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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당 마당만 밟는 신자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19-02-13 조회수1,649 추천수3 반대(0) 신고

 

 

성당 마당만 밟는 신자라는 주제로 오랫동안 많은 묵상을 해왔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미사를 봉헌하러 가는 곳은 성당이고 성당 내에 성전이 있습니다. 제가 느끼는 언어적인 감으로 말씀드린다면 성당하고 성전하고는 약간의 의미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당이 가지는 의미는 만약에 누가 가톨릭 신자랑 개신교 신자랑 비교를 할 때 성당 다니는 사람과 교회 다니는 사람 이런 식으로 분류를 한다면 성당이라는 개념은 대외적으로 어떤 종교를 상징하는 의미일 것이고 대내적으로는 만약 어떤 성당을 방문한다고 했을 때 만약 주위에 위치를 물어본다면 예를 들어 이 근방에 ~~성당 알고 있습니까? 라고 물어본다면 이때의 의미는 하나의 건물을 상징하겠지요.

 

우리는 흔히 세상에서 근본적인 일에는 관심이 없고 그 주변상황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경우 염불에는 관심이 없고 잿밥에만 관심이 있다는 말을 자주 쓰곤 합니다. 이건 불교와 상관없이 사실 천주교에서도 이런 표현을 사용하곤 합니다. 이 말처럼 성당 마당만 밟는 신자라는 표현은 다양하게 표현을 할 수도 있겠지만 가장 대표적인 의미는 천주교 신자로서 세례를 통해 하느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려면 첫단추가 바로 성당을 다녀야 합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 될 겁니다. 이때 우리는 성당이라는 대외적인 건물을 상징하는 성당은 여러 부속건물이 있어야 할 겁니다. 그렇게 본다면 성당이라는 개념과 성전이라는 개념을 한번 따져본다면 성당이라는 개념이 좀 더 포괄적인 의미가 되어 더 넓은 의미로 사용되어지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신자로서의 가장 근본적인 의무이자 가장 기초적인 일인 미사를 봉헌하는 개념으로써의 성당의 개념은 바로 성전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전을 가기 위해서는 성당 입구면 입구, 마당이면 마당 이런 곳을 통과해서 들어가야 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가 흔히들 사용하는 표현인 성당 마당만 밟는다는 표현은 어떤 표현일까요? 저는 이 말에 대해 성경 복음도 아니지만 정말 많은 생각을 해봤습니다. 저는 이렇게 한번 생각해봤습니다. 신자인 입장에서 설령 성당 내부에 있는 성전에서 미사를 봉헌하며 전례에 충실하며 신앙생활을 한다고 할지라도 형식적인 의미에서 몸만 기계적으로 성당을 다니며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을 표현한다면 아마 적절한 비유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세상 말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 사람 구실을 해야 사람이다. 이런 말처럼 신자면 다 신자인가? 신자 노릇을 해야 신자 아닌가? 이런 형식으로 표현한다면 어떨까 싶습니다.

 

저는 정말 어떨 때는 저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이 형식적으로는 미사에 참례해서 미사를 봉헌하지만 어떤 때에는 정말 하느님 입장에서 봤을 때 만약 주일만 놓고 봤을 때도 주일 미사에 참례를 했지만 정말 주일 미사를 봉헌했나 싶을 정도로 정말 형식적인 미사 참례가 되는 경우를 많이 봐왔습니다. 비근한 예를 든다면 만약 신부님 강론 말씀하실 때 집중은 차지하고서라도 강론 중에 교구보나 주보를 본다든지 하는 일련의 행위를 봤을 때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심지어 독서나 복음 말씀을 봉독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독서대에서 말씀하시는 독서는 바로 말씀의 선포입니다. 일반 신자가 독서를 하는 거지만 그 위치에서는 또 신부님께서 복음을 봉독하시지만 그 위치에서는 바로 예수님이시며 하느님께서 선포하시는 말씀이라는 사실을 좀 더 실감한다면 정말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않겠습니까? 참으로 이해를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게 해서 미사를 봉헌했다고 전제하면 어떤 의미에서 주일 미사 참례의무를 이행했다고 보시는지요?

