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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골통 수도자가 세상에 남긴 교훈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19-02-21 조회수1,419 추천수1 반대(0) 신고

 

 

2년 전 부산교구 초량 성당에서 사순을 맞이하여 한 사순특강을 들었습니다. 그 당시 어머니께서 부산역 근처 병원에 계셔서 제가 매일 마산에서 어머니 운동을 시켜드리고 확인해야 될 게 있어서 병원을 가야 되는 그런 시기였습니다. 어떤 날은 피곤한 날은 부산에서 자고 그 다음날 와야 됩니다. 하루는 병원에서 나와 숙소로 가는 도중에 성당이 있어서 잠시 기도를 하고 갈까 싶어서 들어갔는데 아마 저녁미사를 마치고 사순 특강을 하는 중이었나 봅니다.

 

그래서 저는 도중에 강의를 들었습니다. 신부님 강의였습니다. 일본에 계시고 예수회 소속 신부님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강의 도중에 강의 내용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사실 그때 깊은 감명으로 다가온 부분이 있어서 한번 그 감동을 나누어 드리고 싶습니다. 사실 잊고 있었는데 제가 어제 조배를 하는데 마지막에 순간 분심이 들었습니다. 저는 매주 수요일 밤 11시에서 12시까지 지속적인 성체조배를 영세를 받고 나서 거의 지금까지 중간에 어머니 간호 때문에 잠시 쉰 걸 제외하면 7년 정도 해오고 있는 셈입니다.

 

저는 어쩌다 보니 혼자 하고 있습니다. 사실 어제 조배가 마칠 시간 무렵에 분심이 생겼는데 갑자기 그때 그 신부님 강의 내용이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그래서 조배 때 왜 이게 생각나지 하면서 순간 제 나름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어쩌면 예수님께서 보내주시는 사인이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너 조배 마치고 가면 그때 너가 감동 받은 내용 한번 교우들에게 나누어주라고 하는 그런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건 어디까지나 제 생각입니다.

 

12시 마치고 집에 돌아가 씻고 바로 내용을 정리해서 올리려고 했는데 배도 좀 출출하고 해서 간식 좀 먹고 하다 보니 그냥 자게 되어 이제야 올리게 되었습니다. 저도 중간부터 들었지만 들은 내용 중에서 정말 인상적이었고 감동적인 한 부분만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이 신부님이 소속하고 계신 수도회에 정말 골통인 수도자 한 분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날 강의에서 이 신부님께서 이 강의를 하신 건 이 수도자를 비판하고자 하신 강의가 아니였습니다.

 

다만 이 수도자의 모습을 통해서 우회적으로 우리의 자신의 내면을 한번 성찰하고자 하는 의도로 이 수도자의 모습을 전해 주신 걸로 사료됩니다. 먼저 사전에 이런 말씀을 전해드려야 될 것 같아 언급해드렸습니다. 정말 수도회에서 이 골통 수도자로 인해 그 수도회에 있는 많은 수도자 분들이 정말 정신적으로 많은 스트레스가 되었나 봅니다. 심지어는 많은 수도자 분들이 하느님께 저 수도자를 다른 곳으로 가게 해 주실 것을 기도를 할 정도였다면 얼마나 그분이 그 수도회에서 골치 덩어리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그렇게 하루하루 수도생활을 하는데 어느 날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고 합니다. 마치 수도원에 축제가 될 정도의 소식이 하나 있었습니다. 아마 눈치 빠른 분은 감을 잡았을 것 같습니다. 바로 그 골통 수도자분이 다른 수도원으로 가게 된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 소식을 접한 수도원 내부에 있는 수도자 분들이 그 소식에 기쁨을 감추지 못할 정도로 정말 경사라고 했을 만큼 엄청 반가운 소식이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수도자분이 다른 곳으로 가셨다고 합니다. 정말 그때 수도원 분위기가 완전 뭐 천국이나 마찬가지라고 여길 정도로 분위기가 바뀐 것이었습니다.

