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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황님미사강론]제34회 세계청년대회 파나마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목 방문 미사 강론(19.1.26)
작성자정진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9-02-04 조회수1,366 추천수0 반대(0) 신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미사 강론입니다.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19.index.html

https://www.vaticannews.va/e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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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강론 날짜] 2019126일 주일[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기념일]

[강론 당일 독서와 복음 말씀] 1독서 : 티모테오 2 1,1-8

화답송 : 시편 96(95),1-2.2-3.7-8.10(◎ 3 참조)

복음 : 루카 복음 10,1-9

http://maria.catholic.or.kr/mi_pr/missa/missa.asp?menu=missa&missaid=9630&gomonth=2019-01-26&missatype=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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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회 세계청년대회 파나마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목 방문

 

사제들, 수도자들 그리고 평신도 운동가들과 함께 산타 마리아 라 안티구아

대성당 성전 봉헌 거룩한 미사

 

교황 성하의 강론

 

산타 마리아 라 안티쿠아 대성전

2019 1 26일 토요일

 

나는 먼저 대주교에게 축하하고 싶습니다. 그는 거의 7년 만에 처음으로 자신의 배우자 이 기간 동안 미망인이 되었던 이 교회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오늘 자신의 남편을 만나면서 미망인이 되기를 멈춘 그 미망인을 축하하고 싶습니다. 나는 또한 이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싶습니다. 즉 당국과 하느님의 전체 백성에게 빌린 집에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집에서 그의 백성을 만날 수 있음을 대주교가 확신하면서 이루어진 모든 일들에 대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한정된 시간으로 인해 이 의식의 프로그램은 두 가지를 기획했습니다. 제대의 축성과 사제와의 만남, 다른 봉헌된 평신도들과 함께 남성과 여성 수도자들과 사제들과의 만남. 그러므로 내가 여러분에게 할 이야기는 사제들과 신자들과 다른 수도자들과 특히 이 특별한 교회에서 사도직을 수행하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면서 이 맥락들을 따라 갈 것입니다.

 

그곳에는 야곱의 우물이 있었다. 길을 걷느라 지치신 예수님께서는 그 우물가에 앉으셨다. 때는 정오 무렵이었다. 마침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으러 왔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하고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요한 복음 4,6-7).

 

우리가 들은 복음 말씀은 당신의 여정으로 지쳐 있으신 예수님을 우리에게 작게 보여 주지 않습니다. 정오 무렵 태양이 그 힘과 능력을 모두 느끼게 만드는 때 우리는 우물 옆에 앉아 계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분께서는 쉬셔야 했고 당신의 갈증을 푸셔야 했고 당신의 발걸음을 다시 새롭게 하셔야 했고 당신의 사명을 계속해 나가기 위해서 당신의 힘을 회복해야 했습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싸매어 주며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갇힌 이들에게 석방을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은혜의 해, 우리 하느님의 응보의 날을 선포하고 슬퍼하는 이들을 모두 위로하게 하시려는(이사야서 61,2-3 참고) 주님의 약속과 예비하심의 크기를 제자들은 직접 경험했습니다. 삶과 에너지를 소모하는 이 모든 상황들. 그러나 그것들은 스승님의 삶에서 많은 중요한 순간들, 우리 인류 안에서의 순간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또한 생명의 말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정으로 지치는 것.

 

우리가 주님 행위와의 친교 안으로 들어가고 상상하는 것은 비교적 쉬운 일이고 우리가 그렇듯 어쩔 수 없이 분주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께서 지치는 것을 묵상하고 그것에 동행하는 방법을 항상 알지는 못합니다. 이것은 하느님께 합당한 어떤 것이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주님께서는 피곤하게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지치는 피곤함 안에서 우리 나라 그리고 민족들, 우리 공동체들 그리고 지치고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마태오 복음 11,28 참고) 모든 이들의 그토록 수많은 싸움들은 자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사제로서 남녀 수도자로서 평신도 운동의 일원으로서 우리가 여정에 지치는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먹고 쉬고 기도하고 가족들과 함께 할 시간을 조금 밖에 남겨두지 않는 오랜 시간의 일부터 실망하고 지치게 하는 유해한 일하는 환경과 관계들까지. 매일 매일의 단순한 책무에서 어느 하루에서 다음 날로 나아가는데 필요한 휴식, 감사 또는 지지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의 힘든 일상까지. 평범하고 예측 가능한 사소한 문제들부터 장황하고 너무 길고 스트레스가 많은 중압감을 주는 시기들까지. 견뎌야 하는 짐들의 집합체 전체.

