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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앙의 라이벌도 때론 필요하다.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19-02-06 조회수1,457 추천수1 반대(1) 신고

 

 

 

만약 신앙생활하면서 신앙의 라이벌이 없다면 어떨까요? 신앙의 라이벌이 없다면 신앙은 성장하지 않을 겁니다. 새벽에 배가 고파서 깨어 잠시 간식을 먹으면서 사이트를 열어 보고 장재봉 신부님의 글 하나가 올라와 있어서 그 글을 보면서 순간 어떤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 생각을 한번 같이 나누어보겠습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사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애들을 가르치면 여러 가지 경우가 생깁니다. 때로는 맨투맨 형식으로 수업이 진행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실 아는 학부모 중에는 할 수만 있다면 맨투맨으로 자녀에게 수업을 진행하려고들 하십니다. 그만큼 맨투맨이 실력향상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부분에 대해서 사실 그건 사실이라고 인정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맹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분명 맨투맨으로 하면 자기에게 가장 최적으로 맞춤식 강의를 진행하니까 아무래도 시간 대비 효율이 상당히 좋은 건 사실이지만 혼자 수업을 하다 보면 경쟁 상대가 없기 때문에 공부를 하면서 자극을 받지 않는다는 게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자칫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고 또 혼자하다 보면 스스로에 대해 경쟁이라는 자극제가 없기 때문에 슬럼프도 잘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아주 많이 경험하는 것이지만 서로 서로를 위해서 더 많은 수업을 듣기 위해서, 각각 학생에게 양해를 구해 서로의 수업을 교대로 들을 수 있도록 혜택을 줍니다. 그러면 자기들은 더 많은 수업료를 주지 않고도 수업을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제가 한 제안에 대해 부모님들도 학생들도 동의를 합니다. 그렇게 저는 애들을 같이 수업을 하게 하면서 애들에게는 말하지 않고 수업의 방향을 서로 경쟁을 자연스럽게 유도를 합니다. 그냥 일방적으로 수업만 진행하면 단지 지식만 얻어가는 수준밖에 되지 않습니다.

 

제가 그렇게 하려고 하는 목적은 선의의 경쟁을 함으로써 혼자만의 수업으로 인해 안일해질 수 있는 자신에게 경각심을 일으켜주기 위해 제가 의도적으로 했기 때문에 그렇게 수업을 진행하였던 겁니다. 그렇게 수업을 진행하다보면 크게 두 가지 부류가 형성됩니다. 제가 지금까지 그런 경험을 토대로 봤을 때 말입니다. 첫 번째는 경쟁을 통해서 성장하는 경우입니다. 두 번째는 혼자 수업을 했을 때랑 거의 실력이 늘지 않은 경우입니다. 제가 그동안 아이를 지도하면서 느낀 겁니다만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를 한번 분석해봤습니다.

 

성장하지 않은 아이는 왜 성장하지 않았을까요? 이 아이는 단지 상대방보다 실력에서 지지 않으려고 경쟁을 해서 더 많은 노력을 했기에 실력이 올라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보면 평범한 사실로 봤을 때는 경쟁을 했기 때문에 실력이 올라갔을 거라고 추론하는 게 지극히 정상적일 겁니다. 물론 그 사실도 맞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저는 이런 측면을 봤습니다. 정말 이건 놀라운 발견이었습니다.

 

사람의 심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가 있는 대목입니다. 우리가 라이벌을 생각할 때 이 라이벌이 나의 생존에 적이라고 생각하는 경우와 즉 말하자면 순수한 경쟁상대로만 생각할 경우와 또 하나는 나의 라이벌이 나와 서로 선의의 경쟁상대라고 생각하고 경쟁하는 경우에 있어서 즉 경쟁을 하더라도 어떤 마인드를 가지고 경쟁하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완전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때 중요한 걸 발견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저마다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달란트가 다 다릅니다.

 

바로 은사입니다. 이미 성경에도 나오지 않습니까? 누구는 무슨 은사를 누구는 무슨 은사를 말입니다. 사람은 또 하나의 인간인지라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은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이 가지고 있는 은사에 대해서 부러움을 가지는 건 당연한 심리입니다. 단지 부러움을 갖는 것까지는 죄가 되지 않겠지요. 그것도 없다면 사람이라고 말할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단지 그 부러움을 넘어서서 시기와 질투로 이어진다면 그건 문제가 되겠지요? 개인적으로 저에 대해 이 부분 잠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저는 음악성은 전혀 없습니다.

 

단지 예전에 서울에 살 때 집안에 대단한 음악가가 있어서 아주 유명한 공연을 많이 접할 수가 있어서 청각적인 기능은 좀 상당히 발달해있습니다. 근데 일명 말하는 출력은 영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본당에서 대축일이나 일반 주일 미사 때 성가대에서 퍼져 나오는 성가대원들의 성가 소리를 들을 때마다 상당히 그분들이 부럽습니다. 부러워하는 것은 죄가 되지 않습니다. 저는 단지 부럽다는 선에서 그칩니다.

