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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박기석 신부님 /성경 해석에 관한 기본적 지식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9-03-06 조회수2,806 추천수2 반대(0) 신고

박기석 신부 / 성경 해석에 관한 기본적 지식 


 

 


오늘은 성경 해석에 관한 기본적 지식을 배워보는 시간으로 여러분과 함께 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현재 읽고 묵상하고 있는 신약 성경의 글들은 사실 원본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복음서 원저자가 쓴 본문들이나 바오로 사도가 직접 쓴 서간들의 원본 그 자체가 아니라, 여러 개의 사본들만이 전해지고 있지요. 하지만 고대 그리스나 로마의 위대한 저술가들의 작품일 경우 아무리 빨라도 중세 이전에 만들어진 사본들이 거의 없는데 반해 신약 성경의 경우 수천 개의 수사본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것들 중에 어떤 것들은 매우 오래된 것들이 있지요. 그러한 수사본들은 파피루스나 양피지 위에 쓰여졌습니다. 파피루스는 나일 강의 삼각주 지역에서 자라나는 다년생 식물인데 고대인들은 그리스어로 파피루스 그리고 비블로스라고 하는데, 사실 이 비블로스라는 말에서 영어 바이블(Bible), 성경이 유래가 되었던 거죠. 


바로 파피루스나 비블로스로 알려진 삼각형 모양의 줄기를 얇게 잘라 이어 붙여서 그게 글을 쓸 수 있는 종이를 만들었죠. 왕골 종이로도 불리는 파피루스는 기원전 4세기부터 기원후 4세기까지 지중해 연안에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바로 그 파피루스에 성경을 베껴 쓴 거죠. 맨 처음 저자가 쓴 것을 후대에 다른 이들이 베껴 옮겨 적게 돼서 우리들에게 전해진 것입니다. 


성경은 원래 원본이라는 거가 없이 여러 개의 성서 사본들이 낱권으로 전해져 오던 것을 교회가 신앙과 실천 규범으로 인정될 만한 책들이라고 의견을 모아 교회의 성경으로 공표한 책입니다. 기원후 313년 로마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밀라노 칙령으로 그리스도교를 공인합니다. 종교의 자유가 선언된 거죠. 


이후 초기 교회는 급성장합니다. 그러면서 또한 문제점도 나타나기 시작하지요. 지역 교회들이 로마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움직임 또 교회를 앞세워 독립을 꾀하려고 하는 민족주의도 등장합니다. 그래서 보편 교회를 하나로 묶는 일이 시급했어요. 거기의 기준은 성경이 될 수밖에 없었지요. 이렇게 해서 경전에 대한 정리 작업이 본 궤도에 오르게 되는데 성경 목록을 작성하는데 있어서 동·서 교회는 갈등을 겪게 됩니다. 


로마 중심의 서방 교회는 히브리어 성경의 희랍어 번역본인 70인역 성경을 전부 성경, 경전으로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동방 교회는 달랐어요. 유다교 경전인 타나크를 전부 성경으로 인정했습니다. 동방 교회 주장을 대표하는 사람이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아타나시오였지요. 그는 이 과정에서 처음으로 정경이라고 하는, 까논이라고 하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습니다.


까논, 성경은 희랍어 카논인데 이 뜻은 갈대를 가리키는 단어이고 또한 자, 척도, 기준 이런 의미를 지니고 있어요. 고대 희랍에서는 갈대를 자로 사용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로마 교회는 70인역 성경의 전통을 재확인합니다. 이렇게 해서 교황 다마소 1세는 70인역 성경을 라틴어로 새롭게 번역을 하게 되지요. 바로 성 예로니모 성인이 번역한 불가타 성경입니다. 구약은 유다교 히브리어 성경 타나크에서 직접 번역을 했고요 신약은 바로 70인역을 자료로 삼았습니다. 


