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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2.03)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2-03 조회수1,263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9년 2월 3일

연중 제4주일

제1독서 예레 1,4-5.17-19

요시야 시대에

4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5 “모태에서 너를 빚기 전에

나는 너를 알았다.

태중에서 나오기 전에

내가 너를 성별하였다.

민족들의 예언자로 내가 너를 세웠다.
17 그러므로 이제 너는

 허리를 동여매고 일어나,

내가 너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말하여라.

너는 그들 앞에서 떨지 마라.

그랬다가는 내가 너를 그들 앞에서

떨게 할 것이다.
18 오늘 내가 너를 요새 성읍으로,

쇠기둥과 청동 벽으로 만들어

온 땅에 맞서게 하고,

 유다의 임금들과 대신들과

사제들과 나라 백성에게 맞서게 하겠다.

19 그들이 너와 맞서 싸우겠지만

너를 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를 구하려고 너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제2독서 1코린 12,31─13,13

형제 여러분,

31 여러분은 더 큰 은사를

열심히 구하십시오.

 내가 이제 여러분에게

더욱 뛰어난 길을

보여 주겠습니다.

 13,1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깨닫고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믿음이 있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3 내가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고

내 몸까지 자랑스레 넘겨준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4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5 사랑은 무례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6 사랑은 불의에 기뻐하지 않고

진실을 두고 함께 기뻐합니다.

7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8 사랑은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습니다.

예언도 없어지고

신령한 언어도 그치고

 지식도 없어집니다.

 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합니다.

10 그러나 온전한 것이 오면

부분적인 것은 없어집니다.

11 내가 아이였을 때에는

아이처럼 말하고

 아이처럼 생각하고

아이처럼 헤아렸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아이 적의 것들을

그만두었습니다.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어렴풋이 보지만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입니다.

내가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때에는 하느님께서

나를 온전히 아시듯

나도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13 그러므로 이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복음 루카 4,21-30

그때에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21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22 그러자 모두 그분을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였다.

그러면서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23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틀림없이 ‘의사야, 네 병이나 고쳐라.’

하는 속담을 들며, ‘네가 카파르나움에서

하였다고 우리가 들은 그 일들을

여기 네 고향에서도 해 보아라.’할 것이다.”

24 그리고 계속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큰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이 있었다.

26 그러나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27 또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28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화가 잔뜩 났다.

29 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다.

그 고을은 산 위에 지어져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그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3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어느 간병인이 한 할머니를

 10년 넘게 자신의 어머니처럼

간병을 했습니다.

이 할머니는 오랫동안 자신을 정성껏

 돌봐준 간병인이 너무나 고마웠지요.

그래서 자신의 이름으로 된

주택 한 채와 땅이 있었는데,

 땅은 자녀들에게 상속하고

 이 주택은 간병인에게 증여하라는

유언장을 남겼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간병인과

자녀들은 모두 유언 내용에

 깜짝 놀랐습니다.

특히 자녀들은 간병인이 할머니를

꼬드겨서 그런 유언장을 남긴 것이라면서

소송을 제기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간병인은

 큰 상처를 받았다고 합니다.

어떤 사실 여부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을 재산이나 탐내는 욕심 많은

사기꾼으로 몰아세우는 모습에서

크게 화도 나고 상처도 받은 것이지요.

그래서 자녀들이 너무 괘씸해서

 법적 대응을 할까도 생각했지만,

 할머니께서 좋아하시지 않을 것 같아서

욕심 부리지 않고 모두 자녀들에게

돌려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후에 듣게 된 자녀들의 말과

 행동에 더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캥기는 것이 있어서 재산을

포기한 것이라면서 자기들이

 재빨리 소송을 걸지 않았으면

 어머니 재산을 모두 날릴 뻔 했다면서,

10년 넘게 자신의 어머니를 보살펴 준

간병인을 사기꾼 취급을 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해야 할 몫을 대신 해 준

간병인에 대한 고마운 마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 자녀들의 모습이 지금 현대인들의

 일반적인 모습은 아닐까 싶습니다.

먼저 의심하고 단죄하고 봅니다.

그래서 부모의 감사하는 마음조차

 남에게 절대로 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주님 곁으로 먼저 간 할머니께서는

이 모습에 어떤 마음이 드실까요?

그리고 주님께서는

이 모습을 어떻게 보실까요?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 역시

이런 모습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은총의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데 몇몇 사람들은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루카 4,22)라면서 색안경을 끼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이렇게 의심하고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편견을 보시면서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루카 4,24)라고 말씀하시지요.

그리고 실제로 많은 은총을

베풀지 않으십니다.
편견 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예수님의 은총을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편견 없는 믿음은 세상의 기준을

내세우는 곳에 있지 않습니다.

그보다 오늘 제2독서의

사도 바오로가 말하고 있듯이,

사랑의 마음을 통해서 편견 없는

 믿음을 갖출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1코린 13,2)라고 힘차게 말했던 것입니다.
세상의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기준을 내세우는데 모든 힘을

기울여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는 주님의 은총이 이 세상

한 가운데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우리의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께서 진실로 원하셨던

좋은 사랑 가득한 하느님 나라가

완성될 수 있습니다.

일은 크거나

 작거나 신중하게 하여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작은 일을 함부로 하게 되면

큰일도 함부로 하게 된다.

큰일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은

 작은 일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된다.

(정조대왕)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례사.

“이제 두 사람이 부부가 되었습니다.

알콩달콩, 토닥토닥 잘 살기 바랍니다.”
어느 결혼식의 주례사 전문입니다.

이렇게 짧은 주례사는 사실 신부 측의

아버지께서 하신 주례사였습니다.

원래 주례 선생님이 따로 계셨는데,

날짜를 착각하셔서 오실 수가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급조된 주례사를 신부 측

아버지께서 하신 것이었지요.
성의가 없어 보일까요? 아닙니다.

사실 이 정도면

최고의 주례사인 것 같습니다.

주례사는 신랑 신부에게 하는 것인데,

어차피 이 순간에 긴장되어서

아무것도 듣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객들은 잘 들을까요?

 그들 역시 자기들에게 하는 말이 아니니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필요한 내용만 있으면

그만입니다.
알콩달콩. 아기자기하고

사이좋게 살라는 것입니다.

토닥토닥. 서로 위로해주고

사랑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이것보다 필요한 말이 어디에 있을까요?

진리는 반드시

긴 문장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짧은 문장을 통해서 더 큰 힘이

전달될 때도 얼마나 많습니까?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있는

제 자신의 모습에 반성을 합니다.

꼭 필요한 말, 사람들에게 힘과

위로를 주는 사랑의 말을 전달하는

우리가 됩시다.

다른 사족들은 모두 빼고 말이지요....

(주례사에는 많은 말이 필요없습니다. 사랑하나면 끝~~)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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