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돌아가셨어도 바쁘신 그분
작성자이순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9-03-05 조회수1,905 추천수4 반대(0) 신고

 

 

김수환 추기경님 선종 10주기를 하루 앞두고 성모병원 미사에 갔다가 신부님의 권유로 장기기증 신청서에 사인을 했습니다. 오랫동안 미루던 일이라 그런지 뭔가 묵직했던 마음이 날개를 단 듯 가벼웠습니다. 그 때 문득 각막이식을 하신 추기경님이 떠올랐습니다. 만약 나도 이 병원에서 죽게 되면 추기경님과 똑 같은 절차를 밟아, 누군가에게 빛을 나누어 주게 된다는 기쁨 때문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리고 매일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 중에 바쳤던, 천상에서 추기경님께서 교회를 위해 하시는 기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확신이, 나를 한 컷 들뜨게 하기도 한지 모릅니다.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는 추기경님을 추모하는 다양한 행사가 그 걸 뒷받침 해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편 추기경님은 죽어서나 살아서나 참 바쁘신 분이구나 하는 생각에 연꽃 같은 미소가 온몸으로 번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눈을 뜨니 저에게도 의식에 변화가 생긴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인공수액을 눈에 넣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주어야 할 눈이기에 잘 관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바로 행동으로 옮겨 진 것입니다. 여러 장기가 붙어 있는 가슴도 한번 쓸어내리고, 그리고 혼자 피식 웃었습니다. 이제야 그리스도적 부활의 초입에 내가 발을 들여 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계면쩍음에서 나온 웃음일 것입니다.

 

 순간 혼자 웃을 수 있는 이런 기쁨이 내공에 쌓이면 바오로 사도가 권고하신 ‘항상 기뻐하라’가 가능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옥에서 기뻐하라! 항상 기뻐하라! 하라고 외치신 바오로 사도의 기쁨과는 비교도 안 됩니다. 그러나 이런 나눔을 통해 복음의 텃밭 한 귀퉁이를 차지 한 듯한 충만함은 얼마나 귀한 영적수확인가 싶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이런 영향력을 우리에게 미치시고 계신 분입니다. 자칭 바보라고 하신 분이.

 

 우리에게 어떤 어려움이 닥쳐올지라도 날마다 복음의 길을 받아드리는 것이 성덕, 곧 거룩함이라고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가르치고 계십니다. 모두 살기가 너무 어렵다는 요즘입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물질적인 것에 너무 마음을 빼앗기면 삶이 피폐해집니다. 그러기에 이런 때 일수록 각자 자기에 맞는, 자기가 당장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복음 한 구절로 시선을 돌리는 것이 일상에서 천국을 맛보게 되는 지름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믿음으로 하느님께 의탁하다보면 어쩌면 현실 문제도 앞당겨 해결 할 수 있는 길이 열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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