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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20.무엇이 보이느냐?-반영억 라파엘신부
작성자송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9-02-20 조회수1,546 추천수3 반대(0) 신고

연중 6주간 수요일(마르8,22-26)                    무엇이 보이느냐?     눈 먼 사람이 보게 된다면 얼마나 큰 기쁨이겠습니까? 그러나 보고 싶은 것도 많고, 볼 것도 많지만 정작 보아야 할 것을 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마르코 복음에서 ‘보다’라는 동사는 단순한 시력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이해와 깨달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생명의 빵’이신 주님과 함께 있으면서도 빵이 없다고 걱정하였습니다. 그래서 “너희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마르8,18.21)는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참으로 보아야 할 것을 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예수님께서 눈 먼 이의 두 눈에 침을 바르시고 그에게 손을 얹으신 다음 “무엇이 보이느냐?”하고 물으셨습니다. 침은 생명의 힘인 성령을 상징하고 성령은 마음을 흔들어 일깨우는 역할을 합니다. 손을 얹은 행위는 치유의 능력, 성령의 힘이 전달되었음을 알려줍니다. “무엇이 보이느냐?”는 말은 단순히 육안으로 보이느냐? 의 질문이 아닙니다. 새로운 세상이 보이느냐? 능력을 지닌 구세주가 보이느냐? 는 물음입니다. 그렇다면 내면의 치우가 먼저입니다.     우리는 흔히 눈을 ‘육안’, ‘심안’, ‘영안’으로 구별합니다.     육안은 그야말로 밖으로 드러나 있는 것을 보는 눈입니다. 현상을 보는 눈도 중요합니다. 검은 것은 검게 보고, 흰 것은 희게 봐야 합니다. 있는 그대로 보는 눈도 필요합니다.     심안은 마음의 눈입니다. 품은 생각을 드러내는 눈입니다. 그 사람의 마음에 무엇을 담고 있느냐에 따라서 보이는 것이 다릅니다. 똑같은 것을 보아도 어느 사람은 긍정적으로 좋게 보고, 어떤 사람은 굽은 눈으로 봄으로써 자기 마음을 표출하게 됩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네 눈은 네 몸의 등불이다. 네 눈이 맑을 때에는 온몸도 환하고, 성하지 못할 때에는 몸도 어둡다. 그러니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 아닌지 살펴보아라”(루카11,34-35). 우리는 각자의 직분에 맞는 마음의 소유자가 되어야 합니다. 부모는 부모로서의 마음을 품어야 하고 자녀는 자녀로서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스승은 스승으로서의 마음을, 제자는 제자로서의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성직자는 성직자로서의 마음을, 수도자는 수도자로서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그래야 맑은 눈으로 볼 수 있게 됩니다.     영안은 신앙의 눈입니다. 영안은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을 보는 눈도 아니고, 내 마음의 잣대로 판단하는 눈도 아닙니다. 영적인 눈은 하느님의 말씀에 비추어진 눈이요, 내 눈으로, 내 마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눈으로, 예수님의 마음으로 보는 눈입니다. 그야말로 “당신의 말씀은 제 발에 등불, 저의 길에 빛이옵니다.”(시편119,105) 영안을 가진 사람은 예수님이시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를 먼저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으로부터 빛을 받아야 합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분이 예수님이시니 말씀을 통하여 능력과 지혜를 받아야 합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눈 먼 이는 주님의 손길을 통해 사람들을 보았는데 처음에는 사람들을 걸어 다니는 나무처럼 보았습니다. 이것은 평상시에 익숙해져 있는 대로 본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다시 손을 얹으시자 똑똑히 보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겉으로만 본 것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을 보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능력은 아버지 하느님 안에서 행하여지고 마침내 십자가를 통하여 구원을 이루신다는 깨달음을 얻기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멉니다.     예수님께서는 눈을 고쳐주신 다음 “저 마을로는 들어가지 마라.”(마르8,26)고 하셨습니다. 저 마을이 무슨 마을일가요? 바리사이와 헤로데의 누룩이 만연하는 마을입니다. 어둠과 죽음의 그늘진 곳입니다. 그 마을로 들어가면 또다시 예전처럼 죄에 물들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러니 그 마을로 가지 말라 하셨습니다. 또한 당신이 하신 일이 마음이 굽은 사람들의 눈에 구경거리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주님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늘의 뜻에 따라 하였지 사람들에게 보이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육안의 눈을 넘어 마음의 눈을 뜨고, 영적인 눈을 뜨기까지 사랑과 정성으로 기도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주님께서 “무엇이 보이느냐?” 하시면 “예, 주님, 뚜렷하게 보입니다.” 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미루지 않는, 미룰 수 없는 사랑에 눈뜨기를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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