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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베드로 사도를 향한 연민에 찬 예수님의 눈빛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19-02-22 조회수1,277 추천수2 반대(0) 신고

 

 

오늘 저는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을 맞이하여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에게 천국문의 열쇠를 맡기면서 그때 베드로 사도를 바라보셨을 때 예수님의 눈빛이 어떠했을까를 한번 묵상해봤습니다. 그냥 상상의 나래를 펼쳐봤습니다. 저와 함께 한번 상상의 나라로 가보시죠. 저는 성경지식이 일천해서 성경으론 한계가 있습니다. 만약 성경지식이 많다면 정말 이런 땐 참 좋겠습니다. 저는 세례명이 베드로라서 베드로 성인의 성화가 있습니다.

 

눈물 흘리는 베드로 성인의 성화입니다. 네들란드 화가가 그린 성화입니다. 예전에 이 성화를 바오로 서원에서 구입하고 한번 성화를 보면서 성화에 빠져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는 베드로 성인의 눈을 유심히 보며 성경의 내용과 오버랩시켜 묵상한 적이 있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을 배반하고 나서 흘리는 눈물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배반할 것이라는 말씀이 생각나서 슬피 흘리는 눈물 말입니다. 그때 눈물 흘리시는 사도의 마음과 또 제가 예전에 개신교에 있을 때 예수님을 생각하며 눈물로 회개를 해야 할 때라면 보는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이사야서 53장입니다. 먼저 이사야 53장을 두 세 번 천천히 읽고 예수님을 생각하며 슬피 눈물 흘리는 베드로 사도의 심정을 상상하면서 눈물 흘리는 베드로 성인의 성화를 보게 될 때 눈물이 나오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냥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정말 그 감정에 몰입되면 아무리 메마른 영혼이라도 눈물이 나올 겁니다. 제가 처음에 성화를 구입하고 처음엔 정말 눈물이 그치지 않을 정도로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 이후에는 처음 때만큼은 눈물이 나오지 않습니다. 아마 갈수록 영혼에 때가 많아져서 그런 건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그렇습니다.

 

오늘은 이런 일련의 일과 관련지어서 한번 상상을 해봤습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에게 열쇠를 맡기실 때 첫째는 기쁜 마음이 아니셨을 것 같다는 생각을 먼저 했습니다. 상당히 무거운 마음이셨을 겁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도 이 세상에서 계셨을 때는 저희와 똑같은 육신을 입고 있으신 건 사실이지만 신성도 가지고 계시면서 인성도 취하셨기에 그 무거운 세상의 죄를 다 예수님께서 감당하실 만큼의 힘도 가지고 계셨지만 베드로 사도는 그저 하나의 한 인간이었고 또 당신을 따르는 제자에 불과했기 때문에 그런 제자에게 어쩌면 하늘의 전권과도 같은 것인데 그걸 맡기시려고 하니 한편으로는 예수님의 신성을 배제한 인성적인 측면에서 바라봤을 때 인간적으로 베드로 사도에게 엄청난 무거운 짐을 안겨주고 떠나시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면 정말 그때 예수님의 심정이 참 먹먹했을 것 같습니다.

 

제가 만약 예수님의 마음이라면 속으로 이런 맘이 들었을 겁니다. 베드로야, 나야 근본적으로 이 세상을 창조한 창조주 하느님이지만 너는 비록 세상에서 많이 배우지도 못했고 성격도 다혈질적인 성격도 없지 않아 있어 참으로 나에겐 너가 나의 제자라고 말하기엔 상당히 자질이 부족함에도 내가 왜 너에게 천국 열쇠를 주는 줄 아니? 넌 그래도 행동하는 건 돌발적인 행동도 하곤 하지만 너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나를 생각하는 깊은 마음과 또 너의 근본 마음 심성이 여려서 내가 맡기는 거란다.

 

너가 강한 성격이라면 절대 너에게 천국열쇠를 맡길 수 없단다. 왜인 줄 아니? 세상에서도 강한 성격은 강한 것 같지만 오히려 강하다는 건 잘 부러질 수 있는 성질이 있어서 더 약하고 더 빨리 무너질 수 있단 말이다. 나 대신 이 세상을 이끌고 나아가려면 겉은 강한 남자의 모습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만 마음속은 손만 대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꽃몽우리처럼 여린 여자의 마음이 있어야 그래야 어느 누구의 마음도 품을 수 있단 말이다. 그래서 그런 부분에서 넌 내 마음에 드는 녀석이란 말인 거야. 이런 내 맘 알겠니?

