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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2.26)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2-26 조회수1,766 추천수10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9년 2월 26일

연중 제7주간 화요일

제1독서 집회 2,1-11

1 얘야, 주님을 섬기러 나아갈 때

너 자신을 시련에 대비시켜라.

 2 네 마음을 바로잡고 확고히 다지며

재난이 닥칠 때 허둥대지 마라.

3 주님께 매달려 떨어지지 마라.

네가 마지막에 번창하리라.

4 너에게 닥친 것은 무엇이나

받아들이고 처지가 바뀌어

비천해지더라도 참고 견뎌라.

5 금은 불로 단련되고

주님께 맞갖은 이들은

비천의 도가니에서 단련된다.

질병과 가난 속에서도

그분을 신뢰하여라.
6 그분을 믿어라,

그분께서 너를 도우시리라.

너의 길을 바로잡고

 그분께 희망을 두어라.

 7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아,

그분의 자비를 기다려라.

빗나가지 마라.

넘어질까 두렵다.

 8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아,

그분을 믿어라.

 너희 상급을

결코 잃지 않으리라.

9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아,

좋은 것들과 영원한 즐거움과

자비를 바라라.

그분의 보상은 기쁨을

들인 영원한 선물이다.
10 지난 세대를 살펴보아라.

누가 주님을 믿고서

부끄러운 일을 당한 적이 있느냐?

누가 그분을 경외하면서 지내다가

버림받은 적이 있느냐?

누가 주님께 부르짖는데

소홀히 하신 적이 있느냐?
11 주님께서는 너그럽고

 자비하시며 죄를 용서하시고

재난의 때에 구해 주신다.

복음 마르 9,30-37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30 갈릴래아를 가로질러 갔는데,

예수님께서는 누구에게도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다.
31 그분께서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그들 손에 죽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면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계셨기 때문이다.

32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분께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33 그들은 카파르나움에 이르렀다.

 예수님께서는 집 안에

계실 때에 제자들에게,

 “너희는 길에서 무슨 일로

논쟁하였느냐?” 하고 물으셨다.

34 그러나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길에서 논쟁하였기 때문이다.

35 예수님께서는

자리에 앉으셔서 열두 제자를

불러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36 그러고 나서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에 세우신 다음,

그를 껴안으시며

그들에게 이르셨다.
37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예전에 교구청에서
 근무할 때가 생각납니다.
연말 성탄을 앞두고 교구청에
 근무하는 모든 신부와
직원들이 모여 마니또를 했습니다.
대림을 시작하면서
 자신의 마니또를 뽑아서,
이 마니또를 위해 기도해주고
또 성탄 전날 자그마한 선물을
주는 시간을 갖습니다.
저의 마니또는 평소에
존경했던 분이었습니다.
 이분을 뽑았다는 사실이 기뻤고,
대림시기 내내 이분을 기억하며
기도한다는 사실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마니또 발표 전날,
마니또 선물을 사러 동료 신부와 함께
리로 나갔는데 지나가는 길들이
모두 아름답게 보이는 것입니다.
거리에 들리는 캐럴도
너무나 듣기 좋았습니다.
이런 심정을 옆의 신부에게
말했더니 이런 말을 합니다.
“기분이 좋은가 보다.”
마법에 걸린 듯 한 기분이었습니다.
제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분을 위해
무엇인가를 준비하는 이 길은
 모두 좋게 보이고
아름답게 보이는 것입니다.
주님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입니다.
입으로는 존경하고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지금의 내 주위를
바라보는 내 시선을 통해 정말로
그런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내 주위가 멋지고 아름답다고
느껴지면 그만큼 주님을 내 안에
모시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어쩌면 그만큼
 주님께 대한 사랑이
부족한 것은 아닐까요?
멋진 주님을 향해 나아가는 길,
모든 것이 분명히 좋게
보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주님을 향해 나아가는 길이
 세상 안에서의 높은 지위를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주님을 따름으로 인해서
고통과 시련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을 따름으로 인해서
 박해라는 시련도 겪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우리들은 세상의 부와
명예에 늘 집중하고 있습니다.
하긴 예수님과 동고동락을 했던
 제자들도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를
 두고서 서로 논쟁을 합니다.
주님께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더욱 더 주님을 사랑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할 때,
이 세상 안에서 고통과 시련도
거뜬하게 이겨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자신을 낮추라고 명령하십니다.
부모에게 철저하게
의지하는 어린아이처럼,
하느님 아버지께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하는 낮은 모습을
 간직하라고 하십니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세상이 아닌 주님께 집중하는 삶,
세상에서는 꼴찌가 되고
종이 되더라도
이 안에서 커다란 기쁨과 행복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 점을 기억하는
오늘이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인생은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다.

균형을 잡으려면 움직여야 한다.

(아인슈타인)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의 유해가 모셔져 있습니다)


지혜로운 신하.

옛날에 한 왕이 있었습니다.

이 왕은 항상 화려한 금관을 쓰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날마다 거두어 드리는

 세금 때문에 백성들은

 굶주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때 한 지혜로운 신하가

왕의 침실에 거울을 뜯어내고

백성들을 바라볼 수 있는

창문을 달아 놓았습니다.
다음 날 잠에서 깨어난 왕은

화려한 옷을 입고 금관을 쓰고

거울 앞에서 서려고 하다가

창문 밖에 초라한 백성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 왕도 양심은

살아있었던 모양입니다.
굶주림에 지친 여인들과

고통에 떠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허리가 굽은 노인들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이 참담한 모습을 본 왕은

자신이 무능하게

다스렸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왕은 화려한 옷을

소박한 옷으로 갈아입고

백성을 새롭게 다스렸습니다.

(아씨시에 들어왔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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