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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진정성 있는 사죄와 보상, 동일한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노라는 결심!)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3-02 조회수1,252 추천수4 반대(0) 신고

 


스테파노신부님복음묵상

진정성 있는 사죄와 보상,

동일한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노라는 결심!

31절 맞아 가깝고도 먼 이웃

일본을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바로 옆집에 사는 이웃이

이왕이면 편안하고 마음씨 좋은 이웃,

서로의 아픔을 덜어주고,

서로의 상처를 따뜻히 보듬어 주는

그런 친형제보다 가까운

이웃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우리 나라는

정말이지 지지리도

이웃 복이 없습니다.

하필이면 이 세상에서

가장 호전적이고 야비한

하이에나 같은 이웃을

제대로 만난 것입니다.

틈만 나면 쳐들어와 우리 것을

깡그리 다 수탈해갔습니다.

채 피어나지도 않은

우리 꽃같은 소년 소녀들을

이역만리 낯선 곳으로 끌고가,

혹독한 고통과

죽음을 겪게 했습니다.

그 정도 큰 잘못을

저질렀으면 백번 천번이라도

무릎을 꿇고

사죄를 해야 마땅한데,

그들은 아마 인간이기를

포기했나 봅니다.

인간으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예의를 망각하고,

군국주의의 망령에

사로잡혀 있는 아베 수상을

비롯한 군국주의자들의

파렴치함을 도무지 용서할수

없었던 하루였습니다.

우리 그리스도교에서

강조하는 용서와 화해에 대한

가르침도 사실은

상식적인 것이고 일반적인

토대 위해 성립됩니다.

용납할 수 없는 굴욕적이면서도

일방통행식의 용서와 화해로는

진정한 용서와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자명합니다.

상대방의 인생,

상대 국가의 얼굴에

평생 씻지 못할 치명적

과오와 상처를 입혔다면,

그에 합당한 방식과

절차에 따른 진정성 있는

사죄와 보상,

다시는 동일한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노라는 결심이

선행되어야만 합니다.

그런 절차가 이루어진 다음에

용서나 화해라는 단어가

사용 가능한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그리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그 오랜 굴욕과

슬픔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 사과 하는듯 하지만,

돌아서서 우리를 비웃고 있습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모욕적인

발언을 서슴치 않고 있습니다.

먼저 떠나신 순국 선열들이

그 모습을 보신다면,

정말이지 눈을 감지 못하실 것입니다.

오늘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31절을 맞아 위안부 할머님들의

억울함을 기억하며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무효과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천주교 전국행동에서는

또 다른 가슴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에

등재하는 작업을 진행 중인데,

이에 맞서 일본 정부는

다양한 압력과 금권을 앞세워,

노골적인 방해 공작을

계속해 왔더군요.

멀고도 가까운 이웃의

끝까지 뉘우치지 않는 모습 앞에

분노를 금할 길 없습니다.

우리 민족과 세계 앞에

씻을 수 없는 만행을

저질러 놓고도 끝끝내

제대로 된 사과 한번

하지 않는 그들,

자위(自衛)라는 미명 아래

자위대(自衛隊)를 창설하고,

또 다른 군사 강국을 꿈꾸는

그들을 어떻게 인간이라고

할수 있을까 싶습니다.

순풍에 돛단듯 순조롭게

이루어질듯 보이던 북미간

정상 회담이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는 배경에 대해서도

진한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최근 신속히 진행되고 있던

한민족 간의 화해와

평화 통일을 위한 위대한 여정에,

철저하게도 패스 당했다고 여기며

배아파하던 그 사악한 무리들의

음흉한 권모술수가 떠오르는 것은

저만의 상상일까요?

오늘 31절을 지내며,

항일 항쟁의 최선봉에 선

투사들의 면면을 보니

다들 그렇게 청춘의 나이였습니다.

그들만의 특권인 젊음,

그 젊음이 발산하는 순수함,

그 순수함이 지향하는

정의로움과 용기가 그들을

목숨 건 애국 투쟁으로

이끌었는가 봅니다.

그들의 어린이와 같은

순진무구함이 나라와

겨레를 위한 혁명과 희생으로

인도했나 봅니다.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냥 놓아두어라.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와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

(마르코 복음 1014~15)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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