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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서울교구 최영식 마티아 신부님의 영원한 안식을 빌며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19-02-07 조회수1,509 추천수1 반대(0) 신고

 

 

중요한 강의가 있어서 자료를 만드는 중에 굿뉴스 싸이트에 접속해서 잠시 올라온 소식을 점검하려다가 공지사항에 서울 교구 신부님 한 분이 선종하신 내용을 확인했습니다. 향년 72세이셨습니다. 순간 연세를 보고 떠오른 생각입니다. 잠시 제 생각을 나누어보겠습니다. 아직 이르긴 하지만 요즘 일명 100세 시대라고들 합니다. 옛날 같으면 꿈도 못 꾸는 장수를 누리는 시대입니다. 사실 100세 시대라고는 하지만 삶의 질을 놓고 봤을 때는 건강한 수명을 누리는 천수는 아니라고 봅니다.

 

제가 한 2년 동안 어머니 관련해서 병원 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이 이 세상을 등지고 하늘나라로 가는 것을 많이 봤습니다. 저는 이때 정말 어쩌면 제가 평생 죽음에 대해 묵상해야 될 묵상거리를 이때 다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죽음에 대해 엄청 많이 묵상을 했습니다. 이때 한번은 정말 중요한 묵상이 한번 있었는데요 그걸 그때 그만 그 내용을 메모를 하지 않아서 제 머리에서 날라가버렸습니다.

 

그때 그 묵상은 정말 좋았습니다. 정말 제가 생각해도 너무나도 멋진 묵상이었습니다. 그때 묵상은 이런 거였습니다.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인공 생명줄과도 같은 걸 장치하고 그 튜브로 음식을 코를 통해 식도를 통과해 생명을 유지하는 환자를 보고서 어느날 떠오른 생각이었습니다. 그 환자를 보며 우리의 인생이 저 환자와 똑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정말 그 내용이 복기가 되지 않습니다. 정말 복기가 된다면 좋겠습니다. 신부님의 선종 기사를 보면서 신부님의 연세를 보니 72세입니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신부님께서 어떻게 해서 선종을 하셨는지는 잘 모릅니다. 일단은 지병으로 선종하시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그건 별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무튼 요즘 시대적인 환경을 봤을 때는 일찍 하느님 품으로 가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 하느님의 종이 되고자 이 세상에서 인간으로서 고뇌의 길을 가며 당신 아들이 가신 길을 걷고자 한 아들을 어찌 이렇게도 빨리 하늘나라로 불러가신 연유가 무엇인지요 하고 하느님께 한번 여쭤보고 싶은 마음이 문득 들었습니다. 이 생각 때문에 글을 한번 쓰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하느님만 아시겠지요.

 

우리 인간의 눈으로는 알 수 없겠지요. 저는 하느님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시간은 24시간 하루의 시간이 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시간입니다. 부자라고 해서 하루가 28시간이고 가난한 사람이라고 해서 22시간이 아니듯이 말입니다.  제가 예전에 개신교에 있었을 때 가장 의문이 되는 질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어떤 목사님이든지 제가 질문하는 성경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답변을 듣지 못한 경우가 없었습니다. 딱 하나만 제외하면요. 제가 그때 하나의 조건을 걸었죠. 목사님, 만약 제가 가지는 이 질문에 대해 정말 제 머리로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답을 주신다면 정말 제 일생을 예수님을 위해서 올인 할 수 있습니다. 그럼 그 질문이 무슨 질문인지 아시겠습니까?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고 말씀하시면서 천국이 다 왔다는 것입니다. 그당시 제가 가진 의문은 이미 2000년전에 예수님께서 그때 예수님이 계셨을 때 천국이 도래했다고 하셨는데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그 말씀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그렇다면 예수님의 말씀이 부도난 수표인지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제가 이 질문과 또 한 가지 더 질문이 있습니다만 이 질문은 이 내용과 무관해서 넘어가겠습니다.

 

유일하게 그때까지 목사님들께 성경에 대한 어떤 질문도 다 대답해 주시는데 딱 그 질문에 대해서만 답변이 어려웠습니다. 그러다가 개종후에 어느날 우연한 기회에 그냥 우연히 그 답을 알았습니다. 제가 한 일주일 동안 경남 고성에 있는 올리베따노 수도원에 신부님들과 수사님들께 잠시 영어를 강의하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영세 받고 한 1년 반 정도 되었을 때 쯤입니다. 강의를 다 마치고 그날이 토요일이었습니다.