이후 서방교회는 제2차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다시 한 번 70인역 전체를 정경으로 확인하게 되지요. 하지만 동방 교회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초기 교회에는 주님을 직접 뵙고 말씀을 들었던 이들이 많았습니다. 이들의 증언으로 교우가 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즉 예수님에 대한 기록에 대한 필요성을 많이 느끼지 않았다는 얘기지요. 어느 누구도 보존을 목적으로 글 쓸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1세기가 지나고 사도 시대가 끝나자 숱한 이단들이 출연하게 돼요. 저자도 알 수 없고 또 내용도 조잡한 책들, 위경, 외경 등이 나오게 된 거죠. 이렇게 해서 신약의 정경 작업이 필요로 했던 것입니다. 신약 성경은 복음서와 사도행전 그리고 편지와 예언서로 나눌 수 있는데 편지의 경우 교회나 개인에게 전달되었고 지역 교회에서 읽혀졌습니다. 그리고 일정 기간 후 사본들이 모아져 책들로 엮어졌지요. 


"여러분이 이 편지를 읽고 난 뒤에 라오디케이아 교회에서도 읽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라오디케이아에서 가는 편지를 여러분도 읽으십시오."(콜로 4,16)


그래서 신약 성경 21권의 목록 역시 알렉산드리아의 주교였던 아타나시오가 처음으로 마련했던 것입니다. 기원후 367년 자신의 교구 여러 교회에 부활 서신을 보내면서 오늘의 신약 성경 27권과 동일한 목록을 제시했던 것입니다. 결국 기원후 397년 제3차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신약 성경 정경을 최종 확정 짓게 된 것이지요. 


여기서 정경으로 인정하는 기준이 무엇인가?


첫째, 사도성입니다. 사도들로부터 유래된 것이어야만 하고 교리의 확실한 출처와 그 순수성이 보증된다라고 보았지요. 그리고 둘째 원칙은 보편성입니다. 중대한 문제에 대해 교회 전체가 오류에 빠질 수 없다라는 것, 그것을 믿었던 거예요. 셋째는 영감성입니다. 교회가 신약 성경의 영감성을 주장하는 근거는 교회 안에 계시는 성령의 힘으로 정승된 문헌의 영감 여부를 직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성경은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가 하느님의 계시로 받아들인 책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정경으로 확립된 이후 삶의 지침으로 자리잡게 된 성경은 교회와 대중들의 주된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 성경을 읽고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대한 방법론이 대두되기 시작하죠. 또한 발전하게 됩니다. 


우선 초세기에는 다음의 두 가지 방법론이 유행을 해요. 우선 안티오키아 학파는 성경 해석 방법에서 특히 역사적 의미와 문자적 의미를 중시하였고 이와 달리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성경의 알레고리적, 도덕적, 신비적 의미를 강조하여 성경의 깊고 감추어진 의미를 찾는 데에 몰두하였습니다. 


