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19년 2월 2일(제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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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19-02-02 | 조회수995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19년 2월 2일 토요일 [(백) 주님 봉헌 축일 (봉헌 생활의 날)] 교회는 주님 성탄 대축일 40일째 되는 날, 곧 해마다 2월 2일을 주님 성탄과 주님 공현을 마감하는 주님 봉헌 축일로 지낸다. 이 축일은 본디 성모님께서 아기 예수님을 낳으신 뒤 모세의 율법대로 정결 의식을 치르신 것을 기념하는 ‘성모 취결례(정화) 축일’이었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따른 전례 개혁으로 1970년부터 현재의 명칭으로 바꾸어 주님의 축일로 지내 오고 있다. 왜냐하면 모든 점에서 죄가 없으신 성모님께 ‘취결례’라는 말은 오해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1997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이날을 ‘봉헌 생활의 날’로 정하고, 자신을 주님께 봉헌한 수도자들을 위한 날로 삼았다. 이에 따라 해마다 이날, 교회는 수도자들을 기억하는 한편, 젊은이들이 봉헌 생활로 초대하시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도록 기도할 것을 권고한다. 말씀의초대 말라키 예언자는, 주님께서 홀연히 당신의 성전으로 오시리라고 한다. (제1독서) 정결례를 거행할 날 예수님의 부모가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치자, 시메온은 아기가 반대받는 표징이 되리라고 예언하고 한나 예언자는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제1독서◎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말씀입니다. 3,1-4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 그가 홀연히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서 있을 수 있겠느냐? 염색공의 잿물 같으리라. 정련사처럼 앉아 레위의 자손들을 깨끗하게 하고 제물을 바치게 하리라. 제물이 옛날처럼, ◎화답송◎ 시편 24(23),7.8.9.10 (◎ 10ㄴㄷ) 그분이 영광의 임금님이시다. 영원한 문들아, 일어서라. 영광의 임금님 들어가신다. ◎ 만군의 주님, 그분이 영광의 임금님이시다. 힘세고 용맹하신 주님, 싸움에 용맹하신 주님이시다. ◎ 만군의 주님, 그분이 영광의 임금님이시다. 영원한 문들아, 일어서라. 영광의 임금님 들어가신다. ◎ 만군의 주님, 그분이 영광의 임금님이시다. 만군의 주님, 그분이 영광의 임금님이시다. ◎ 만군의 주님, 그분이 영광의 임금님이시다. ◎복음환호송◎ 루카 2,32 참조 계시의 빛이요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이시네. ◎복음◎ <제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복음입니다. 2,22-40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성전으로 들어갔다.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데리고 들어오자,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에 놀라워하였다.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드러날 것입니다.” 프누엘의 딸로서 아세르 지파 출신이었다. 혼인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서는,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나아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오늘의묵상◎ 오늘은 주님 성탄 대축일에서 40일째 되는 날입니다. 교회는 이날을 주님 성탄과 공현을 마무리하는 ‘주님 봉헌 축일’로 지냅니다. 본디 모세의 율법에 따르면 맏아들, 곧 첫아들은 주님의 몫이었습니다. 사람뿐 아니라 짐승의 맏배도 그러하였습니다(탈출 13,2 참조). 그것은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해방될 때, 하느님께서 이집트에 내리신 마지막 재앙이 맏아들과 맏배를 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두 죽임을 당했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어린양의 피를 집의 두 문설주와 상인방에 발라, 그것을 본 죽음의 천사가 그 집을 건너뛰게 하여 죽음을 면하였습니다. 그 건너감에서 ‘파스카’라는 말이 나왔고, 맏아들의 봉헌은 곧 이집트에서 해방됨을 기억하는 행사였습니다. 성전에 봉헌해야 한다는 율법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이집트에서 해방된 뒤 모든 맏아들은 하느님께 속한 것이 되고, 부모들은 성전에 제물을 바치고 맏아들을 하느님에게서 받아 오는 것입니다.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시요 하느님이시기에 당신 자신을 봉헌하실 필요가 없으셨지만, 스스로 봉헌하심으로써 겸손과 순종의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성부의 뜻에 온전히 순명하시는 성자의 모습으로, 하느님께 봉헌하는 모범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십니다. 봉헌의 모범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시메온의 말대로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아픔을 겪게 되실 성모님께서도 당신 자신과 당신이 가장 사랑하시는 아드님을 온전히 하느님께 돌려 드리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 무엇을 봉헌하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 봅시다. (이성근 사바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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