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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2.08)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2-08 조회수1,385 추천수7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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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월 8일

연중 제4주간 금요일

제1독서 히브 13,1-8

형제 여러분,

1 형제애를 계속 실천하십시오.

2 손님 접대를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손님 접대를 하다가 어떤 이들은

모르는 사이에 천사들을

 접대하기도 하였습니다.

3 감옥에 갇힌 이들을

여러분도 함께 갇힌 것처럼

기억해 주고, 학대받는 이들을

 여러분 자신이 몸으로

 겪는 것처럼 기억해 주십시오.
4 혼인은 모든 사람에게서

 존중되어야 하고,

부부의 잠자리는

더럽혀지지 말아야 합니다.

불륜을 저지르는 자와

간음하는 자를 하느님께서는

 심판하실 것입니다.
5 돈 욕심에 얽매여 살지 말고

 지금 가진 것으로 만족하십시오.

 그분께서 “나는 결코 너를

떠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겠다.”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6 그러므로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도와주는 분이시니

나는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사람이 나에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
7 하느님의 말씀을 일러 준

여러분의 지도자들을 기억하십시오.

그들이 어떻게 살다가 죽었는지

살펴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십시오.

 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도

오늘도 또 영원히 같은 분이십니다.

복음 마르 6,14-29

그때에 14 예수님의 이름이

널리 알려져 마침내 헤로데 임금도

 소문을 듣게 되었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서 그런 기적의

힘이 일어나지.” 하고 말하였다.

 15 그러나 어떤 이들은

 “그는 엘리야다.”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들과

같은 예언자다.” 하였다.

16 헤로데는 이러한 소문을 듣고,

 “내가 목을 벤 그 요한이

되살아났구나.” 하고 말하였다.
17 이 헤로데는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붙잡아 감옥에 묶어

둔 일이 있었다.

그의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 때문이었는데,

헤로데가 이 여자와

혼인하였던 것이다.

 18 그래서 요한은 헤로데에게,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

고 여러 차례 말하였다.
19 헤로디아는 요한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20 헤로데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그를

두려워하며 보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말을 들을 때에

몹시 당황해하면서도

기꺼이 듣곤 하였기 때문이다.
21 그런데 좋은 기회가 왔다.

 헤로데가 자기 생일에 고관들과

 무관들과 갈릴래아의 유지들을

 청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22 그 자리에 헤로디아의 딸이

들어가 춤을 추어, 헤로데와

 그의 손님들을 즐겁게 하였다.

그래서 임금은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나에게 청하여라. 너에게 주겠다.”

 하고 말할 뿐만 아니라,

23 “네가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내 왕국의 절반이라도 너에게 주겠다.”

하고 굳게 맹세까지 하였다.

 24 소녀가 나가서 자기 어머니에게

“무엇을 청할까요?” 하자,

그 여자는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여라.” 하고 일렀다.
25 소녀는 곧 서둘러 임금에게 가서,

“당장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청하였다.

26 임금은 몹시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라

그의 청을 물리치고 싶지 않았다.

27 그래서 임금은 곧 경비병을 보내며,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명령하였다.

경비병이 물러가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28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주었다.

29 그 뒤에 요한의 제자들이

소문을 듣고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무덤에 모셨다.

학창시절의 일 하나가

생각납니다.

축구를 하다가 한 친구가

부딪혀서 넘어졌습니다.

너무 세게 넘어졌기에 우리들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모두 이 친구 옆으로 모였지요.

그런데 넘어진 친구가

 마구 웃는 것이 아닙니까?

웃는 모습을 보면서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나 보다

싶었습니다.
다음날 이 친구는

깁스를 하고 나타났습니다.

 다리가 골절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골절되었으면 상당히

 아팠을 텐데 어떻게 웃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 친구는 넘어지는 상황이

너무나 당황스러웠고

그래서 웃었더니 아픈 것이

사라지더라는 것입니다.
웃음이 통증을 완화시킨다는 것은

과학적으로도 입증된 사실이지요.

웃음은 모르핀보다

 몇 배나 진통 효과가

큰 뇌 내 모르핀을 분비시키고,

기분이 좋아지게 만들며,

폐 깊은 곳까지 산소를 공급시켜 줍니다.

그래서 10분을 웃으면 2시간 동안의

마취 효과가 있다는 연구 보고도 있습니다.
영국 BBC 방송에서는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모아,

 즐거운 일이 없어도 집에서

거울을 보면서 웃게 했습니다.

 그렇게 6개월 동안 실험하면서

그들의 생활을 취재했는데,

 참가자들의 행복지수가 눈에 띄게

높아지더라는 것입니다.

억지로라도 웃는 것,

이것만으로도 나의 삶이 바뀔 수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본인의 의지에 따라 내 삶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가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주님을 따르는 것이 어렵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세상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 너무나 힘들다면서,

이러한 시선 안에서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커다란

무리라고 아예 포기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에 대해서는

이렇게 신경 쓰면서 정작 주님의 시선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을까요?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헤로데 임금을 보십시오.

그는 예수님의 소문에 벌벌 떨지요.

자신이 죽인 세례자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헤로데가 이렇게 두려움 속에 빠진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로 자신의 명예를 생각해서

아무런 죄도 없는 세례자 요한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시선을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사람들의 시선만을

생각해서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시선보다 주님의 시선이

더욱 더 중요하며,

주님의 시선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길만이 우리가 이 세상을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해주시는 것도

또 남이 해주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자신만이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문제를 느끼는 것은 좋다.

그러나 그 문제 때문에

쓰러지지는 말라.

(틱낫한)

(세례자 요한의 참수)


책장을 계속해서 넘기다 보면...

소설책을 읽다보면

괜히 화가 날 때가 있습니다.

주인공의 일이 꼬이기만 하고

억울하고 힘든 상황의

연속입니다.

주인공의 고통과 시련이

나의 체험으로 다가오면서

화가 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더 이상 읽지 않고

그냥 덮어버릴까요?

그 책의 다음 장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 페이지를 넘기기 전에는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즉, 어렵고 힘든 이 상황으로

이야기가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지요.

실제로 이렇게 책을 끝까지

보면서 더 큰 감동과 함께

깨달음을 얻게 된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만약에 짜증이 나고 화가 난다고

포기했다면 얻을 수 없는 것이지요.
우리 삶도 그렇지 않을까요?

책장을 계속해서 남기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야 합니다.

어느 순간에 짜증나고

힘든 고통은 사라지고

아름다움만 남게 될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참수되었던 마케루스 요새입니다.

지금은 터만 남았네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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