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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3.05)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3-05 조회수1,643 추천수8 반대(0) 신고

 


2019년 3월 5일

연중 제8주간 화요일

제1독서 집회 35,1-15

1 율법을 지키는 것이

제물을 많이 바치는 것이고

2 계명에 충실한 것이

구원의 제사를
바치는 것이다.

3 은혜를 갚는 것이

고운 곡식 제물을

바치는 것이고

4 자선을 베푸는 것이

찬미의 제사를 바치는 것이다.

5 악을 멀리하는 것이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고

불의를 멀리하는 것이

속죄하는 것이다.
6 주님 앞에 빈손으로

나타나지 마라.

 7 사실 이 모든 것은

 계명에 따른 것이다.

 8 의로운 이의 제물은

제단을 기름지게 하고

그 향기가 지극히

높으신 분께 올라간다.

 9 의로운 사람의 제사는

 받아들여지고 그 기억은

 잊히지 않으리라.

10 기꺼운 마음으로

주님께 영광을 드리고

네 손의 첫 열매를

바치는 데에 인색하지 마라.

11 제물을 바칠 때는 언제나

즐거운 얼굴을 하고 십일조를

기쁘게 봉헌하여라.

12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네게 주신 대로 바치고

기꺼운 마음으로

 능력껏 바쳐라.
13 주님께서는 갚아 주시는

분이시기에 일곱 배로

너에게 갚아 주시리라.

14 그분에게

뇌물을 바치지 마라.

받아 주지 않으신다.

15 불의한 제사에

기대를 갖지 마라.

주님께서는 심판자이시고

차별 대우를 하지 않으신다.

복음 마르 10,28-31

28 그때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29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30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31 그런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역시 집이 좋은 것 같습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니 어떤 분이

이렇게 말씀하시네요.

“신부님도 이제 늙었나 봐요.”

 하긴 이번 순례 때에는

조금 힘들었습니다.

하루에 12,000번 보 이상을

걷는 것이 쉽지만은

아닌 것입니다.

괜히 피곤했고 그러다보니

 순례를 마치고 숙소에 돌아오면

곧바로 꿈나라에

빠지기 일쑤였습니다.

여기에 시차 적응으로 인해

새벽 2~3시면 저절로 깨어나니

 더욱 더 힘들었지요.

그래서 다짐한 것 하나는 돌아가면

열심히 운동하자는 것입니다.
문득 예전에 수영을

 배울 때가 생각납니다.

사실 여러 가지 운동이 있었지만,

 수영이 가장 몸매를 멋지게

만들어준다는 사람들의

추천에 솔깃했던 것이지요.

 실제로 수영선수들의

몸이 얼마나 멋집니까?

 열심히 수영을 하면 매끈한

몸매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수영을 선택했습니다.

1년 넘게 열심히 수영을 했습니다.

그러나 제 몸은 그렇게 멋지게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날 수영강사에게

물었습니다.
“수영을 열심히 했는데도

제 몸은 그대로죠?”
수영강사는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이렇게 말해주더군요.
“화장품 열심히 바른다고

화장품 모델처럼 바뀝니까?”
근육이 형성되는 어렸을 때부터

수영을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크게 바뀌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겨우 1년 넘게

 수영한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착각 속에 빠졌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 안에서도 이런

 착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바뀔 수가 없는데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착각입니다.

신앙 안에서도 그런 모습을 많이

가지고 있는 우리입니다.

 단순히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봉사활동을 했으니까

자신이 생각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착각입니다.

이 착각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요?

하느님의 뜻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내 뜻만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는 예수님께 말합니다.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으니

그에 걸 맞는 은총을 받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은총이라는 것이

우리의 뜻과는 많이 다르다고 하십니다.

즉, 현세에서 많은 재물을 얻고

 높은 지위를 얻는다고 하지 않고,

 죽음의 위협이 동반하는

박해를 받는다고 하십니다.

주님을 따르는 것은 이 세상에서의

부귀영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하느님 나라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길이었습니다.

 이 길을 향해 걷기를 바라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뜻입니다.
이제 더 이상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대신 하느님 뜻에 집중해야 합니다.

 지금 내게 다가오는 결과만을

바라보고 실망하거나 좌절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 집중하면
그만큼 내 자신이 변화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의 끝에

하느님께서 주시는 가장 큰 선물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어제는 부도난 수표다.

 내일은 약속어음이다.

오늘이야말로 유일한 현금이다.

 현명하게 사용하라.

(케이 리온스)

(성지순례 중에 찍은 사진이랍니다)


소확행

소확행이라는 말이 유행입니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뜻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

‘랑겔한스 섬의 오후’에서

처음 등장하는 말입니다.
기존에는 행복을 먼 미래에나.

도달할 수 있는 큰 목표의

성취 이후에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소확행은 지금 현재

 삶 속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난 행복.

행복은 원래 이런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내 자신의 소확행은

 무엇인지를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차 마시기, 잠자기, 운동하기,

애완동물과 놀기, 산책하기,

 독서하기 등등.... 너무 많은

소확행에 휩싸여 있는 우리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행복의 개념을

잘못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행복을 소유의 개념이 아니라

감상의 개념으로 봐야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는 부자들이나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비교해도 별 차이가 없습니다.
틱낫한 스님은 말합니다.
“많은 사람은 기분 좋게 흥분된

상태를 행복이라고 여깁니다.

 하지만 흥분된 상태 안에는

 평화로움이 없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평화로움에

기반을 둡니다.”

(성지순례 찍은 또 한 장)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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