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19년 2월 20일(눈먼 이는 시력이 회복되어 모든 것을 뚜렷이 보게 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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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19-02-20 | 조회수1,251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19년 2월 20일 수요일 [(녹) 연중 제6주간 수요일] 말씀의초대 주님께서는 노아가 번제물을 바치자, 다시는 사람 때문에 땅을 저주하지 않으리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하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눈먼 이를 고쳐 주시고 집으로 보내시면서, “저 마을로는 들어가지 마라.”고 하신다. ◎제1독서◎ <노아가 내다보니 과연 땅바닥이 말라 있었다.> 8,6-13.20-22 자기가 만든 방주의 창을 열고 7 까마귀를 내보냈다. 물이 마를 때까지 왔다 갔다 하였다. 보려고 비둘기를 내보냈다. 찾지 못하고 방주로 노아에게 돌아왔다. 잡아 방주 안으로 들여놓았다. 다시 그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보냈다. 그에게 돌아왔는데, 부리에 물고 있었다. 물이 빠진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비둘기를 내보냈다.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첫째 달 초하룻날에 땅의 물이 말랐다. 내다보니 과연 땅바닥이 말라 있었다.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들 가운데에서 그 제단 위에서 바쳤다. 마음속으로 생각하셨다. 악한 뜻을 품기 마련 땅을 저주하지 않으리라. 어떤 생물도 파멸시키지 않으리라. 씨뿌리기와 거두기, 추위와 더위 그치지 않으리라.’ ◎화답송◎ 시편 116(114─115), 12-13.14-15.18-19ㄱㄴ (◎ 17ㄱ 참조) 감사 제물 바치나이다. 무엇으로 주님께 갚으리오? 구원의 잔 받들고, 주님의 이름 부르리라. ◎ 주님, 당신께 감사 제물 바치나이다. 주님께 나의 서원 채우리라. 주님께 성실한 이들의 죽음이, 주님 눈에는 참으로 소중하네. ◎ 주님, 당신께 감사 제물 바치나이다. 주님께 나의 서원 채우리라. 주님의 집 앞뜰에서, 예루살렘아, 네 한가운데에서. ◎ 주님, 당신께 감사 제물 바치나이다. ◎복음환호송◎ 에페 1,17-18 참조 저희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어 부르심을 받은 저희의 희망을 알게 하여 주소서. ◎복음◎ <눈먼 이는 시력이 회복되어 모든 것을 뚜렷이 보게 되었다.> 복음입니다. 8,22-26 22 벳사이다로 갔다.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는 청하였다. 손을 잡아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그에게 손을 얹으신 다음, 하고 물으셨다. 나무처럼 보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손을 얹으시니 그가 똑똑히 보게 되었다. 뚜렷이 보게 된 것이다. 보내시면서 말씀하셨다. ◎오늘의묵상◎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벳사이다에서 눈먼 이를 볼 수 있게 해 주신 이야기를 듣습니다. 일반적으로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치유해 주실 때에는 명령 한마디로 충분한 경우가 많지만, 때로 병자에게 직접 손을 대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 기적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눈먼 이의 두 눈에 침을 바르시고 손을 두 번이나 얹어 주십니다. 침을 바르고 손을 얹어 주는 것은 예수님께서 사시던 당시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병자에게 사람들이 처음에는 걸어 다니는 나무처럼 보이다가, 예수님께서 다시 손을 얹어 주시자 모든 것을 똑똑히 보게 됩니다. 이러한 단계적인 치유는 예수님의 능력이 약함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쳐 주시려고 애를 쓰시는 모습을 보여 주면서 이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이 사건 안에 몰입할 수 있게 해 줍니다. 결국 명령으로 이루어지는 치유와 근본적으로 같은 내용입니다. 치유 동작을 보여 주시는 것은 그 사람이 모든 것을 똑똑히 볼 수 있도록 해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 동작을 하시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무엇이 보이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혹시 내가 보고 싶은 것이나 아름다운 것만을 보면서, 다른 것은 외면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그 병자에게 하셨듯이 우리도 시력이 회복되어 모든 것을 뚜렷이 보게 되기를 바라십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그리고 어느 곳에서 사람들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지도 제대로 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눈도 치유해 주십사 청해야 하겠습니다. (이성근 사바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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