 

만약 제가 그런 분들의 재능을 탐나 시기나 질투를 한다면 얼마나 우스꽝스럽겠습니까? 그건 그분들께 하느님께서 주신 재능인데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역으로 생각해봤을 때 그건 자칫 잘못하면 하느님께 모멸감을 주는 행위나 다름 없습니다. 옹기장이 말씀처럼 그건 옹기장이를 빚은 분에게 왜 그런 옹기장이를 빚었고 나는 이런 옹기장이로 빚었냐고 하소연하는 거나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사안에서 어떤 생각을 하는 게 좋을까요? 바로 그냥 저마다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은사가 다 다르듯이 이 또한 이렇게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자기도 그 사람과 다른 은사를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게 무엇이 있는지를 보고 자기가 받은 은사에 대해 감사함을 가지는 게 좋을 듯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사람들은 자기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은사가 있지만 그 은사가 무었인지를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그 은사를 사장시키는 경우가 정말 많이 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애들을 지도하면서도 그런 걸 많이 발견합니다. 저는 어학을 지도하지만 어떤 경우는 제가 봤을 때 애들한테 특이한 재능을 발견합니다. 저는 그런 재능을 부모님께 말씀드리면 부모님들은 자기들이 그런 재능을 발전시켜서 아이가 성장한다면 부모님들이 생각하는 만큼 아이가 성공가도를 달리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그만 그런 조언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세월이 흘러서 우연히 소식을 주고받으면 그때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때 저 말을 참고로 해서 애한테 자기가 가진 재능을 발전시켜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말입니다. 저는 이런 일을 경험하면서 생각하는 게 한 가지 있습니다. 바로 남의 떡이 크게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또 신앙적인 측면에서 보면 그건 또 하나의 욕심이겠지요. 더 큰 자기의 능력에 맞추어서 목표를 설정했다고 하더라도 그런 조언도 충분히 받아들여 자신의 재능을 발전시켰더라면 후회하지 않고 더 만족스런 삶을 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맞지도 않는 옷을 입으려고 과도하게 욕심을 부려서 그러니까 자신의 능력밖의 삶을 추구하다 보니 오히려 더 힘들고 고단한 삶을 사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일 겁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결론을 말씀드린다면 우리는 신앙인입니다. 또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악도 선으로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저마다 가지고 있는 달란트가 다 다릅니다. 오케스트라도 다 저마다 각각의 악기의 음색이 다 다릅니다. 연습할 때 보면 각각 내는 소리일 때는 정말 듣기 싫은 소음에 불과합니다. 그런 소음도 지휘자에 지휘에 맞추어 하나의 화음으로 어울어질 때는 아름다운 소리로 변화되어 나옵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의 공동의 배를 타고 하느님나라를 항해하는 공동운명체입니다. 그래서 하나의 일치된 화음으로 하늘나라를 향해 함께 다 완주해야 하는 공동체입니다. 여기서는 낙오자가 있어서도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 만약 낙오자가 있는 상황에서 하느님께 우리가 이 세상을 귀양살이하다가 간다면 그때 하느님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하느님의 마음은 한 사람도 낙오 없이 모두가 무사히 하늘나라에 오기를 소원하실 겁니다. 이제 마무리하겠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나와 다른 재능이 있는 형제자매를 시기와 질투의 대상으로 여기면 자신의 신앙은 그걸 선의의 경쟁 상대로 여겨 자신의 실력향샹을 도모하는 학생처럼 좋은 모티브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게 되어 성장으로 변화를 꾀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고 그냥 단순히 나의 영원한 적수로만 생각한다면 자신이 그런 경쟁 속에서 하나의 경쟁 상대로만 생각한다면 그건 상대방을 밟고 올라가야만 하는 그냥 단순한 경쟁상대로만 생각한다면 그 사람에겐 그다지 그렇게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할 겁니다.

 

어느 정도의 소기의 목적은 달성할 수는 있겠지만요. 서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경쟁을 하더라도 어떤 마음을 가지느냐에 따라서 가져오는 결과가 엄청 차이 나듯이 우리도 이런 관점에서 신앙공동체 안에서 이런 마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면 정말 자신의 신앙에 많은 유익을 가져다 줄 수 있고 또한 하느님 보시기에도 좋은 모습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번 해봅니다배가 출출해 일어나서 순간 떠오르는 생각을 말했습니다만 도움이 되셨으면 참 좋겠습니다. 하나 다시 추가합니다.

신앙의 라이벌은 나의 라이벌 즉 장애물이 아니라

나의 신앙이 성장할 수 있도록 해 줄 수 있고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해 주는 신앙의 디딤돌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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