 

베드로야, 내가 너에게 사탄이라고 하면서 또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고 혼냈을 때 내 어찌 너의 그 맘을 모르겠니? 인간적으로 너가 나를 위해서 한 말이라는 거 다 알고 있지만 내가 왜 이 세상에 왔니? 나는 바로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단 말이지. 너가 나를 사랑하는 그런 인간적이 마음은 알지만 여기서는 그런 인간적인 생각으로 일을 하게 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에 어긋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랬었더란 거다. 베드로야, 이런 내 맘 알겠니? 그래도 난 너를 믿어. 그런 말을 해도 순간은 놀랄 수는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면 내가 한 그런 말을 내가 왜 했을지를 넌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기에 내가 너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단 말이야. 베드로야.

 

만약 너가 그런 말을 잘못 이해할 정도의 마음이라면 너한테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단 말이지. 그런 만큼 나는 너를 믿고 있었다는 거지. 이런 내 맘 알겠니? 베드로야,

 

베드로야, 나도 고민이 참 많았단다. 누구에게 천국열쇠를 맡길지 말이다. 그리고 베드로야, 내가 왜 너한테 세 번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은지 아니? 너의 아픈 과거를 떠올리게 해서 너의 마음을 아프게 하려고 한 게 아니란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나면서 너가 나한테 신의를 저버린 행위에 대해 그렇게 함으로써 너에 대한 명예를 회복시켜 주는 차원에서 너에게 세 번 물어본 거란 말이야. 이 맘 알겠니?

 

만약 그때 예수님의 마음이 이런 마음을 품고 계셨다고 상상을 해보았을 때 원래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하니까 그런 마음이 예수님의 눈동자에 바로 투영이 되어 나왔을 겁니다. 그때 베드로 사도는 그런 예수님의 눈을 보지 않았을까요? 저는 분명히 그런 예수님의 눈을 봤을 거라고 상상을 한번 해봅니다. 바로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의 눈빛을 이심전심으로 읽었을 겁니다.

 

그때 정말 그런 예수님의 눈빛을 보며 자신의 마음에는 통한과 회한의 마음이 북받쳐 올랐을 겁니다. 그런 예수님의 사랑을 진작에 몰라봤던 사실에 대해서 말입니다. 네들란드 화가가 그린 베드로 성인의 성화를 보면 그 성화 속에 이미 그런 베드로 사도의 마음을 그렇게 화가가 잘 표현했다고 저는 그 성화를 보면서 느꼈습니다. 그리고 또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느끼신 감회는 나를 위해 어떻게 순교할지를 아시니 나야 원래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이 세상에 와서 그런 길을 가야한다고는 하지만 너는 사람으로서 나처럼 나중에 그런 길을 가게 되는 운명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 참으로 가슴이 아프구나. 베드로야, 하고 그런 마음을 가지지 않으셨을까 생각합니다.

 

그래도 베드로야, 어쩌겠니? 지금 이런 아픔과 고통이 있지만 내 나중에 너의 그런 고통과 아픔을 반드시 잊지 않고 너에게 하늘나라에서는 너가 나를 위해 한 공로는 내가 영원히,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영광의 역사로 남게 해 줄 것을 약속하마. 그러니 내가 너를 믿고 하늘나라의 열쇠를 너에게 맡기니 이 세상에 내가 없어도 내 역할을 잘 해 주기를 바라며 우리 다시 하늘에서 만나자구나. 베드로야, 우리 그때 보자구나.

아마 그때 예수님의 이런 맘을 베드로 사도는 읽었을 겁니다. 그러니 나중에는 마지막 순교 그 순간에도 예수님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를 원한 사실을 보면 그런 마음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저는 상상을 해봅니다. 저 나름대로 베드로 사도에게 천국의 수위권을 맡기는 예수님의 마음을 상상의 나래를 펼쳐서 한번 묵상을 해봤습니다. 어디까지나 상상입니다. 상상에는 정답이 없기에 그래서 부담없이 상상을 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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