 

옆에 수녀원이 있습니다. 마침 그날 강의도 마치고 또 주위에 어떤 신자분 한 분과 관련해서 겸사겸사해서 토요일 오후에 수도원 뜰에서 바비큐 행사가 있었습니다. 그때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요나 신부님 이연학 신부님께서도 그날 같이 계셨습니다. 파주 올리베따노에 지금 계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때 발렌티노 수사 신부님과 같이 이야기하며 우연히 알았던 겁니다. 실제로 답은 간단한 것이었습니다.

 

결과는 간단한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단순히 그렇게만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걸 끊임없이 의문을 가지고 있던 차에 어느날 한 순간 마치 대단한 발견을 했을 때 유레카라고 외치듯이 말입니다. 이날 저는 하느님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느님의 시간은 시공을 초월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성경에도 있지 않습니까?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 말씀 말입니다. 이런 사실을 조금 알고 나서는 인간 세상에서 시간의 개념은 정말 하느님의 시간으로 보면 불교에서 말하는 찰나의 시간도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유한하고 아주 짧은 시간의 찰나의 삶을 살고 있는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유한한 짧은 삶을 사는 존재가 어떻게 영원한 영원의 세계에 있는 시간 개념을 인간의 머리로 이해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 인생사에서 시간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도 한번 생각해봤습니다. 세상에는 시간은 돈이라는 격언도 있습니다. 이건 세상의 경제적인 관점에서 나온 격언일 겁니다. 그만큼 시간이 중요하다는 것이겠지요. 저는 이렇게 한번 달리 표현해보고 싶습니다. 시간은 돈이 아니라 생명이라고 말입니다.

 

왜 생명이라고 제가 말씀드리는 것일까요? 우리의 이 지상에서의 살아가는 날 수는 이미 하느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부처님 손바닥이라고도 하죠.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느님이시니깐요. 그렇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어떤 시간일까요? 그냥 하루하루 밥 먹고 그냥 하루 잠자고 또 매일의 일상을 보내는 그런 시간을 보내고 한세상 살다가 때되면 그냥 하늘나라 가는 그런 시간을 보내라고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 우리의 영혼을 보내신 게 아닐 겁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게 이미 세상적인 법률용어를 사용한다면 집행유예의 삶을 사는 거나 다름 없습니다. 말 그대로 집행이 유예된 삶입니다. 원래 집행유예는 선고는 되었지만 그 조건이 성취되었을 때 집행을 하기로 잠정 유보 시키겠다는 하나의 법률 개념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늘나라에서 범죄한 영혼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어쩌면 우리의 영혼이 이 세상을 살면서 자신의 범죄한 영혼이 원래의 범죄하지 않았을 때의 영혼으로 되돌려야 하는 훈련장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런 훈련장에 있는 즉 세상적인 표현으로 보면 미결수인 죄인의 신분입니다. 최종 기결수의 신분은 나중에 마지막 하느님의 심판대에서 갈라지겠죠.

 

그렇다면 우리가 한세상 이 세상을 살다가 생을 마감할 때 그냥 단순히 인간의 수명만 다 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우리에겐 육신보다 영혼이 어찌 되느냐가 관건입니다. 이 육신은 이미 한계가 있는 몸이라는 것입니다. 누구나 다 한 번은 정해진 천수를 누리면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신앙인이니까 이 한세상 사는 육신의 삶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삶의 결과로써 우리의 영혼이 가야 되는 곳의 영적인 상태가 영원히 결정되는 중요한 시간에 살고 있다는 걸 인식한다면 정말 그냥 하루하루를 헛되이 보낼 수만은 없는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철저히 자각하고 인식한다면 정말 깨어 있는 삶을 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한 신부님께서 주님 품으로 가신 걸 보면서 순간 죽음에 대해 묵상하면서 떠오른 단상을 두서 없이 적었습니다만 저한테는 이 신부님께서 저에게 또 하나의 삶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을 선물로 주신 것 같다는 생각도 한번 해봅니다. 최영식 마티아 신부님, 한 번도 뵌 적은 없지만 하늘나라에서 주님의 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기를 기도드리겠습니다.

하느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시간의 의미가 어떤 의미이고 이 세상에서 어떻게 시간을 잘 쓰고 가야 할지를 한번 묵상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신부님. 신부님, 꼭 천국에 가시길 기도드립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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