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주님 봉헌 축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9-02-02 조회수1,957 추천수13 반대(0)

 

‘Those were The Days’라는 노래를 우연히 들었습니다. 감성적인 멜로디와 서정적인 가사가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노래입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그땐 그랬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사는 이렇습니다. “젊은 날에 패기도 있었고, 정열도 있었고, 우정도 있었고, 사랑도 있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다 지나간 추억이고, 지금 나의 모습은 예전 같지 않지만 그래도 순수했던, 사랑했던, 젊은 날이 있었습니다.” 추억과 기억은 인간에게 주어진 축복입니다. 인간은 추억과 기억을 씨실과 날실로 삼아 역사와 문명을 만들어 왔기 때문입니다.

신학적으로 원체험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린 시절 하느님의 음성을 들었던 사무엘의 체험이 있습니다. 떨기나무 아래에서 하느님을 만났던 모세의 체험이 있습니다. 사람이 되신 예수님께서는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라는 하느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예수님을 만났던 제자들의 체험이 있습니다. 다락방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던 제자들의 체험이 있습니다. 다마스코스로 가는 길에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던 바오로 사도의 체험이 있습니다.

 

돌아보면 하느님께서 저를 사랑하시고, 용서하시고, 기회를 주셨던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순간순간들이 제게는 원체험이 되었습니다. 길을 잃어서 파출소에서 하루 지내고 있을 때 아버님이 저를 찾아오신 적이 있습니다. 유행성 출혈열로 중환자실에 있을 때 어머님은 잠시도 제 곁을 떠나지 않고 돌봐 주셨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이 제게는 원체험입니다.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신앙이 제게는 원체험입니다. 여러분들의 원체험은 무엇인지요?

 

돌아서고 나면 험난한 구비가 다시 펼쳐져 있을 인생길에서도, 삶이 막막함으로 다가와 주체할 수 없이 울적할 때도,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나 구석에 서 있는 느낌이 들 때도, 자신의 존재가 한낱 가랑잎처럼 팔랑거릴 때도 원체험이 있는 사람은 중심을 잡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런 험난함이 삶의 거름이 되어 알찬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희망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주님 봉헌 축일입니다. 모세의 율법에 따라서 아기 예수님께서 태어나진지 40일이 되는 날, 성모님과 요셉은 예수님을 성전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예물을 바쳤습니다. 우리가 받은 모든 것들은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신앙으로 고백하고,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에 응답하는 것이 봉헌입니다.

 

봉헌에는 크게 3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일치입니다. 국민은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습니다. 그리고 국민은 국가에 세금을 냅니다. 이는 국가와 국민이 일치하는 한 방법입니다. 국민과 국가의 일치는 자발적인 것은 아니고 강제적입니다. 세금을 납부하지 않으면 국가는 강제적인 방법으로 징수하기 때문입니다. 국민은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국가를 대상으로 보상을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신앙 안에서의 일치는 자발적입니다. 가장 큰 일치는 나 자신을 버리고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주님께서 내 안에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하나가 되기 위해서 사람이 되셨습니다. 이것이 가장 큰 봉헌입니다. 우리가 이웃과 하나가 되는 것은 그들의 아픔과 고통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십자가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주어진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가셨습니다. ‘제자들의 배반, 율법학자들의 모함, 겟세마니 동산에서의 고독이런 것들은 모두 예수님께서 지고 가셨던 십자가였습니다. 십자가의 결말은 죽음입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는 부활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우리들 각자는 십자가를 지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무겁기 마련입니다. 십자가는 인내를 요구합니다. 십자가는 나를 구속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십자가는 우리를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열쇠입니다.

 

세 번째는 감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어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성찬의 전례의 핵심은 빵과 포도주가 성체와 성혈로 변화되는 기도입니다. 교회는 이 기도를 감사송이라고 말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몸과 피를 봉헌하면서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아름다운 성찬기도문은 이렇습니다. ‘스스로 원하신 수난이 다가오자, 예수께서는 빵을 들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쪼개어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며 말씀하셨나이다. 저녁을 잡수시고 같은 모양으로 잔을 들어 다시 감사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나이다.’

 

우리를 하느님과 멀어지게 하는 가장 큰 악의 유혹은 교만, 욕심, 시기입니다. 이것을 이겨내는 것은 정결, 가난, 순명의 복음 삼덕입니다. 이 복음삼덕을 가장 잘 보여 주신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의 일치, 십자가의 희생, 하느님께 감사하는 진정한 봉헌을 통해서 악의 유혹을 이겨내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고난의 잔을 마시고 싶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뜻이라면 받아들이겠다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을 박해하고, 십자가에 매달고 조롱하는 사람들을 용서해 주시기를 청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솔직하게 아프다고, 원망스럽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주님께서는 이제 모든 이를 위한 모든 것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신앙이 있는 곳에, 당신의 몸을 성체의 모습으로 나누어 주십니다. 봉헌은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봉헌은 나에게 잘못한 이들을 받아들이고 용서하는 것입니다. 봉헌은 나의 허물과 잘못까지도, 나의 원망과 실망까지도 하느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봉헌은 나의 삶을 이웃들을 위해서 나누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의 봉헌축일을 지내면서 참된 '봉헌의 의미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봉헌은 단순히 내가 가진 것들 중에서 일부를 남과 나누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봉헌은 나의 욕심과 잘못을 비워내고 하느님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봉헌은 주어진 십자가를 충실하게 지고 가는 것입니다. 봉헌은 어떤 처지에서도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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