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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내 욕구에 사로잡히면 상대의 욕구가 안 보인다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9-02-06 조회수1,683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9년 다해 연중 제4주간 목요일



<내 욕구에 사로잡히면 상대의 욕구가 안 보인다>

 

 


  복음: 마르코 6,7-13




하느님의 아들이며 말씀이신 그리스도


(1540-1550), 모스크바 크레믈린 Cathedral of the Sleeper

 

  

 

 

제가 군대에서 읽었던 책 중에 유태인의 상술이란 책이 있었습니다. 책 내용 중에 여성의 주머니를 노려라, 현금을 가지고 있어라, 장기적인 투자가 이긴다 등의 소제목이 기억납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빵을 좋아하면 빵장사 하지 말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내가 빵을 좋아하면 다른 사람도 당연히 그것을 좋아할 것으로 여기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장사가 안 되면 내가 먹으면 이렇게 맛있는데 사람들은 왜 안 사지?’라고 생각하며 개선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빵을 싫어하는 사람이 빵장사를 하면 빵을 싫어하는 입장에서자신이 파는 것을 바라보기에 이렇게 저렇게 개선하려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싫어하는 것을 팔아야 더욱 사려고 하는 사람의 욕구를 더 잘 알기에 성공할 가능성이 큰 것입니다. 내 욕구에 집중하면 상대의 욕구에 무관심해지기 때문에 반드시 망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돈을 얻으려면 내 욕구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욕구를 먼저 생각해야합니다.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먼저 생각하려면 내 욕구에서 자유로워야합니다. 신학생들에게 신자들이 가장 원하는 사제상에 대해 물었더니, “강론 잘 하는 신부”, “고해성사 잘 주는 신부등의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나 신자들이 사제들에게 원하는 것은 다른 것이었습니다. 1위가 겸손한 신부’, 2위가 기도하는 신부였습니다. 신학생들조차도 자신들이 복음을 전해야 하는 신자들이 무엇을 원하는 지에 대해 잘 모르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둘씩 짝지어 제자들을 파견하십니다. 혼자 복음을 전하는 것보다 둘이 하면 더 큰 힘이 발휘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둘이 함께 다닌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일까요? 저는 외국에 있으면서 둘이 여행 나와서 싸우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바오로 사도도 사실 마르코와 사이가 좋아지지 않아 복음을 전하다가 헤어지기도 했다고 전해집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한 것은 둘이 서로 의지가 되라는 뜻도 있겠지만 관계를 잘 맺는 모범을 보여주라는 뜻도 있을 것입니다. 본당 주임신부와 보좌신부 사이가 좋지 않으면 아무래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하는 사제의 강론의 힘이 떨어질 것입니다. 본당 사제와 본당 수녀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신자들이 보기에 우선 서로 관계를 잘 맺는 사목자들이 되고 그 이후에 복음을 선포하기를 원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신발도, 옷도, 전대에 돈도 지니고 다니지 말라고 하십니다. 돈에 대한 욕구, 미래에 대한 걱정 등은 다 믿음이 없는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런 욕구들에 사로잡혀 있다면 내 욕구가 눈을 가려 신자들의 욕구를 바라볼 수 없게 됩니다. 자신이 미래에 대한 걱정, 돈에 대한 걱정, 명예에 대한 걱정이 가득한데 어떻게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느낄 수 있겠습니까? 남의 진맥을 보려면 먼저 자신의 진맥부터 가라앉혀야 합니다. 잔잔한 물이 되어야 상대의 모습이 비춰져 보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목자들에게 신자들이 보기에 세상 재물에 애착이 없는 복음전파자가 되라는 뜻 같습니다.

 

또한 이집 저집 옮겨 다니지 말고 받아주는 집에 계속 머물라고 하십니다. 이 사람이 좋아서 이 사람과 친하다가 또 저 사람이 좋으니 저 사람과 친해지는 사람은 선교를 위함이 아닌 자신과 어울릴 사람을 얻기 위한 애정에 집착하는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이런 욕구도 선교를 하는데 매우 장애가 됩니다. 만약 아무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면 그저 발의 먼지를 털어버리고 떠날 수 있어야합니다. 사람의 애정이나 인정을 바라는 사람들 역시 복음을 순수하게 전해줄 수 없습니다. 어쩌면 본당의 신자들이 갈라지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애정에서도 자유로운 복음전파자가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이들이 무언가 부족하여 이 세상 것들에 대한 욕구에 사로잡힌다면 이는 복음을 전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그 명목으로 사람을 이용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부족한 것이 없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 자신 안에 복음이신 하느님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파견하시는 사람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기름을 바르면 병이 치유되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이들은 내가 가진 좋은 것을 전해주는 것에서 충분한 기쁨을 누려야합니다. 어머니가 아이에게 젖을 먹이며 편안해하는 아기 얼굴을 보면 그것으로 만족스러운 것과 같습니다. 내 욕구에 가장 덜 집중하는 사람이 복음전파를 위해 가장 큰 효과를 내는 주님의 도구가 됩니다. 주님만으로 충분히 행복한 이라야 참으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복음전파자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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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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