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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늘 복음 환호성을 생각하며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19-02-08 조회수1,109 추천수1 반대(0) 신고

 

 

몇 년 전 고성 올리베따노 수도원 원장 신부님으로부터 들은 말씀입니다. 신부님과 한번은 상담실 같은 응접실에서 한번 담소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몇 년 전입니다. 그때 나눈 대화 중의 일부 이야기입니다. 겸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어떤 자매님의 예를 들어 주셨습니다. 아마 이 자매님께서는 성경 필사를 몇 번이나 하신 모양입니다.

 

근데 이 사실을 수도원 원장 신부님께 뵐 때마다 이야기를 몇 번이고 계속 줄곧 하신 모양입니다. 이 자매님께서는 사실 은근히 신부님으로부터 칭찬의 소리를 듣고 싶은 모양이었나 봅니다. 근데 자꾸 이야기를 하여도 반응이 없으신 거였습니다. 그러다가 신부님께서 한 말씀 자매님께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자매님, 비누를 만지면 비누 냄새가 손에 배입니다.

 

이처럼 자매님께서 성경 말씀을 그렇게 필사를 하셨다면 성경 속에 있는 하느님의 말씀의 향기가 배어 있어야 하는 게 지극히 정상적일 텐데 이거 어찌된 일인지 그런 말씀 속에 있는 겸손의 향기는 어디로 다 사라지고 없는지요 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사실 이 부분은 제가 조금 덫붙인 것입니다. 신부님께서는 비누 냄새만 언급하셨습니다. 제가 조금 표현을 달리 했을 뿐입니다. 이 내용이 갑자기 떠오른 것은 오늘 복음환호성을 보니까 이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하느님 말씀을 간직하여 인내로 열매를 맺는 사람들은 행복하여라!

 

오늘 복음 환호송을 보면 행복한 사람을 언급합니다. 행복한 사람의 전제조건으로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하느님 말씀을 간직하여 인내로 열매를 맺는 사람이라는 조건이 붙어 있군요. 그렇네요. 그냥 인내만 있어도 되지 않는군요. 더 중요한 조건이 바르고 착한 마음 바탕 속에 하느님 말씀이 좌정되어 있을 때 그런 조건이 된 상태에서 그것도 인내로 결실이 맺어질 때 비로서 행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는 뜻이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한번은 수도원 도서관에서 원장 신부님과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의 일화를 언급하셨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께서 유명한 신학대전이라는 책을 지어셨잖습니까? 저는 이름만 알고 있는 책입니다. 서원에서 한번 표지만 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 같은 범인은 볼 수 없을 정도의 차원 높은 책이지 않을까요?

 

성인께서는 어느날 제가 그때 오래되어서 그 신부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지금 이 글을 올리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때 성인께서는 자신이 집대성한 신학대전을 불태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이 책이 어떻게 해서 보존이 되어 있었으니까 지금까지 유지되어 있지 않겠습니까? 아무튼 불태웠다는 사실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그때 그 성인께서 불태우신 연유는 많은 지식이 있어도 한낱 쓸모없는 지식이라고 생각을 하셨던 모양입니다.

 

아무튼 이런 내용의 말씀을 하시면서 불태우신 일화를 말씀하시면서 신부님께서 저에게 일러주신 말씀이 있으십니다. 준주성범을 언급하시면서 오히려 하나의 보잘것없는 촌부가 더 잘 말씀을 잘 깨달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말씀은 무슨 말씀이겠습니까? 하느님의 말씀은 그런 일개의 촌부가 더 잘 깨달을 수 있다는 뜻이지 않겠습니까? 학문적으로 지식적으로도 많은 지식이 하느님의 말씀을 더 잘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이런 전제가 있다면 더 말할 나위 없이 금상첨화가 되지 않겠습니까? 오늘 복음 환호성처럼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이 자신의 육비에 새겨졌을 때는 더더욱 더 좋은 결실을 맺을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수도원 원장 신부님께서 말씀하신 촌부 이야기는 그런 시골의 촌부는 마음이 깨끗하고 순수하고 맑은 이미지를 연상이 되니 오히려 그런 맑은 영혼으로 말씀을 간직한다면 정말 자신의 영혼에 살아 숨쉬는 하느님의 말씀이 살아있는 생명력을 꽃 피우지만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죽은 말씀을 붙들고 자기의 영혼이라는 화병에 살아있는 말씀 꽃이 아니라 시들고 말라버린 꽃이 꽃혀 있다는 상상을 한번 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 말씀이 자신에게 살아 숨쉬는 말씀으로 남아 있으려면 자신의 마음 바탕이 먼저 정화가 되어 깨끗하게 단장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번 해봅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몇 년전에 신부님과 나눈 대화를 기억을 되살려 글을 올렸습니다만 혹시라도 제가 잘못 알고 올릴 수도 있으니 혹시 그런 부분이 있다면 지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참고로 원장 신부님은 유덕현 야고보 신부님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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