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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8 주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9-03-03 조회수1,976 추천수11 반대(0)

 

동창들이 제게 정해준 별명이 있습니다. 삼국지에 나오는 조자룡이라고 불렀습니다. 같은 성이라서 그런 것도 같고, 제가 신학교 매점에서 일을 해서 그런 것도 같습니다. 매점 열쇠를 제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 것도 같습니다. 제게는 과분한 별명이지만 조자룡처럼 의리 있고, 충실하며, 맡겨진 일이 있다면 잘하고 싶었습니다. 가까운 선배와 후배가 저를 기억하는 것은 저의 체력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운동 신경이 없어서 축구나 농구를 거의 못하였습니다. 아마도 저를 기억하는 것은 저의 말이었던 것 같습니다. 자치회장에 출마하는 동창신부가 제게 지지연설을 부탁했습니다. 저는 이사야 예언자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과 윤동주 시인의 십자가라는 시를 인용해서 지지연설을 하였습니다. 자치회장이 되었던 동창신부는 제게 곱창볶음을 사주었습니다. 전교생이 성당에 모여서 저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다지 떨리지 않았던 기억입니다. 제가 자치회장이 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또 한 번 선배와 후배가 저를 기억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저의 말이었던 것 같습니다. 교황님의 권고로 사제성화의 날을 지내게 되었고, 제가 속한 지역에서 사제성화의 날에 발표할 사제를 정해야 했습니다. 사제가 사제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다들 사양하였습니다. 작은 성당에서 사목하던 저는 발표하면 응분의 사례를 한다는 말에 혹해서 발표를 하였습니다. 제목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 거창했던 사목이란 무엇인가?’였습니다. 신문에서 보았던 한시(漢詩)를 몇 가지 정리하였고, 본당에서 있었던 일들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학문적인 이야기가 아니고, 저의 삶을 나누었기 때문에 신부님들은 재미있게 들어주었습니다. 그날 발표한 것이 계기가 되었는지 저는 그 뒤로 사목국 교육담당 업무를 맡게 되었고, 원하지는 않았지만 이곳저곳에서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부족한 저의 말을 들어주었던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제게 말할 기회를 주신 분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 저의 말이 부담이 되었던 분들이 있다면 용서를 청합니다. 돌아보면 저는 제가 한 말을 저의 삶으로 실천하지 못하였습니다. 부끄럽고, 아쉬운 날들이 많았습니다. 나름대로 말을 하면서 느낀 것들이 있어서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주변의 작은 것들이라도 유심히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남들이 그냥 넘어가는 것들 중에도 의미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구름도, 나비도, 작은 벌레도, 신문에 난 미담도, 아이의 웃음도 유심히 보면 말의 소재가 되었습니다.

말은 강연과 강의가 아니기에 줄거리가 있는 것이 좋았습니다. 논리적이고, 학문적인 말도 의미가 있습니다. 영상물을 이용한 말도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진솔한 삶의 이야기가 듣는 사람에게는 더 큰 감동이 있을 것입니다.

원고는 충실하게 준비하지만, 말을 할 때는 가능하면 원고는 보지 않는 것이 좋았습니다. 보험을 하는 분들도 원고를 보지 않고 상담을 합니다. 스마트 폰을 파는 분도 원고 없이 제품에 대한 설명을 합니다.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도 원고를 보지 않고 대화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원고를 보고 이야기 하지 않으셨습니다. 처음에는 힘들지만 자꾸 하면 가능해집니다.

적당한 유머가 필요합니다. 의자에 앉아서 듣는 분들은 5분 이상 집중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저도 강의를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시대의 징표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석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과 진심어린 이야기입니다. 말을 듣는 사람은 10분이면 말하는 사람의 진정성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의 성서말씀은 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하고 있습니다.

1독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체로 치면 찌꺼기가 남듯이 사람의 허물은 그의 말에서 드러납니다. 옹기장이의 그릇이 불가마에서 단련되듯이 사람은 대화에서 수련됩니다. 나무의 열매가 재배 과정을 드러내듯이 사람의 말은 마음 속 생각을 드러냅니다. 사람은 말로 평가됩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을 수도 있으며,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합니다. 주변을 보면 말 때문에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저 역시도 듣기보다는 말을 먼저하면서 실수를 하곤 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이야기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어찌하며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여러분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합니까?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 놓습니다. 마음에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입니다.” 위선과 가식의 말을 삼가라고 하십니다. 남의 허물을 탓하기 전에 자신의 과오는 없는지 살피라고 하십니다. 고백소에서도 본인의 잘못을 고백하기보다는 이웃과 가족의 죄를 고백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고백성사는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백성사는 자신의 잘못을 겸손하게 뉘우치고, 하느님과 화해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제2독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형제 여러분, 이 썩는 몸이 썩지 않는 것을 입고 이 죽는 몸이 죽지 않는 것을 입으면, 그때에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죽음의 독침은 죄이며 죄의 힘은 율법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언제나 주님의 일을 더욱 많이 하십시오.”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살고 있는 신앙인들에게 용기와 힘을 주는 말입니다. 죽음을 넘어서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선포하는 말입니다. 하느님께서 다 알고 계시니 걱정하지 말고 복음을 전하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2000년이 넘은 지금에도 전해지고 있으며, 장례미사의 독서에도 봉독되고 있습니다.

 

오늘 내가 하는 말이 위로와 용기를 주는 말이 되면 좋겠습니다. 오늘 내가 하는 말이 진실과 정의를 선포하는 말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 세상에 별처럼 빛나도록 여러분은 생명의 말씀을 굳게 지녀야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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