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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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 기념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9-02-14 조회수1,892 추천수14 반대(0)

지난 화요일에는 장례미사가 있었습니다. 손님 신부이지만 장례미사에도 함께 했습니다. 주례 신부가 있었지만 주임 신부님이 장례미사에 함께하였습니다. 주례는 아니었지만, 본당 교우의 장례미사에 함께하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보좌 신부에게 요구하면 부담이 되겠지만 주임 신부가 함께하는 것은 말하지 않는 모범을 보인 것 같았습니다. 손님 신부인 저도 고인을 위해서 함께 기도하였습니다.

 

불가의 조주 스님은 장례행렬을 쫓아가는 사람들을 향하여 이렇게 이야기하였다고 합니다. “한 사람의 산 사람을 수많은 죽은 사람이 쫓아가고 있구나경허 스님은 세속과 청산은 어느 것이 옳은가, 봄볕 비추는 곳에 꽃 피지 않는 곳이 없구나라고 말하였습니다. 육신이라는 옷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살아 있는 사람일 수 있다는 성찰입니다. 지금 우리가 있는 이곳도, 우리가 떠나야 하는 그곳도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가 함께 한다면 굳이 장소가 중요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다윗의 도성이 있었고, 임금이 살았던 곳이기에 중요한 곳이고, 갈릴래아는 호숫가이고, 어부들이 살았던 곳이기에 시골이라는 생각도 어쩌면 주관적인 것 같습니다. 갈릴래아는 많은 상인이 다니는 곳이고, 그곳을 통해서 새로운 사상과 문물이 전해진다면 갈릴래아가 더 중요한 곳일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이 전통과 율법을 고수하며 새로운 사상과 문물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오히려 변방이 될 수 있습니다.

 

가르고, 나누고, 분석하는 것은 사실과 진실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전체를 보았다면, 진실을 알았다면 가르고, 나누고, 분석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버스로 가든, 자동차로 가든, 기차로 가든, 비행기로 가든 목적지에 도착했다면 내려야 합니다. 이방인도, 신앙인도, 남자도, 여자도, 어른도, 어린이도 모두 진리를 보기 위해 옷을 입었을 뿐입니다. 몸이라는 옷을 입고 진리를 보았다면 감사할 일입니다. 진리를 보지 못하고 몸이라는 옷을 벗었다고 해도 크게 아쉬워하거나, 슬퍼할 것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 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축복받을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감동적인 신문 기사를 읽었던 적이 있습니다. 한 여인이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남편을 6년 동안이나 간호해서 의식을 되살려낸 것입니다. 이 여인은 의사들도 회복할 수 없다고 포기한 남편을 기적적으로 소생시켰습니다. 그녀는 항상 "그는 환자가 아니다. 내 남편이다."라고 스스로 다짐하였으며 하루에도 수십 차례 의식 없는 남편과 대화를 나눴다고 합니다.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남편을 아기처럼 껴안고 뽀뽀도 하였으며 남편이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고 했습니다. 도저히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이 그 남편은 6년 만에 부활하여 첫마디를 "아멘"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는 남편을, 아내들을 부끄럽게 만듭니다. 모든 부부는 분명히 결혼식에서 '비가 오나 바람 부나 괴로울 때나 슬플 때나 병들었을 때나 늙었을 때나 항상 사랑할 것을 맹세'한 신랑 신부였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유대인이 아니었던 시로페니키아 여인의 청을 들어주셨습니다. 솔로몬처럼 지혜가 크지도 않았습니다. 저처럼 사제생활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 듣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였고, 겸손하게 무릎을 꿇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겸손함을 보시고, 그 믿음을 보시고 여인의 딸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능력, 지혜, 업적, 지위를 모두 모아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겸손과 모든 것을 내맡기는 믿음의 무게를 감당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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