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5주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9-02-10 조회수2,656 추천수15 반대(0)

 

2006년도의 기억입니다. 어학연수로 캐나다 토론토에서 지낼 때입니다. 대학교에서 청강도 하였고, 영성 프로그램도 들었고, 조금은 편하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학교 교학처장 신부님으로부터 메일이 왔습니다. 앞으로 신학교에서 강의를 해야 할 것 같으니 준비를 하라는 메일이었습니다. 청강하고, 프로그램 듣는 것은 큰 부담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강의를 해야 할 것이라는 말을 들으니,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그런 자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료도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시간이 없었습니다. 신학교에서는 따로 더 시간을 주지는 않았고, 남은 시간에 준비를 하라고 하였습니다. 다행히 좋은 자료를 찾을 수 있었고, 강의도 귀담아 들었습니다. 갈릴래아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들에게 갑자기 주님께서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어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너무 놀라서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주님 저를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그런 큰일을 할 자격도 능력도 없습니다.”

 

우리는 구하여라. 받을 것이다.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찾으라. 얻을 것이다.’라는 말을 성경에서 들었습니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말도 있습니다. ‘구하여라. 찾을 때까지 구하여라. 찾았다면 고통이 따를 것이다. 그러나 그 고통을 이기면 또 다른 기쁨이 있을 것이다.’ 신앙인에게 어떤 말씀이 더 감명을 줄까요? 여러분은 어떤 말씀이 더 깊이 다가오시는지요?

 

저의 서품 기념 성구는 시편 126장입니다. “눈물로 씨 뿌리는 사람이 기쁨으로 곡식을 얻을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이 너무 좋았습니다. 비록 지금 힘들고 어렵지만 끝까지 참고 견디면 하느님께서 반드시 손을 잡아 주시리라 믿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경제적인 풍요로움은 눈물로 씨 뿌리던 어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사막에서 땀 흘리며 일하던 어른들이 계셨습니다. 독일의 탄광에서 탄을 캐던 어른들이 계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신앙의 자유는 눈물로 씨 뿌리던 신앙의 선조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박해를 받았고, 가족들과 헤어져야 했고, 가진 것을 빼앗겨야 했고, 목숨까지 바쳤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박해를 피해서 교우촌을 만들었던 신앙의 선조들이 있었습니다. 교우촌에서 신앙은 보존되고, 전해질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합니다. 나는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려고 왔습니다. 벗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신앙은 한 번에 모든 것이 해결되는 로또 복권 당첨이 아닙니다. 신앙은 원하는 것을 만들어 주는 요술 지팡이가 아닙니다. 신앙은 나의 짐을 남에게 떠넘기는 위선과 가식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유형은 크게 4가지 정도가 있습니다.

첫째는 누군가의 권유에 의해서 오는 분들입니다. 가족, 친지, 이웃의 권유가 있어서 성당엘 찾아오신 분들입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처럼 평소에 믿음이 가는 친구, 존경하는 친구가 권유를 했기 때문에 오신 분들이 있습니다.

두 번째는 본인의 목적이 있어서 오는 분들입니다. 젊은 남자들이 교리를 받는 경우는 결혼을 하기 위해서인 경우가 많습니다. 장인, 장모님께서 사위가 되려면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조건을 달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는 목적이 달성되면 세례를 받았어도 성당에 오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화장실 가기전과 화장실 다녀와서의 생각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본인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서 성당에 온 분들입니다. 커다란 체험은 없었지만, 늘 생각을 하고 있었던 분들입니다. 이런 분들도 진리에 대한 갈망이 있기 때문에 교리반 출석을 아주 잘합니다. 대부모를 정할 때도 스스로 구역장님께 전화를 해서 대부모님을 정해 달라고 할 정도입니다. 이런 분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왔기 때문에 신앙이 성숙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거룩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분들은 나약하다는 것을 이해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신앙인들도 근심과 걱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삶의 한가운데에서 유혹과 갈등 앞에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런 분들은 세례를 받은 후에 실망하여 냉담하기도 하지만, 좋은 분들을 만나고, 신심단체에서 활동을 하면 점차 신앙이 성숙하고, 다른 이들을 하느님께로 이끌어 주는 굳센 신앙인이 되곤 합니다.

 

네 번째는 커다란 체험을 한 경우입니다. 사랑하는 딸이 갑작스럽게 아픈 경우도 있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기도 하고, 잘 되던 사업이 실패하기도 하고, 본인의 건강에 이상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들이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기도 하고, 꼭 원하던 일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 본인 스스로 성당에 가겠다고 다짐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큰 체험이 있었던 사람은 세례를 받은 후에도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을 봅니다. 이미 그분들은 체험을 통해서 하느님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성서말씀을 통해서 만났던 이사야 예언자,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가 이런 경우입니다. 주체할 수 없는 큰 체험 앞에 인간이 얼마나 약하고 부족한 존재인지를 느끼게 됩니다.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느님께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큰 체험을 한 사람들은 대부분 겸손하게 됩니다. 이사야 예언자도 큰일 났구나, 이제 나는 망했다.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이다.’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베드로 사도도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바오로 사도도 나는 사도들 가운데 가장 보잘 것 없는 자로서, 사도라고 불릴 자격조차 없습니다.’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겸손한 분들이 구원의 역사에서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최고의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방법으로 부르심을 받았든지, 최선의 삶이 있는 것입니다. 어떤 방법으로 하느님을 찾게 되었든지, 삶의 지뢰밭은 항상 있기 마련입니다. 유혹의 달콤함은 가리지 않고 모든 신앙인을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이사야 예언자,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가 보여 주었던 것처럼 겸손함을 가지는 것입니다. 나의 욕심과 교만함을 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어떤 방법으로 하느님을 찾았느냐를 묻지 않으시고, 우리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