여기서 알레고리적 방법 즉, 우의적 해석은 분명한 증거 없이 은유적으로 설명해서 진리에 접근하는 방식이지요. 여기서 더욱 발전된 형태가 바로 예형론입니다. 즉, 어떤 일정한 타입을 예로 선정해서 설명하는 방법으로 교부들의 주된 해석 방법이죠. 그후 중세 시대에는 교도권에 의해서만 해석이 이루어집니다. 인쇄술이 아직은 발달하지 않아서 대중들이 성경을 직접 대할 수가 없었지요. 따라서 사제들에게만 유보된 해석은 때때로 주관적 해석으로 전락될 위험성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근대에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대중들이 성경책을 가까이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고 그러면서 점점 비평적 관점에서 성경을 보고자 하는 그런 조짐이 등장합니다. 다시 말해서 이성주의가 발달한 것이지요. 물론 여기에는 16세기 마르틴 루터를 중심으로한 종교 개혁과 더불어서 교도권에서 독립한 독자적인 성경 해석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더욱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여기에 이제 17세기 후반 과학 혁명과 18세기 후반의 계몽주의, 합리주의가 확산되면서 그 영향이 종교까지 미치게 되는 거예요. 종교계는 성경에 대한 새로운 학문적 발전과 해석을 기대하면서도 은근히 이제 걱정하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새로운 성경 해석이 신앙 자체를 위협하는 그런 도전이 되지 않을까 염려하기 시작한 거죠. 결국 성경 연구에도 19세기 이후 다른 과학 분야처럼 하느님의 선물인 이성을 활용해서 성경을 분석하는 방법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렇게 시작된 성경 비평은 이성을 활용해서 성경 본문을 탐구해 들어가는 학문적 자세를 가리킵니다. 달리 말해서 성경의 내용을 올바로 이해하고 성경에 담긴 지혜와 의미를 좀 더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 만든 학문 연구 방법이지요. 바로 이것을 역사 비평적 방법이라고 합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전반에 널리 알려진 성경 연구 방법이예요. 성경의 시대 배경, 저자, 제작 장소, 편집 과정 이런 것들을 성경 본문의 역사에 대해 합리적이고 검증 가능한 그런 내용을 밝혀 내려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오늘날의 독자들이 성경이라는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성경 저자들의 세계 곧, 그들의 문화와 언어를 비롯해서 성경의 내용을 기록하게 된 배경와 그 의도를 살펴 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오랜 구전 전승,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또 입에서 전해지던 것이 단절될 위험이 생기자 글로 바꾸는. 그래서 문서 전승, 기록 전승의 과정을 거쳐서 우리에게 오늘 전해진 겁니다. 그 안에 다양한 문화적, 역사적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지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전반까지 활발히 이루어진 이런 역사 비평 방법으로 본문 비평, 전승비평, 양식비평, 편집 비평 등이 있습니다. 이 시간 다 설명할 수는 없어요. 간단하게 본문 비평은, 성경 원문이 존재하지 않고 또 여러 형태의 사본만 우리에게 전해지기 때문에 현존하는 서로 다른 사본을 서로 비교해서 가상적 원천을 재구성하는 편집 작업을 바로 본문 비평이라고 하겠습니다. 

 

전승 비평은, 우리에게 입으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온 글로 기록되기 전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던 구전 전승이 다음 세대로 전달되어 가는 역사를 연구하는 방법으로 본문에 나타난 전승의 형성과 보전 또 전달 과정에 관심을 가지고 그 발전 단계를 추적해서 본문이 작성되기 전의 사회 모습까지 재구성하는 작업을 전승 비평이라고 하겠습니다. 

 

양식 비평이라는 것은, 성경 본문이 속한 문학적 표현 양식에 관심을 갖는 것, 그래서 그 문학 양식을 형성한 공동체의 삶의 자리, 이건 굉장히 중요한 표현입니다. 신학적 용어로 삶의 자리, 이 본문이 형성되어 있던 삶의 자리를 이해해서 그 양식의 의도와 내용을 밝혀내는 것이죠. 

 

