

 질 좋은 커피는 아니었지만

워낙 춥고 배고팠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온기가 사라지기 전에

얼른 이 따뜻한 물을 마셨습니다.

그런데 몇몇 극소수는

커피 반잔은 마시고

나머지 반잔으로는

자신의 얼굴과 손을 씻는 것입니다.
강제수용소 안에는 샤워는 물론

 세수도 할 수 없었고,

 대소변을 해결할 화장실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습니다.

포로들을 냄새나고 더러운 몰골로

만들어 학살할 때 죄책감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었지요.
이런 상황에서 반잔의 커피로

손과 얼굴을 씻는다는 것이 쉬웠을까요?

그러나 그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인간으로 존재하겠다는

생각으로 이런 행동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주었습니다.

 즉, 커피 한잔을 다 마신 사람은

모두 강제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했지만,

살아남은 사람은 커피 반잔으로

 인간성을 지킨 사람이었습니다.
극한 상황에서 먹을 것이 없어서

죽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절망하기 때문에 죽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나의 자존감을 키워주고

지켜줄 커피 반잔을 간직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커피 반잔은 무엇입니까?
기도와 묵상, 미사 영성체, 봉사,

희생, 나눔, 가족, 사랑을 실천하는 일.

(이렇게 작은 겨자씨가 큰 나무가 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