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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2.21)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2-21 조회수1,602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9년 2월 21일

연중 제6주간 목요일

제1독서 창세 9,1-13

1 하느님께서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복을 내리시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워라.

2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땅바닥을 기어 다니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고 무서워할 것이다.

이것들이 너희의 손에 주어졌다.

3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이

너희의 양식이 될 것이다.

 내가 전에 푸른 풀을 주었듯이,

이제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준다.

4 다만 생명 곧 피가 들어 있는

 살코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

5 나는 너희 각자의 피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다.

나는 어떤 짐승에게나

그 책임을 물을 것이다.

남의 피를 흘린 사람에게

나는 사람의 생명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다.

6 사람의 피를 흘린 자,

그자도 사람에 의해서

피를 흘려야 하리라.

하느님께서 당신 모습으로

사람을 만드셨기 때문이다.

7 너희는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라.

땅에 우글거리고

그곳에서 번성하여라.”
8 하느님께서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말씀하셨다.
9 “이제 내가 너희와

너희 뒤에 오는 자손들과

내 계약을 세운다.

10 그리고 너희와 함께 있는

모든 생물, 곧 방주에서 나와,

너희와 함께 있는 새와 집짐승과

 땅의 모든 들짐승과

내 계약을 세운다.

11 내가 너희와 내 계약을 세우니,

다시는 홍수로 모든 살덩어리들이

멸망하지 않고,

다시는 땅을 파멸시키는

홍수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12 하느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내가 미래의 모든 세대를 위하여,

나와 너희, 그리고 너희와

함께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우는 계약의 표징은 이것이다.

 13 내가 무지개를

구름 사이에 둘 것이니,

 이것이 나와 땅 사이에 세우는

계약의 표징이 될 것이다.”

복음 마르 8,27-33

그때에 27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카이사리아

 필리피 근처 마을을 향하여

길을 떠나셨다.

그리고 길에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28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29 예수님께서 다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베드로가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30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에 관하여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셨다.
31 예수님께서는 그 뒤에,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으시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32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명백히 하셨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3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신 다음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며 꾸짖으셨다.

무사히 이태리 밀라노에

도착했습니다.

밀라노에서 새벽 묵상글 을

 미리 올립니다.

참 한국에서는 새벽이겠네요...
한 달에 한 번 본당 봉성체 봉사를

하시는 자매님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좋은 일 하시네요.”라고 말씀드렸더니,

좋기는 한데 봉성체를 다녀오고 나면

 마음이 그렇게 편하지가 않다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연세가 많으시고 또 병으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일 텐데...’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었습니다.
누구나 다 늙을 수밖에 없고,

또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노인을 바라보는 이 사회의

잘못된 시선들은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고집만 커진다면서

 ‘꼰대’라는 표현을 하고,

나이 60이 넘어가면 뇌의 활동이

줄어들어 판단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집에서 쉬어야 한다는 말도 합니다.
이런 식으로 바라보고 있으니,

노인들 역시 부정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경험이 없어서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식으로 이야기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철없이

행동한다고 말합니다.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노인들은 우리 국민의

 문화적 보호막입니다.

곧 정의를 전하고 역사를 전하고

가치를 전하고 국민의 기억을 전하는

보호막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젊은이들은 노인과

맞서지 말아야 합니다.

그분들이 이야기하고 그분들이

하는 말을 경청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측면서 노인과

젊은이는 같은 운명인데,

서로가 서로를 제외시키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에게는 힘과 열정이 있고,

노인들에게는 기억과

지혜가 있다는 것을

서로가 인정해야 합니다.

그때 진정으로 세대 간의

갈등이 사라지고,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밝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요?
예수님께 베드로는 칭찬을 받았다가

 ‘사탄’이라는 소리까지 듣게 됩니다.

왜 그랬을까요?

예수님께 맞섰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수난과

죽음에 대해 말씀하시자,

그래서는 안 된다면서

반대했었던 것입니다.

그 기준은 하느님의 일이 아니라,

사람의 일이었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나의 생각과 다르다면 무조건

거부하고 맞서려는 마음들이

주님을 반대하는 또 하나의 모습입니다.

우리 모두의 구원을 위해서 이 땅에 오신

 주님의 사랑에는 절대로 맞서면

안 되는 것처럼, 주님의 사랑이

미치고 있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맞서려고만 하면 이 역시 주님을

반대하고 맞서는 것이 됩니다.
하느님의 일은 사랑입니다.

내 자신의 말과 행동이 사랑으로

 이어지는 것이라면 분명히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을 부정하고

 단죄하기 위한 말과 행동이라면

그것은 분명 사람의 일을 하는 것이며,

주님으로부터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빨리 가고 싶으면 혼자 가라.

그러나 멀리 가고 싶으면 함께 가라.

(아프리카 속담)

(좁은 비행기 안에서...)

1960년대 호주의 데렉 클리이턴은

세계적인 마라톤 선수 중에 하위권에

속하는 별 볼 일 없는 선수였습니다.

키는 188Cm. 상대적으로 폐활량이

작았던 그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운동을 했습니다.

일주일에 250Km씩 달렸으니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기록은 세계 기록보다

 5분 이상 늦었고,

노력에 비해 향상되지 않았습니다.
1967년 일본 후쿠오카 마라톤 대회를

준비하다가 부상을 입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자그마치 한 달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쉴 수밖에 없었지요.

 이렇게 부상으로 연습을 하지 못했지만,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출전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결과는 자신의 개인 기록을

 8분 이상 단축하면서 당시 세계 신기록인

2시간 10분벽을 깨고 우승을 한 것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쉬는 것을 미안해합니다.

하지만 휴식이야말로

가장 좋은 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쉴 때 최고의 아이디어를 내면서

가장 창의적인 발상을 합니다.

장기적인 휴가로 재충전하고

 돌아오면 전반적으로 생산성이 향상됩니다.

또한 잠재력을 발휘하는데 도

움을 받을 뿐 아니라 몸과

마음의 건강도 유지할 수가 있습니다.
언젠가 휴가를 간다고 하니까

몇몇 사람들이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갑곶성지는 어떻게 하고요?”

제가 없으면 갑곶성지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까요?

 사실 저는 휴가를 가려고 노력을 많이 합니다.

 익숙하지 않은 장소에서 갖는

저만의 시간을 통해 꽤 많은

아이디어를 얻게 되고 이를 성지에

 쏟아 부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성지에 계속 있게 되면

그만큼 발전도 없는 것이 아닐까요?
제 휴가의 타당성을

 말씀드려는 것이 아닙니다.

휴가, 쉼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저의 편안한 잠자리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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