편집 비평은 성경 편집자가 전해진 원천을 어떻게 사용해서 본문을 구성했는가를 연구해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전승을 편집할 때 편집자가 고유의 의도와 사상, 그 신학적 관심사가 반영되었기 때문에 이런 작업을 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이런 역사 비평 방법은 성경 뒤의 세계 즉, 성경이 형성되기까지의 역사에 초점을 두는 방법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제 성경 본문을 깊이 이해하려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문학 텍스트, 책으로서의 성경 자체 즉, 성경 속의 세계, 앞의 역사 비평론이 성서 뒤의 세계라면 그 작업이 성경이 나오기까지 뒤의 세계를 이야기한다면 이제 본문 안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는 거죠. 성경 속 세계로 푹  빠져 들어가야만 한다라고 하는 방법론이 또 대두 돼요. 왜냐하면 성경 저자들이 복음서를 기록할 때에 그 이야기를 듣는 독자들이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일정한 문학 양식과 언어 법칙을 취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원저자의 본래 의도가 무엇이든 일단 문학 작품이 완성되어 출판되면 그 글은 원자자와 별도로 독자성을 갖기 때문에 작품의 진정한 의미는 오로지 그 작품 속에서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죠. 이런 성경 해석 방법론은 1960년대 이후 그리고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198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또 다른 성경 해석 방법이 있어요. 바로 성경 앞의 세계를 얘기합니다. 성경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지금 나에게 의미를 가지려면 성경 작가와는 전혀 다른 문화적, 사회적, 역사적 상황에 놓여 있는 나 또는 우리 즉, 독자의 세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1980년대 이후 성서학계에서는 탈근대주의, 포스트모던이즘이라고 하죠. 탈근대주의 영향을 받아 성경 본문의 의미를 찾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성경을 지금 읽고 있는, 해석하고 있는 독자, 나, 우리, 지금의 나라고 말하는 학자들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자, 이렇게 현대에는 다양한 성경 연구 방법론들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데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성경을 읽을 때 이 모든 요소를 고려해서 입체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거죠. 성경 저자와 성경 본문  또 성경을 읽는 독자가 서로 공감을 하고 또 서로 이해 지평을 맞춰 갈 때에야, 그래야 공간과 시간과의 차이를 넘어서 정확한 해석을 할 수 있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성경 본문의 저자는 역사적 특성과 문학적 특성 그리고 신학적 특성에서 성경 본문의 읽기 방법론이 요구된다라고 하겠지요. 

 

첫째, 성경의 역사적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서 역사 비평적 방법론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 방법론은 말씀드린 대로 성경을 당시의 역사적 상황 안에서 해석하고 또 최종 본문 이전의 전승과 편집의 역사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통시적, 그러니까 아주 쉽게 얘기하면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통시적 방법론이라 하겠습니다. 

 

둘째, 성경의 문학적 특성, 이 문학적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문학 비평적 방법론이 필요한 것이지요. 이 방법론은 전승과 편집의 과정을 거쳐 오늘날 우리가 읽고 있는 최종 본문에 이른 이 성경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문학적 특성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공시적 특성, 이 공시적 특성을 좀 더 쉬운 말로 하면, 같은 시대에 반영되는 그런 방법론이라 하겠습니다. 

 

세 번째로 바로 복음서가 지니고 있는 신학적 메시지를 파악하는 신학적 해석학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본문의 신학적 메시지가 성경이 쓰일 당시에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이것을 다시 한 번 묻게 되는 거죠. 다시 말해서 신학적 해석학은 성경의 메시지를 독자의 현실에 적용하는 것이고 본문의 의미를 나의 것, 자기 것으로 하는 것. 이것이 소위 말하는 현재화, 신앙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어떤 성경 학자 신부님은 이것을 '자기 것으로 하기'라는 표현을 쓰시더라고요. 

 

자, 성경 해석을 위한 방법론의 측면에서 보면, 역사 비평 또 문학 비평은 서로 떨어져 있는 독립적인 게 아니라, 배타적인 관계가 아니라 상호 보완적 관계라고 하는 것. 이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 본몬의 다양한 특성을 잘 파악하기 위해 역사 비평과 또 문학 비평을 종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역시 비평적 방법론도 성경의 문학적 특성을 고려하는 반면에 성경 본문의 문학적 측면을 강조하는 방법론들도 역사적이고 신학적인 측면에 촛점을 맞추어 봄으로써 서로 다른 방법론들과 대화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역시 비평과 또 문학 비평의 주석 방법론을 통해서 성경 본문의 의미를 파악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 본문의 의미를 자기 것으로 하기. 바로 이 과정에서 신학적 해석학이 완성되는 것이죠. 

 

따라서 성경 본문의 특성에서 출발한 성경 해석 방법론을 표현하는 주제어는 역사(Hister), 문학 (Literature), 그리고 신학 (Theology) 이 되겠습니다. 