 

아마도 우리의 육신이 미사 봉헌 시간이 1시간이라고 한다면 그냥 몸만 성전에 와서 하느님께 온전히 정신과 몸을 바쳐야 되는데 정신은 콩밭에 가 있고 마치 혼이 없는 유령처럼 그런 형식으로 미사 봉헌이 이루어진다면 이걸 엄격한 의미에서 본다면 제대로 하느님께 주일미사를 봉헌했다고 볼 수 있고 주일의무를 지켰다고 자부할 수 있겠는지에 대해 만약 자문해본다면 과연 점수를 매긴다면 과연 나는 몇 점이나 될까라고 각자 질문을 한번 해본다면 몇 점이나 될까요?

 

정말 양심적으로 판단했을 때 어쩌면 형편없는 점수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번 해봅니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저는 이런 것도 한번 묵상해봤습니다. 어떤 사람이 세례를 받고 자기가 하느님 나라 갈 때까지 주일을 한 번도 그러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죽어서 마지막에 하느님 심판대에 섰습니다. 이 사람은 하느님을 알현하기 전에 만약 이런 생각을 한번 해봤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나는 그래도 세상을 살면서 성당을 다니며 주일만큼은 평생 동안 하루도 거르지를 않았으니까 하느님께서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칭찬을 들을 수 있을 거야 라고 말입니다.

 

드디어 하느님을 마주 대면하면서 이러저러한 내용으로 하느님께서 일생 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드디어 주일미사를 어떻게 봉헌했는지에 대해 공과를 따져볼 차례가 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자신 있게 하느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주일만큼은 확실히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지켰습니다. 라고 자신 있게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마치 달란트 비유에 나오는 충직한 종이 칭찬을 받는 것처럼 내심 그런 걸 이 사람은 기대를 했습니다. 근데 의외의 반응이 나왔습니다.

 

너는 주일을 네 입으로는 한 번도 궐하지 않았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만 내가 보기엔 너는 주일은 지킨 게 며칠도 되지 않았다 라고 이런 말씀을 만약 하신다고 가정해봤을 때 그 이유를 하느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신다면 이런 말씀을 하시지 않을까 하고 한번 제 나름대로 상상을 해봅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지극히 주관적인 저의 생각입니다.

 

내가 봤을 때 너는 분명히 나에 대한 제사를 하기 위하여 미사에 참례를 한 거는 맞는 사실이다. 근데 너가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다. 넌 나를 만나기 위해 미사를 참례를 한 게 아니고 미사를 궐하면 주일의무를 지키지 않아 주일의무을 이행하지 않으면 고해성사도 봐야 되고 해서 어쩔 수 없이 형식적으로 마치 출석부에 도장만 찍는 형식으로 몸과 마음이 따로 따로 분리되어 나를 위한 제사가 되어 영혼이 없는 유령이 나에 대해 제사를 한 거와 다를 바가 없다.

 

내가 그때 나의 가슴은 얼마나 아팠는지 아마 너는 모를 테다 라고 만약 이런 말씀을 하느님께서 하신다고 가정해본다면 물론 어쩌면 지극히 극단적으로 비약적인 가정을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우리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것도 배제를 할 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주님, 주님하고 아무리 섬겼다고는 했지만 불법을 일삼는 자라고 하면서 물러가라고 하시는 말씀을 한번 곱씹어 본다면 이런 경우가 안 생긴다고 보장할 수만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더라도 정말 자신이 온전히 얼마나 하느님께 지극한 정성으로 미사를 봉헌하며 하느님을 섬기는지에 대해 한번 진심으로 자신의 양심에 자문해볼 필요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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