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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웅렬신부(하느님 마음에 남는 성가정)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2-07 조회수1,617 추천수1 반대(0) 신고

 



하느님 마음에 남는 성가정.

+찬미예수님!

오늘은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입니다.

성가정이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사전적인 교회법적인 의미로

성가정은 가족이 모두

세례 받은 가정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하느님이 보시기에

성가정과는 차이가 있겠죠?

여러분들, 사제 머리에

제일 기억에 남는 가정은

어떤 가정인 줄 아십니까?

사제의 속을 지극히 썩인 가정과

정반대로 정말 아름답게 사는 성가정.

제가 여기를 떠나도

기도를 받고 싶은 분은 둘 중

하나의 모양을 선택하세요.

제가 떠날 때까지 속 썩이든지,

아니면 내가 피정 때 자랑할 수

있을 정도가 되든지.

성가정은 말대로 가족 중

비영세자가 하나라도 있으면

성가정이라고 안합니다.

온 식구가 전부 다 세례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이 보실 때 크게 성가정은

세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첫 번째는 하느님의 기억에도,

그곳 본당신부에게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성가정입니다.

제가 어느 본당 신부로 있을 때,

항상 맨 앞줄에 네 식구가 앉는

가정이 있었어요.

아버지는 앞이 안 보이는 소경이고,

엄마는 온 얼굴이 화상으로

아주 흉했어요.

그런데 아이 둘이 하나는 아빠 옆에

하나는 엄마 옆에 앉아 그렇게 잘해요.

미사 하면서 아버지 손등을 만져주고

아버지 뺨도 만져주고

엄마는 냄새를 맡고요.

보통 사춘기 아이들이라면

왜 우리 아버지는 앞이 안 보여.

우리 엄마 괴물 같아.’

하면서 같이 앉지 않을 것도 같은데.

집을 갔더니 참 따뜻해요.

그 아버지는 침을 놓아주며

가정을 이끌어 가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머니가 그렇게 된

이유가 있었어요.

애들이 어릴 때 아버지가

침놓으러 간 사이 엄마와 아이 둘이

자는 데 불이 났어요.

불이 나니 이불을 애들 얼굴에

뒤집어씌우고 엄마는 맨몸으로

불길 사이를 나왔죠.

엄마는 아이들과 나오자마자 기절,

하지만 이미 머리카락과 얼굴은

다 화상을 입었죠.

죽느냐 사느냐 하며 병원에

있다가 살아난 것이죠.

아이들은 당시 너무 어렸기 때문에

크면서 엄마한테 대놓고

괴물이라고 그랬대요.

그런데 엄마는 자기 얼굴이

왜 이렇게 됐는지 한 번도

얘기를 안 했대요.

그러다 어느 날 할머니가

아이들에게 설명을 다 한 것에요.

애들이 펑펑 울면서

우리 살리려고 엄마 얼굴이

저렇게 화상을 입었구나!’

아버지 엄마 앞에 무릎 꿇고

용서를 청하고 그때부터

부모님을 사랑했대요.

미사 때 맨 앞줄에 앉아서

네 식구가 앉아서 주님의 기도를

손 꼭 잡고 하고.

또 아이들의 얼굴이

그렇게 밝을 수가 없어요.

내 절대로 못 잊는 그런 가정이죠.

세상에 저렇게도 밝게 살 수 있구나.

얼핏 보면 밝게 살 일이 없어도

참 밝게 살아!

사제가 가정방문 가서

허름한 집도 있고 좋은 집도 있겠죠.

들어갈 때부터 어떤 집은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이 들어요.

이런 집에 좀 머물다 보면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있습니다.

남편이나 아내나 아이들이 하나같이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살아요.

그리고 아주 희망적이에요.

그리고 감사하다는 말을 참 많이 해요.

하느님의 마음속에 기억에 남는

성가정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몇 가지만 얘기할 게요.

어떤 일이 있어도 저녁기도만큼은

온 가족이 함께 해요.

두 번째 감사할 것이 없어도

감사를 찾아요.

세 번째, 없이 살면서도 십일조하고

애덕생활, 나누고 살아요.

이런 집은 사제가 오래 머물고 싶어요.

사제가 오래 머물고 싶다는 말은

하느님의 축복이 오래 머문다는

그 뜻일 겁니다.

교적에 세례명을 다 가진 외적인

성가정이라 하더라도 구분이 됩니다.

두 번째는 이름뿐인 성가정이 있습니다.

이 집의 특징은 하나같이 네 탓입니다.

내 탓이 아니라 네 탓입니다.

이런 집에 가면 집에 들어가자마자

찬바람이 쌩합니다.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불평불만이 많습니다.

세상과 자기 삶을 바라보는 자세가

늘 부정적이고 과거 지향적이고

원망적입니다.

또 폭력적인 말을 가족들끼리

스스럼없이 내뱉고,

무엇보다도 책임을 전가합니다.

남편 때문에 이래요.

저 여자 때문에 이래요.

애들이 공부만 잘 했으면.

인류의 첫 번째 범죄는 교만이요,

그것을 가속화 시키는 것은

책임 전가였습니다.

나중에는 뱀한테 책임 전가하죠.

자기들의 의지로 선악과를

따먹고 난 다음에 알몸인 것이

부끄러워서 숨었습니다.