 

수도자들의 모든 생활들과 부딪히는 이 모든 상황들에 대처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불가능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들 모두 안에서 우리는 여정에서 오는 우리의 갈증을 해소하고 우리의 지치는 피로를 없애줄 우물을 발견할 시급한 필요를 느낍니다. 이 모든 어려운 상황들은 조용한 간청처럼 우리가 다시 한번 출발할 우물을 요구합니다.

 

한동안 미묘하게 지치는 것이 우리들의 공동체 안에서 자리를 찾았을지도 모르는데 그 지치는 피곤함은 주님께서 지치시는 것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주의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희망에 지친다 라고 부를 수 있는 유혹입니다. 이 지치는 피곤함은 복음에서와 같이 태양이 무자비하게 내려 쬘 때 계속 걷거나 앞을 보는 것 조차도 불가능해지는 절실함으로 이 피곤함이 느껴집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집니다. 나는 여기서 하루의 끝에 완전히 지쳤다고 느끼는 그러나 고요하고 감사한 미소를 어떻게든 지어낼 사람들이 느낄 마음의 특별한 무거움”(Redemptoris Mater, 17, 복음의 기쁨 287 참고)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다른 지쳐버림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지쳤다는 것은 현실이 엄습해 오는 이 세상에서 변화하고 도전하는 이 세상에서 일단 현실이 우리 사명의 에너지와 근원과 실행 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는 것을 내달 보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마비시키는 것은 바로 지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앞을 향해 바라보며 우리가 하나의 사회로서 경험하고 있는 극심하고 혼돈스러운 도전들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지 못하는 것에서 옵니다. 이 도전들은 관계를 맺고 말하는 우리의 방법과 자세와 습관뿐 아니라 많은 경우에 그 도전들은 오늘날의 세상에서 신앙의 삶이 가능한가 바로 그것에 의심을 던집니다. 그리고 이 도전들의 그 극한 속도가 우리의 선택과 의견을 마비시킬 수 있습니다. 한편 과거에 의미 있고 중요한 것이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희망에 지치는 것은 죄로 상처 받은 교회를 보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그러한 교회는 매우 자주 스승님의 울부짖음-“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마태오 복음 27,46)-를 따라 울려 퍼지는 그 모든 울부짖음들을 듣지 못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불확실하고 알 수 없는 미래 앞에서 희망에 지치는 것에 익숙해 질 수 있고 이것은 우리 공동체의 마음에 박혀 있는 잿빛 실리주의의 길을 포장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겉보기에는 평상시처럼 계속 되지만 그러나 현실에서 신앙은 부스러지고 있고 실패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거나 우리가 우리의 메시지를 위한 자리는 없다고 생각하는 현실에 실망하는 공동체들과 사제들, 우리는 우리 시대의 가능한 가장 나쁜 이단들 중 하나에 문을 열 수 있습니다. , 지금 태어나고 있는 새로운 세상에서 주님과 우리의 공동체들이 말할 것도 없고 공헌할 것도 없다는 생각(복음의 기쁨 83 참고).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

 

여정으로 인해 지치는 일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것 자체로 느껴집니다. 그것과 같거나 그렇지 않거나 우리는 스승님과 같은 용기를 갖고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라고 말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사라미아 여자의 경우 아마도 우리 중 한 사람의 경우와 같이 우리는 단순히 물이 아니라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요한 복음 4,14)으로 우리 갈증을 풀기를 원합니다. 여러 해 동안 실패한 사랑의 빈 물통들을 날라 왔던 사마리아 여자와 같이 우리는 우리 소임 안에서 단지 어떤 말이 에너지와 예언을 되찾게 도와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단지 어떤 참신함이, 그것이 얼마나 매력적으로 보인다 할지라도 단지 그 참신함으로 우리의 갈증을 풀어 줄 수는 없습니다. 사마리아 여자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종교의 지식도 유지되는 선택들과 과거의 전통들이나 현재의 새로움들도 항상 우리를 진실하고 열정적인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 안에”(요한 복음 4,23) 있도록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같은 말을 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그 말을 하면서 문을 엽시다. 그리고 우리의 지친 희망이 두려움 없이 우리 첫 사랑의 깊은 우물로 돌아옵시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길을 지나가시며 자비로이 우리를 바라 보시고 그분께서 우리를 선택하셔서 우리에게 당신을 따르라고 하셨던 때 우리 첫 사랑의 우물로. 그렇게 말하기 위해서 그분의 눈과 우리의 눈이 마주친 순간, 그분이 우리를 개인적으로뿐만 아니라 공동체로서도 사랑했다는 것을 우리가 깨닫도록 그분께서 만들어 주셨던 순간을 되살립시다(2014 4 19일 부활 전야 강론 참고).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창의적인 충실함 안에서 우리의 걸음들을 돌아보는 것을 의미하며 성령께서 어떻게 어떤 구체적인 일과 사목 계획이나 기구들에게도 영감을 주지 않으시는지, 그것이 아니라 대신 많은 이웃 성인들”–이 세상 제도들의 설립자들과 당신의 공동체들에 근거를 두었던 주교들과 교구 사제들을 포함한- 을 통해서, 모든 희망과 존엄함이 질식되고 부서진 것 같았을 때 역사의 특별한 순간에 생명과 신선한 호흡을 그분께서 주셨던 저 이웃 성인들을 통해서.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는 깨끗하여 질 용기를 의미하고 우리의 첫 카리스마-신앙 생활뿐 아니라 교회 전체로서의 삶을 위한-의 가장 정수가 되는 부분을 되찾겠다는 용기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오늘날 어떻게 드러날 수 있는지를 볼 용기를 의미합니다. 이것이 감사함으로 과거를 돌아볼 뿐 아니라 그들의 영감을 그 영감들의 근원을 찾는 것을 의미하고 그것들을 우리 가운데에서 한번 더 강력하게 울려 퍼지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프란치스코 교황-페르난도 프라도, 부르심의 힘, 42).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는 여행, 하느님 구원 여행과의 만남을 염두에 두고 의식하는 남자와 여자로 우리를 만들어 주시는 성령님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어제 그렇게 하실 것처럼 그분께서 여전히 내일도 그렇게 하실 것이라는 것을 신뢰하는 것.  뿌리로 가는 것은 우리가 의심하지 않도록 도와 주고 두려움 없이 현재에 살도록 도와줍니다. 우리는 역사에 참여하고 상황에 몰두하면서 두려움 없이 살아야 합니다. 연인들의 열정으로”(Pope Francis-Fernando Prado, The Strength of a Vocation, 42 참조).

