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2.07)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2-07 조회수1,431 추천수8 반대(0) 신고

 


2019년 2월 7일

연중 제4주간 목요일

제1독서 히브 12,18-19.21-24

형제 여러분,

18 여러분이 나아간 곳은

만져 볼 수 있고 이 타오르고

짙은 어둠과 폭풍이 일며

19 또 나팔이 울리고 말소리가

들리는 곳이 아닙니다.

그 말소리를 들은 이들은

더 이상 자기들에게 말씀이

내리지 않게 해 달라고 빌었습니다.

 21 그 광경이 얼마나 무서웠던지,

모세는 “나는 두렵다.”

 하며 몸을 떨었습니다.
22 그러나 여러분이 나아간 곳은

시온산이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도성이며 천상 예루살렘으로,

무수한 천사들의 축제 집회와

23 하늘에 등록된 맏아들들의

모임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또 모든 사람의 심판자

하느님께서 계시고,

 완전하게 된 의인들의 영이 있고,

24 새 계약의 중개자

 예수님께서 계시며,

그분께서 뿌리신 피,

곧 아벨의 피보다 더 훌륭한 것을

말하는 그분의 피가 있는 곳입니다.

복음 마르 6,7-13

그때에 예수님께서

7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8 그러면서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9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다.
10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디에서나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고장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라.

 11 또한 어느 곳이든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으면,

그곳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밑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12 그리하여 제자들은 떠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하였다.

13 그리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 주었다.

멕시코의 어느 고등학교에

성공한 졸업생이 방문했습니다.

어떻게 왔느냐는 질문에 학창시절에

자신을 가르쳤던 선생님을

 뵈러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잠시 뒤에 선생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졌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렇게 말합니다.
“학창시절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소중하고 은혜로운 가르침을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선생님께서는

 “내 과목 중에서 무엇이 좋았는가?”

라고 묻자, “글쎄요...”라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복도를 지나고 있는

저를 부른 뒤에 선생님께서는

무릎을 꿇고 신발 끈을 대신

묶어주셨습니다.

이 모습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학창시절, 존경하는

선생님을 생각해보십시오.

 뛰어난 언변으로 잘 가르치셨던 분이

아니었습니다.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칭찬해주시는 분이었습니다.

또한 눈높이를 낮춰서 대화를

많이 나눴던 분들이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특히 남에게 기억되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를 위해 우리는 하나의 작업을

해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묘비에 적고 싶은

글귀를 적는 것입니다.

세상이 당신을 어떻게 기억했으면

하는지 적어보십시오.
아마 ‘욕심 많고 이기적인 사람’,

 ‘사랑이 전혀 없는 사람’,

‘사람들에게 아픔만 준 사람’ 등의

묘비명을 쓸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바로 내가 나누고 희생한 것들이

적히길 원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내가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어야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또 한 가지는 묘비명에는 길게 적을

공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선순위 목록의 가장 위에

놓은 것에 늘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십니다.

그런데 넉넉하게 챙겨주시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상태에서 세상으로

 보내십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부족함 안에서도 나눠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기쁜 소식은 부족함

안에서도 충분히 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우리 역시 이 세상에 파견되었습니다.

주님의 기쁜 소식을 사람들에게

전하도록 파견되었습니다.

그런데 혹시 ‘다른 사람들이 하면 되지.’

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정작

해야 할 것들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요?

또한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이 너무나도

 부족하다면서 선교를 하기 보다는

불평불만만을 내 던지는데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주님의 일은 부족한 상태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우리의 방식대로 본다.

(탈무드)

(버나드 쇼의 묘비명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다섯 가지.

호주의 작가 브로니 웨어가 써서

큰 반향을 일으켰던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더라면’

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는 저자가 삶의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는 환자나 노인들을 돌보는

간병인 일을 하면서의

체험을 쓴 것입니다.

이 책에서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다섯 가지는 이것입니다.
1) 다른 사람이 내게 기

대하는 인생이 아니라

용기를 내어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2) 일을 많이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3) 용기 있게 내 감정을 표현했어야 했는데...
4) 친구들과 계속 연락하고 살았어야 했는데...
5) 내 자신에게 더 많은

행복을 허락했어야 했는데...
이를 보면서 우리도 한 번쯤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만약 내가 곧 죽게 된다면

 무엇이 가장 안타까울까요?
다시 태어나 살 수 있게 된다면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까요?
나중에 혹은 죽기 직전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무엇을 바꿔야 할까요?
오랫동안 꿈꿨던 소망이 있습니까?
내가 지금 하는 일보다 내게 더 많은

만족을 가져다주는 일이 있지 않습니까?
지금 해야 할 일들이 참으로 많아집니다.

(브로니 웨어와 그의 책)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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