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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용서는 상대보다 나를 위해서 / 연중 제7주일 다해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9-02-24 조회수1,359 추천수1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원수를 사랑하여라. 미워하는 이들께 잘해 주고, 저주하는 자들에게 축복하며, 학대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여라.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뺨 내밀고, 겉옷 가져가는 자는 속옷도 가지게 버려 두어라. 달라면 주고, 가져간 이에게서는 되찾으려 하지 마라.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해 주어라.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단죄 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용서받을 것이다.”(루카 6,27-31, 37 참조)

 

예수님의 사랑 실천 방법은 이웃과 원수 사랑이다. 이웃을 제 몸처럼 사랑하라는 것도 이해가 어렵지만, 원수까지 사랑하고 그의 원을 다 들어주어야 한다는 건 참으로 충격이요 역설적이다. 왜냐면 보통은 이와 전혀 달리 살기에. 오히려 악에 맞서 싸우고 응징함으로써 정의를 세우는 게 훨씬 마음에 와 닿고 실천도 더 쉬울 것 같기에.

 

그러나 이 이웃과 함께 원수 사랑의 예수님 가르침은 역사 안에서 언제나 옳았다는 것 같다. 이 가르침이 있었기에 인권이 존중되고 인간 존엄성이 지켜져 왔음을 볼 수 있기에. 정의를 빙자한 폭력과 권력은 인권과 인간 존엄성을 파괴하는 부작용만을 낳을 뿐이었다. 예수님께서 실현하신 하느님나라는 결국 악에 대한 선의 승리를 뜻한다.

 

그래서인지 원수를 사랑하라.”라는 예수님의 이 말씀은 우리 신앙인들에게 늘 이상적인 가르침이다. 실제로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은 우리 본성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원수에 대한 사랑이 어려운 것은 그 가해자에 대한 증오심을 거두어들이는 것도 어렵지만, 그에 대한 용서가 잘 되지 않기에. 결국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게 어려운 건 바로 나의 온 마음이 그 가해자에 대한 감정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용서는 거창한 게 아닌 작고 소박한 거라고 여기면 그리 어렵지 않단다. , 상대의 죄를 사면해 준다거나 그와 화해하는 행위 또 나아가 그를 사랑해야 하는 게 용서라고 생각지 않는다면 용서하기가 쉬워진다는 거다. 일단 원수 용서의 첫걸음을 옮기는 게 중요한데 이는 원수에게 복수하겠다는 마음의 포기에서 시작할 게다. 그리고 용서는 그 상대를 위해서가 아닌 바로 자신을 위한 것임을 깨달아야만 쉬우리라.

 

물론 원수 사랑한다는 것, 곧 원수를 용서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게 어찌 쉬울 수가?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하시며, 남에게 베푼 그대로 우리에게 되갚아 주실 것이란다. 아니 우리가 준 것보다 더 후하게 베푸시겠단다. 사랑받기보다는 주려고 애쓰는 신앙인이 되어야겠다.

 

따라서 자신을 위해 용서하는 것이지, 상대를 위한 게 아님을 깨닫자. 이렇게 나를 위한 용서가 시작될 때, 궁극적으로는 원수에 대한 용서가 쉽게 이루어 질 수 있을 게다. 하느님 앞에서 아무 죄 없이 설 수 있는 이 과연 있으랴? 그러나 그분께서는 죄 많은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신다. 그리고 당신 아드님의 그 십자가를 통해 우리를 끊임없이 구원에 초대하신다. 성체성사로 주님 사랑을 체험한 우리는 남을 용서하는 넓은 마음으로 주님의 크신 자비에 감사해야 할게다. 용서, 그것은 나에 대한 사랑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용서,사랑,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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