 

정말 한동안은 수도원의 분위기가 평화로운 분위기였다고 합니다. 마치 제대로 기도 생활과 수도생활에 전념할 수 있는 정말 제대로 된 수도원 분위기처럼 말입니다. 근데 이어서 이어지는 신부님의 강론에 반전이 있었습니다. 그 수도자님이 떠나실 때 수도원에 계신 분들이 하이파이브를 하고 이런 분위기였는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또 수도원 분위기가 또 이 앞전에 그 골치 아픈 수도자분이 있었던 시간처럼 그런 분위기가 되었다는 겁니다.

 

그러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아세요? 저는 이 부분에서 정말 웃음을 참지 못했습니다.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신자를 향해서 특이한 표정으로 왜 그런 분위기가 조성되었는지에 대한 이유가 바로 새로운 골통이 탄생해서 그랬다고 합니다. 저는 이 부분이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모릅니다. 저는 사실 그 신부님의 그날 사순 특강 강의 전체를 듣지는 못했지만 그날 강의의 백미가 바로 그 부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이 부분이 왜 백미였는지 한번 제가 추론을 해보겠습니다. 그때 신부님께서 왜 새로운 골통이 탄생했다고 표현을 했을까요? 여기가 바로 그 신부님께서 신자들에게 알려주시려는 중요한 교훈이 숨어 있었다고 저는 봅니다. 바로 이런 것입니다. 사실 그 골통 수도자가 너무나도 골치 덩어리였기 때문에 그 수도자분에 비해 다른 수도자에게도 골치를 느낄 수 있었던 부분이 있었지만 그게 상대적으로 작았기 때문에 그게 골치라고 여기지 못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 부분이 핵심입니다. 저는 이날 이 강연에서 많은 걸 배웠습니다.

 

가장 골치 덩어리인 수도자분이 수도원에 계셨을 때에도 다른 수도자분들이 그 수도원에 계셨지만 그땐 그분들의 눈에 골치로 여기지 않았다는 건 무엇을 말해주는 것이겠습니까? 만약 그 골치가 사람의 허물이라고 가정을 해보겠습니다. 결국은 언제 허물이 보이는 것입니까? 우리가 어떤 한 개인의 허물을 보더라도 허물이라고 인식을 하지 못한다면 허물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맞지 않겠습니까?

 

평소에는 제일 골치 덩어리 수도자분한테만 경계와 주의를 쏟았으니까 상대적으로 다른 수도자분들에게는 신경을 쓸 생각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분의 허물을 마치 보았다고 하더라도 그러니까 봐도 그 허물이 허물로 인식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정말 이게 엄청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시사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결국은 자신의 마음의 눈이 상대방의 허물을 보는 눈이 되면 허물을 볼 수 있을 것이고 자신의 마음의 눈이 그걸 허물이라고 하더라도 허물로 인식을 하지 못하면 결국 허물을 보더라도 허물로 인식을 하지 않으니까 결국 문제는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어디나 자기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은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그 상대가 바로 지금 자신이 싫어하는 그 상대가 아니더라도 말입니다. 결국은 자신의 마음 상태가 어떤지에 따라서 그런 사람도 존재할 수 있고 설령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마음이 어느 정도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다른 사람의 허물을 보더라도 그게 허물로 인식이 되지 않을 정도의 자신의 마음이 그런 고차원 정도의 수준으로 신앙의 눈을 고양시킨다면 상대의 어떤 허물도 허물로 인식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결국은 어차피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자기 마음에 맞는 사람만 있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렇다면 쉽지는 않지만 차선책으로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은 자신이 상당한 신앙의 수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세상을 보는 눈을 애덕의 마음으로 보려고 노력하면 상대의 허물도 보이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저는 그날 그 신부님의 강의를 통해서 정말 중요한 교훈을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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