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연중 제4주일. 2019년 2월 3일).
작성자강점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9-02-01 조회수1,415 추천수2 반대(0) 신고

 

연중 제4주일. 201923.

루가 4, 21-30. 1고린 12, 31-13, 13.

 

지난 주일에 우리가 들은 복음은 예수님이 나자렛 회당에서이사야서의 몇 구절을 읽으신 이야기였습니다그 구절은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는 말씀이었습니다. 루가복음서를 집필한 사람은 예언서의 그 말씀들이 예수님이 행하신 은혜로운 일들을 요약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은 그 말씀에 이어서 나오는 부분입니다예수님의 고향 나자렛의 사람들은 그분의 은혜로운 말씀에 감탄하였지만그들은 즉시 예수님의 출신(出身)을 문제 삼습니다예수님은 그들이 잘 아는 목수,  요셉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분은 율사나 사제와 같이 하느님에 대해 가르치는 신분(身分)이 아닙니다그들은 예수님이 행하신 은혜로운 일들을 보았지만그것을 하느님과 연결하지 못하고예수님의 신분곧 목수의 아들이라는 사실에만 시선을 빼았겼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입을 빌려 어떤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는 말씀과 더불어구약성서열왕기에 나오는 고사(故事) 두 가지를 이야기합니다엘리야 예언자가 사렙다 마을의 한 과부를 기근에서 구해준 이야기(1열왕 18,7-16), 엘리사 예언자가 시리아 사람 나만의 나병을 고쳐 준 이야기(2열왕 5,1-14)입니다그것은 모두 하느님이 예언자를 통하여 은혜로운 일을 하신 이야기들입니다예수님의 이 말씀에 회당에 모였던 사람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들고일어나 예수님을 동네 밖으로 끌어내어 죽이려 하였다고 오늘의 복음은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는 말로 복음은 끝맺습니다.

 

회당의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분노한 것은 그분이 목수 요셉의 아들인 주제에예언서를 자유롭게 인용하고그들이 존경하는 엘리야와 엘리사 두 예언자를 자기 자신에 견주었기 때문입니다예언자는 하느님에 대해 말하고 하느님의 일을 행하는 사람입니다오늘의 복음에서 예수님은이사야예언서를 인용하여 하느님이 은혜로우신 분이라는 사실을 말하고엘리야와 엘리사가 한 일이 그 은혜로우심을 실천한 것이었다고 상기시켰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하신 그런 예언자적 역할 때문에 유대인들은 그분을 미워하였고예수님은 그들의 분노에도 괘념치 않고, 당신의 길을 가셨다고 말합니다.

 

오늘 복음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 고을의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 하였다.”고 말합니다그리고 그 고을은 산 위에 있었다고도 말합니다그러나 오늘 이야기의 무대인 나자렛은 실제로 산 위가 아니라, 산 아래에 있습니다지리적(地理的) 실제 여건을 무시하면서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죽을 위험에 처한 무대를 산 위로 잡았습니다그것은 예수님이 예루살렘 밖의 골고타 산 위에서십자가에 돌아가신 사실을 연상(聯想)시킵니다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예언자적 말씀과 행위를 처음부터 거부하였고, 그들의 분노와 증오에도 불구하고예수님은 당신의 길을 가셨으며, 그 길은 결국 예루살렘 밖, 골고타 산 위의 십자가에서 끝났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선포한 복음은 하느님의 이름으로 소외(疎外)당하고 차별 받는 이들에게 하느님이 은혜로우시다는 사실을 알렸습니다율법을 잘 지키고제물봉헌을 잘 하는 것만이 신앙이라 믿던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거짓 예언자로 보였습니다그들은 그들이 믿는 하느님을 지키기 위해 예수님을 죽였습니다그들은 하느님이 은혜로운 분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그래서 그들은 후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놓고,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는 냉큼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시지, 그러면 우리가 보고 믿을 터인데”(마르 15,32)라고 말합니다예수님이 메시아라면십자가에서 내려오는 초인적 힘을 한 번 발휘해보라는 것입니다.   인류역사(人類歷史)가 의지하여 살아 온 힘의 논리입니다하느님은 강한 자와 함께 계시다고 믿어온 인류역사였습니다.

 

예수님은 약자(弱者)또 실패자(失敗者)로 죽어 가셨습니다예수님이 나자렛 회당에서이사야서를 읽으면서 거론하신 가난한 이”,   “잡혀간 이”,   “눈먼 이”,  “억압받는 이는 모두 약자이며 실패자들입니다예수님은 그런 약자들 중 한 사람이 되어 죽어 가셨습니다예수님은 하느님이 그런 약자들과 함께 계신다고 믿었고하느님이 그들에게 하시는 일불쌍히 여기고 살리는 일을 당신도 실천하셨습니다그리고 그분은 이 세상의 강자인 유대교 실세(實勢)들의 손에 생명을 잃으셨습니다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를 부르면서 죽어 가셨습니다약자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느님을 부르는 일뿐입니다.  그분의 부활은 하느님은 과연 약자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입증(立證)하였습니다하느님은 이 세상의 강자(强者)와 함께 계시지 않고, 약자(弱者)와 함께 계셨습니다.

 

예수님의 뒤를 따라 같은 실천을 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신앙인입니다신앙은 하느님과 교섭하여 강한 자가 되어, 사람들을 억압하며 자기 한 사람 잘 살기 위한 수작이 아닙니다우리가 우리 주변의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외면하면서더 부요하게,  더 강하게더 화려하게 살기만을 원한다면우리는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들의 일만 생각하는”(마르 8,33) 것입니다그리스도신앙은 약자의 길입니다사랑은 강자로 군림하지 않고, 약자가 되어 은혜로운 일을 행하게 합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는 자녀 앞에 강자로 군림하지 않고약자로 행동합니다오늘 우리가 제2독서로 들은 고린토1는 사랑은 너그럽고 허세를 부리지 않는다고 말하고,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모든 것을 견딘다.”고 말하였습니다.

 

심판하실 하느님이 아니라, 사랑하시는 하느님, 은혜로우신 하느님을 믿는 그리스도신앙인입니다그 사랑과 은혜로우심을 실천하기 위해십자가를 지면서 노력하는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입니다예수님을 따라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그리스도인입니다하느님의 사랑과 은혜로우심을 유산(遺産)으로 받아비록 십자가가 있어도그 사랑과 은혜로우심을 실천하며 살겠다는 약속이 담긴 아버지라는 호칭(呼稱)입니다.

 

오늘2독서에서 바울로 사도는 말씀하십니다.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 으뜸은 사랑입니다.”   하느님의 은혜로우심이 이웃을 위한 우리의 사랑 안에 살아 숨 쉬게 하는 것이 으뜸이라는 말씀입니다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를 비롯한 여러 어른들의 사랑을 받으며 사람이 됩니다. 그리스도신앙인은 자기 주변의 약하고 실패한 이웃들을 가슴에 품고 사랑하여, 그들이 살고 자라게 합니다그것이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 그 사랑 안에 머무는 일입니다은혜로우신 하느님이 우리의 삶 안에 살아계시게 하는 일입니다.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