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4주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9-02-03 조회수1,845 추천수10 반대(0)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우리는 봄비처럼 생명을 살리고, 따뜻함을 주는 사랑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겨울비처럼 모든 것이 얼어붙고, 추워지는 이별을 경험하게 됩니다. 봄비가 꽃을 피우고, 만물을 키우는 사랑으로서 의미가 있다면, 겨울비 역시 돌아갈 곳을 생각하며, 휴식과 안식을 주는 이별로서의 의미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고통, 미워하는 사람을 만나야 하는 고통,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고통,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는 고통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고통 앞에 좌절하고, 세상을 원망하고, 하느님까지 원망하며 살아갑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이런 고통을 받아들이며 영적으로 성숙한 삶을 살아갑니다. 선택은 삶의 결과를 좌우할 것입니다.

 

고통은 하느님의 벌이 아니고, 고통은 자연현상이며, 인간 사회의 구조에서 벌어지는 현상입니다. 살아있는 지구의 활동은 지진, 해일, 화산 폭발, 홍수, 가뭄의 형태로 드러납니다. 이런 과정에서 사람들은 피해를 입고, 고통을 당합니다. 생명은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어야 하는 과정을 겪게 됩니다. 이런 과정에서 사람들은 고통을 당합니다. 전쟁, 폭력, 착취, 억압, 차별, 사기, 협박은 인간의 욕망에서 시작되며 이는 본인과 타인의 고통을 유발합니다.

 

고통은 3가지 측면에서 인류의 생존과 발전에 필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보호입니다. 숨을 멈추는 것이 고통스럽지 않다면 생명을 유지하기 힘들 것입니다. 뜨거운 것이 고통스럽지 않다면 우리는 화상을 입기 쉬울 것입니다. 백신은 우리의 몸을 고통스럽게 하지만 항체가 생기면서 더 큰 고통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합니다. 우리의 몸이 고통의 신호를 보내는 것은 여유와 휴식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몸이 보내는 경고를 무시하고 무절제한 생활을 계속하면 몸은 더 이상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할 것입니다.

 

둘째는 성장입니다. 화려한 발레리나의 춤 뒤에는 고통을 견뎌야 했던 무딘 발이 있습니다. 마라톤을 우승한 선수의 웃음 뒤에는 심장이 멋을 것 같은 고통과 훈련이 있었습니다. 씨앗은 죽을 것 같은 고통을 겪어야 비로소 싹이 트고, 꽃이 피며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알은 깨지는 고통을 겪어야 비로소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애벌레는 죽은 것 같은 고치의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나비가 되는 것입니다. 태중의 아이는 엄마의 품을 나와야만, 생명의 줄이었던 탯줄을 끊어야만 스스로 호흡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셋째는 창조입니다. 에디슨은 놀라운 발명을 많이 했지만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발명은 99%의 노력과 1%의 재능으로 이루어집니다.” 99%의 노력은 99번의 실패와 좌절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인류가 지금의 문명과 문화를 발전시킨 것은 뼈를 깎는 아픔을 견디어낸 사람들의 땀과 눈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통은 더 근원적인 질문을 하게 합니다. 우리는 종업원과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사장과 이야기합니다. 사장이 더 큰 책임과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고 가신 십자가는 죄를 씻기 위한 십자가였습니다.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은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이었습니다.

 

전쟁을 앞둔 군대는 총, 탱크, 군함, 전투기와 같은 무기를 준비합니다. 전투력은 강한 정신력에서 시작하지만 막강한 화력으로 채워지기 때문입니다. 기업은 땅, , 상품, 기술과 같은 무기를 준비합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무한 경쟁 사회입니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본과 기술로 만든 특별한 상품이 있어야 합니다. 눈이 오는 추운 겨울날 홀로 푸르게 빛나는 나무처럼 살기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의 제 1독서는 하나의 처방을 내려 주십니다. 바로 하느님께 대한 신뢰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내가 어떠한 처지에 있어도 나를 기억해 주시고, 내가 어떤 고난에 있어도 나를 지켜 주시며, 나를 죽음의 골짜기에서도 구해주실 수 있는 분이라는 신뢰, 이와 같은 신뢰를 가진 사람은 고통과 시련이 다가와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오늘 제 1독서를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내가 너에게 말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말하여라. 너는 그들 앞에서 떨지 마라. 그랬다가는 내가 너를 그들 앞에서 떨게 하리라.” 예레미야 예언자는 자신의 시대에서 사회적인 혼란을 목격하였고, 그런 혼란의 시대에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자 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것은 때로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자하는 예수님의 상황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사명과 뜻을 확실하게 말하였지만 예수님을 잘 아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출신과 예수님의 학력을 먼저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말씀보다는 예수님의 주변 환경을 보았고 그것 때문에 예수님의 가르침과 진심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사실 우리는 이런 모습을 우리 삶의 주변에서 많이 접하게 됩니다. “저 사람은 옛날에 가난했는데, 저 사람은 옛날에 공부를 못했는데, 저 사람은 장애자였는데하면서 우리는 진실을 보는 것이 아니라 편견과 왜곡된 시각으로 사람을 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제 2독서는 우리가 모든 고통과 시련을 이겨내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뛰어난 약효를 지닌 처방을 주고 있습니다. 그 처방대로 하면 그 어떠한 환난과 고통도, 세상의 모든 괴로움과 절망에서도 능히 일어 설 수 있는 약입니다.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승진을 했는데, 사랑하는 사람이 합격을 했는데, 사랑하는 사람이 상을 받았는데 어찌 축하해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병원에 입원했는데,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 중에 있는데, 사랑하는 사람이 슬퍼하고 있는데 어찌 찾아보지 않고, 어찌 위로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아니 시기할 수 없게 만듭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어주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우리의 사랑으로 차가운 겨울의 냉기를 녹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우리의 사랑으로 지치고 힘든 이웃에게 힘을 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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