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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2.08)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2-09 조회수1,658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9년 2월 9일

연중 제4주간 토요일

제1독서 히브 13,15-17.20-21

형제 여러분,

15 예수님을 통하여 언제나

하느님께 찬양 제물을 바칩시다.

그것은 그분의 이름을 찬미하는

 입술의 열매입니다.

16 선행과 나눔을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이러한 것들이 하느님

마음에 드는 제물입니다.
17 지도자들의 말을 따르고

그들에게 복종하십시오.

그들은 하느님께 셈을

해 드려야 하는 이들로서

여러분의 영혼을

 돌보아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탄식하는

 일 없이 기쁘게 이 직무를

수행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들의 탄식은 여러분에게

손해가 됩니다.
20 영원한 계약의 피로,

양들의 위대한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끌어올리신

 평화의 하느님께서

21 여러분에게 온갖 좋은 것을

마련해 주시어 여러분이 당신의

뜻을 이루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그분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 마음에 드는 것을 우리에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복음 마르 6,30-34

그때에 30 사도들이

예수님께 모여 와,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것을 다 보고하였다.

31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던 것이다.
32 그래서 그들은 따로

배를 타고

외딴곳으로 떠나갔다.

 33 그러자 많은 사람이

그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

모든 고을에서 나와 육로로

함께 달려가 그들보다

먼저 그곳에 다다랐다.
34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어느 수행자가

길을 가다가 물에 빠진

전갈을 발견했습니다.

 생명의 소중함을 알고 있는

이 수행자는 전갈을

손으로 꺼냈습니다.

그런데 이 전갈이

자신을 살려준

 고마움을 표시하기는커녕

손가락을 물은 것입니다.

그러면서 전갈은 다시 물에

빠졌습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이 수행자가 전갈을 더 이상

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과 달리

다시 전갈을 손으로

 꺼내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이번에도

물리고 말았습니다.

수행자는 아픈 손가락을

 꾹 참고서 다시 꺼내서

땅에 내려놓았습니다.
사람들은 은혜도 모르는

이 전갈을 왜 구했는지를 묻습니다.

그러자 이 수행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전갈은 물려는 자신의

본성에 충실한 것이오.

이것을 잘못된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저의 본성은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것입니다. 그

렇기 때문에 전갈에게 계속 물려도

계속 살려야 했습니다.”
상대의 본성을 인정하는

이 모습에 대해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내게 잘못하는

사람에게 절대로 사랑을

주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잘못하는 그 행동을

그 사람의 본성이라고

생각하면 안 될까요?

자신의 본성에 충실한 것이기에

틀린 것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나의 본성은 사랑의

실천이기 때문에,

상대방의 행동에 상관없이

내 본성을 따르면 되는 것입니다. 

 이 수행자의 모습이 바로

주님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본성 그 자체인

 사랑을 철저하게 따르셨습니다.

음식 먹을 겨를조차 없을 정도로

 예수님 곁에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습니다.

그렇다고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목자 없는 양들 같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이 사람들이 나중에 예수님을 향해서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고

소리칠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향해 침을 뱉고

 뺨을 칠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당신의 본성은 사랑에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우리의 본성 역시

 ‘사랑’에 맞춰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내게 하는 말과 행동에 반응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본성인 ‘사랑’만을 따르면

그만인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을 따르는 모습이 바로

 주님을 따르는 것이고

주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 안에서 진정한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두 가지 이상의

우선순위를 가진 사람은

우선순위가

전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마틴 스콧)

(목자와 양)


죽음에 대해...

몽테뉴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어떻게 죽어야 할지 모르더라도

걱정하지 마라.

그때가 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자연이 소상하게 그리고 완벽하게

알려줄 것이다.

자연이 그 일을 완벽하게 처리할 테니

그 문제로 고민하지 마라.”
죽음에 대해 걱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실 어렸을 때부터 죽음을

많이 목격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죽음은 늘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었습니다.

그래서 나의 죽음은 어떨까 하고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내 죽음 역시 뜻밖의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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