 

지쳐 버린 희망은 치유될 것이고 그리고 마음의 특별한 피곤함을 즐길 것입니다. 그 첫사랑의 장소로 돌아 오는 것이 두렵지 않을 때 변방에서 오늘날 우리 앞에 있는 도전들 안에서 우리를 앞서 간 사람들의 노래와 눈빛에 영감을 준 그 같은 노래와 같은 눈빛을 발견하는 것이 두렵지 않을 때 말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자기 자신과 함께 시작하는 위험을 피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께서 계속해서 오늘 우리를 찾으시고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를 사명으로 초대하시는 것처럼 그분께서 그 첫 만남, 우리 첫 사랑의 그 만남 안에서 하셨듯이 그리스도의 눈빛과 만나기 위해서 지긋지긋한 자기 연민을 버릴 것입니다.      

 

* * *

 

이 성당이 오랜 보수 공사 후에 지금 그 문을 다시 여는 것이 나에게 사소한 일이 아닙니다. 이 성당은 이 민족 역사의 진실한 증인으로서 여러 해가 지나가는 것을 경험해 왔고 많은 이의 도움과 일함으로 이 성당이 다시 한번 그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어 합니다. 언제나 본래의 외양을 재현하려고 시도한 형식적인 복원 이상으로 이 복원은 현재의 새로움을 위한 자리를 만드는 동안 과거의 아름다움을 보전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과거의 세대와 이 현실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오늘날의 세대에 속하면서 스페인과 인도와 아프리카계 미국의 성당이 이렇게 파나마의 성당이 됩니다. 그것은 더 이상 과거에만 속하지 않고 현재를 위한 아름다움의 것입니다.

 

오늘 그것은 다시 한번 평화의 자리이며 그것은 우리 희망을 다시 새롭게 하고 자라나도록 우리에게 용기를 북돋우고 어제의 아름다움이 어떻게 내일의 아름다움을 창조하기 위한 기반이 되는지 발견하도록 우리를 격려합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입니다. 희망은 지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첫 사랑의 그 눈빛으로 희망에 맡겨졌던 모든 것과 함께 매일 견디어 내는 마음의 특별한 피곤함이 있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 자신을 희망을 빼앗기도록 두지 말고 우리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아 온 아름다움을 빼앗기도록 두지 않도록 해 주소서. 그것이 우리가 계속해서 이 땅에서 구원의 역사를 아름답고 예언적으로 만들도록 돕는 살아 있는 뿌리, 진실한 뿌리가 되게 하소서.

 

강론영어원문 ->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19/documents/papa-francesco_20190126_omelia-cattedrale-panama.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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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프란치스코 교황님 미사 강론을 소리로도 전해 드리고 있습니다.

강론 번역문을 보기 어려우신 분들, 눈이 불편하신 분들, 연로하신 분들,

또 그밖에 글을 읽는 것보다 듣는 것이 더 편하신 분들에게 많이 전달되면 좋겠습니다. 

 

마리아 사랑넷

https://www.mariasarang.net/

(홈페이지->신앙 생활 ->교황님 미사 강론->심쿵 소리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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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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