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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2.17)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2-17 조회수1,601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9년 2월 17일

연중 제6주일

제1독서 예레 17,5-8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와

스러질 몸을 제힘인 양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그의 마음이

주님에게서 떠나 있다.

 6 그는 사막의 덤불과 같아

좋은 일이 찾아드는 것도

보지 못하리라.

그는 광야의 메마른 곳에서,

인적 없는 소금 땅에서 살리라.”
7 그러나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는 복되다.

 8 그는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아

제 뿌리를 시냇가에 뻗어 무더위가

닥쳐와도 두려움 없이 그 잎이 푸르고

가문 해에도 걱정 없이

 줄곧 열매를 맺는다.

제2독서 1코린 15,12.16-20

형제 여러분,

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다고

우리가 이렇게 선포하는데,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어째서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다고 말합니까?
16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되살아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17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덧없고 여러분 자신은 아직도

여러분이 지은 죄 안에

있을 것입니다.

18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이들도

 멸망하였을 것입니다.

19 우리가 현세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죽은 이들의 맏물이 되셨습니다.

복음 루카 6,17.20-26

그때에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와

 17 함께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니,

그분의 제자들이 많은 군중을 이루고,

온 유다와 예루살렘, 그리고 티로와

시돈의 해안 지방에서 온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20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며 말씀하셨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21 행복하여라,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너희는 배부르게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희는 웃게 될 것이다.
22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리고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23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24 그러나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너희는 이미 위로를 받았다.

 25 불행하여라,

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들!

너희는 굶주리게 될 것이다.

불행하여라, 지금 웃는 사람들!

너희는 슬퍼하며 울게 될 것이다.
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하면,

너희는 불행하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거짓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2015년 90만명의 인스타그램의

 팔로워를 가지고 있는

 호주의 모델 에세나 오닐은

 “소셜 미디어는 진짜 삶이 아니다

(Social Media Is Not Real Life).”라는

 말을 하고서 모든 계정을 삭제하고

소셜 미디어를 끊어버렸습니다.

그녀는 가짜 삶을 위해서

한주 50시간씩 사진을 찍었고,

팔로워가 늘어날 때마다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갈구했습니다.

매일 자신이 얼마나 근사한지를

 증명해야 하는 강박증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모든 것을 가졌지만 비참했다고,

 왜냐하면 인터넷 안에서 자신은

 가짜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녀는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멋있게 보이는 사진을 한 장을 위해

똑같은 포즈로 100장이

넘는 사진을 찍어야했고,

조금이라도 날씬해 보이기 위해

음식을 거의 먹지도 않았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은 감추고

 진한 화장으로 가린 얼굴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했습니다.
사람은 누군가로부터 인정을 받고

사랑을 받는 것에서

행복을 얻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더욱 더 다른 이들에게

 잘 보이려고 자신을

가꾸어 나가게 되지요.

진짜 내 모습은 그렇지 않은데,

가짜의 내 모습을 통해서라도

행복을 얻으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에세나 오닐의 고백처럼

가짜의 내 모습 안에서는

행복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행복은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일까요?

세상의 기준으로는 불행하게

보일지라도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다면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스스로

인정하고 사랑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행복을 생각해봅니다.
가난한 사람, 굶주린 사람,

미움을 사고 욕을 먹고

누명을 쓰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부유한 사람들,

지금 배부른 사람들,

지금 웃는 사람들,

모든 사람들이 좋게 말하는

사람들은 행복할 것 같은데

 불행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함께 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부족함이 없는 사람은

주님과 함께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지요.

그에 반해 부족함이 많은 사람은

주님이 필요하고 이런 사람들과

기꺼이 함께 하시는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세상 안에서의 행복이 아니라,

나중에 하늘에서 받을 상에 집중하는

하늘 나라에서의 행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나 주님의 행복은 결코

 죽음 이후에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굳이 병자들을

고쳐주실 필요도 없고,

마귀를 쫓아내실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바로 세상의 기준으로는

불행의 상황이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을 굳게 믿으면서

희망을 간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믿음과 희망을 간직하는

 사람은 지금의 나를 꾸밀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주님께서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으로 용기와 희망을 주시는

주님께서 내 곁에 계신다는 것 자체에서

행복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그때 그랬더라면’ 이라는

말을 그만두고

‘이번이야말로’라는 말로 바꾸라.

(스마일리 브랜튼

(어제 순례 오신 분들과 함께)


자긍자시

(自矜自恃, 투에고)

설령 세상 모두가

차가운 바닷 속으로

당신을 밀어내도

절대 자신을 버려선 안 된다.
인생에서 가장 긴 시간 동안

나를 믿어주는 사람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다.
죽고 못 살던 사이도 혈연으로

맺어진 친척이나 가족도

어떠한 계기로 인해 한순간에

남남으로 돌아서기도 하니까
나날이 무정해져만 가는 세상에서

 자신마저 믿을 수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슬픈 일이 아닌가?
맞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자존감을 간직해야 합니다.

내 자신만이 내 안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또 주님 앞에 나아가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순례 오신 분들과 함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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