하느님께서 걷으시다가,

왜 나를 보고 피하느냐?’

아담한테 물으니까

하와가 먹으라고 그래서 먹었습니다.’,

하와한테 물으니까

뱀이 먹으라고 그래서 먹었습니다.’

이름뿐인 성가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네 탓입니다.

세 번째 성가정은

무관심한 가정이 있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가정이 아니라

여관입니다.

먹고 자는 것 그 이상은 없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공부시키고

용돈주고 옷 사 입히는

그것 이상 아무 것도 없습니다.

자식들도 부모를 바라볼 때

돈 나오는 돈 창고입니다

그 정도로만 봅니다.

한마디로 이기주의적 인간으로

꽉 차 있는 가정을 무관심의

가정이라고 부릅니다.

다른 말로 카인형 인간이라고

표현합니다.

예수 마리아 요셉 성가정

축일을 지내는 오늘부터라도

우리 집안에 냉담자가 많은 이유가

냉담하는 그 사람들 탓이 아니라

제대로 신앙교육 못 시키고

사랑 못 준 바로 내 탓이라고

가슴을 쳐야 됩니다.

이제부터 모든 잘못이 다른 이한테

있는 것이 아니라 내 탓인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한 번 가슴 두드릴 때마다

성가정이 이루어지게 될 것임을

잊지 말아야 됩니다.

성가정에서 성소자가 나옵니다.

물론 예외적으로 시끄러운 집에서도

사제와 수도자가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밑바탕에 어둠이 깔려있으면

수도자로 살면서도 기쁨이 없습니다.

그 사제와 수도자의 인성은

신학교나 수녀원에 들어와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집에서 만들어져 들어옵니다.

인격은 가정에서 결정됩니다.

예수 마리아 요셉 성가정 축일 날

우리들은 골로새서를 많이 읽습니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무엇보다도

하느님께 순종하고,

남편이 아내에게 해야 될 일,

아내가 남편에게 어떻게 해야 되고,

또 부모가 자식을 어떻게 다루어야 되고,

자식이 부모에게 어떤 마음으로

다가서야 되는 지가 복음과 독서를

통해서 우리에게 전달되어집니다.

이름만이 아닌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성가정의 특징을 몇 가지

얘기를 드렸습니다.

기도 생활 철저히,

, 감사할 것이 없어도

늘 감사하고 산다고 했죠.

, 풍족하지 않으면서

늘 십일조 생활하고 애덕의 삶을

실천하려고 애쓴다했습니다.

그런 집은 다 쓰러져가는

단칸방이라 하더라도

하느님께서 머물고 계십니다.

그러나 눈만 뜨면 네 탓, 네 탓

내 탓은 하나도 없는

그런 집은 춥습니다.

아무리 불을 때도 그런 집에는

하느님의 축복도 오래 머무를 수

없다는 얘깁니다.

현대 가정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가족들끼리 무관심한 입니다.

이 무관심은 큰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소리 질러서 싸운 적은 없지만

이미 마음은 남남입니다.

아까 얘기 드린 것처럼

가정이 아니라 여관입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 대화 해 본 적이 없고,

부모한테 자식들은 감사할 것도 없습니다.

당연히 부모니까

해 줘야 되는 것으로 여깁니다.

또 부모는 부모대로 자식들의

냉랭한 마음에 상처를 받고 삽니다.

현대의 이기주의적인 인간들이

가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가?

카인형의 인간이라고 했습니다.

동생 아벨의 제물에는

하느님이 축복을 해 주셨지만

자신의 제물은 물리치셨기에,

그 동생이 죽이고 싶도록 미웠던 카인.

무관심은 성서적으로

영적 살인을 뜻합니다.

그리고 관계의 단절을 뜻합니다.

성가정 축일은 작년에도 있었고

올해도 있고 내년에도 돌아올 겁니다.

일 년 동안 정말 주님의 기억에 남을

성가정 만들기 위해 얼마나 애썼습니까?

냉담하는 자식들 십자가 앞에

이름 붙여놓고 피눈물 나면서

하느님 집에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 얼마나 하셨습니까?

성가정은 이름 석 자만 교적에

올라가 있다고, 천주교 교우회 문패가

붙어 있다고, 또 방 마다 이태리

십자가가 붙어 있다고

성가정은 아닐 겁니다.

거기 걸려 있는 예수님은

늘 무시당합니다.

그냥 액세서리입니다.

차에다가 붙이고 다닐지언정

그 십자가 앞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은 적습니다.

성가정은 십자가 앞에 무릎 꿇는

가족들이 있는 곳입니다.

마귀가 제일 무서워하는 집은

금으로 만들어진

십자가가 있는 곳이 아니라,

비록 나무 두 개를 엮어서 만든

십자가라 하더라도 그 앞에

온 가족이 모여서 하느님께

감사하면서 하루를 마감하고

하루를 시작할 때 십자성호로

시작하는 가정입니다.

우리 서운동 본당은 앞으로

성지성당이 되는 그런 성당입니다.

그곳에 몸담고 사는 우리도

참다운 의미의 성가정이 되도록

애쓰도록 합시다. 아멘.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 가정 축일미사

(20181230일 서운동성당)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photo by - 느티나무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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