 

이렇게 성경 본문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주석의 방법론 즉, 학문적 성경 읽기 이 방법론이 필수적이라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경에 대한 학문적 읽기 그것만 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거기에 바로 신앙적 읽기가 항상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을 여기서 깨달아야 하는 것이죠. 물론 성경 본문의 의미는 객관적인 읽기 방법론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방법에 의해서 파악이 먼저 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즉, 우리는 역사 비평과 문학 비평의 의미를 다 파악해 봐야 한다라는 거예요. 하지만 이것이 성경 해석학의 끝이 아니라는 것. 

 

성경 본문에 대한 신학적 해석학의 과제는 성경 본문의 의미를 말씀드린 대로 자기 것으로 하는 것, 거기서 완성되는 것이죠. 이것은 본문의 의미를 독자의 신앙적 실존과 관련성 안에서 해석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학문적 성경 읽기와 신앙적 성경 읽기 사이의 만남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학문적 읽기는, 신앙적 읽기가 자의적 해석이 되지 않고, 본문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도록 도움을 줍니다. 그리고 신앙적 읽기는 학문적 읽기가 신앙과 교회 공동체와의 관련성을 잃지 않도록 방향성을 제시해 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한쪽으로 극단적으로 치우치는 것을 막고 보완해 주는 겁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학문적 읽기와 신앙적 읽기가 가능한,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는 고유한 방법, 교회의 오랜 역사 안에서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 낸 게 아니라 예전부터 있어 왔던 거룩한 독서라는 방법론을 다시 한 번 살펴봐야 합니다.

 

 

이 전통적인 거룩한 독서와의 만남 가능성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죠. 말씀드린 대로 거룩한 독서는 가톨릭 교회의 수도 전통에 뿌리 박혀 있는 성경 독서의 방밥으로 읽기, 묵상, 기도, 관상의 네 가지 단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21세기에 들어와 2005년 9월 16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인 '계시 헌장' 반포 40주년을 기념하면서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 현대 교회의 영적 성장을 위해 거룩한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어요. 

 

2010년 교황 권고 '주님의 말씀 86-87항을 통해 교황님은 재차 확인하고 계십니다. 교황님께서는 어느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어짐 없이 그동안 역사 비평적 방법론에 기울어지다 보니 신학적 해석학, 신앙화 작업, 자기 것으로 하기 위해서 이성적이고 객관적으로 성경 본문을 읽고 이해하려는 역사 비평론과 함께 이 신앙적이고 실존적으로 말씀을 만나려는 거룩한 독서가 서로 대립되지 않고 상호 보완적인 관계 안에서 필요하다. 이것을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달리 말해서 거룩한 독서를 통해 성경 본문이 단지 머리로만, 이성적 이해로 만이 아니라, 그런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초월적 지평의 열림을 통해 우리 마음으로 또 저자의 의도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의도, 이 성경이 하느님께로부터 왔다는, 하느님이 정말 이 말씀을 통해 무엇을 말씀하시려는지를 깨닫게 해 주는,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 접근할 수 있는 방법론으로 더불어 가야 된다라고 강조하셨던 겁니다. 

 

그래서 성경 연구 방법론을 통해 지나치게 단순화된 자구적 이해의 결과물로 나타날 수 있는 독선적이거나 근본주의적 해석으로부터 교회를 보호할 수 있음을 교황님은 강조하셨던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황 권고 주님의 말씀」 86-87항을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는 기도하며 성경에 다가가는 것이 서로 다른 직무와 생활 신분을 지닌 모든 신자의 영성 생활의 근본 요소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하였고, 특히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 를 언급하였습니다. 실상 하느님의 말씀은 모든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영성의 기초입니다." (「주님의 말씀」86항)

 

 

"거룩한 독서는(Lectio Divina) 는 본문을 읽는 것(lectio)으로 시작되고, 그것은 그 의미를 참으로 이해하려는 질문을 불러 일으킵니다. '이 성경 본문은 그 자체로서 무엇을 말하는가?' 이 순간이 없다면, 본문은 우리 자신의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한 구실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맙니다. 

 

다음으로는 묵상(meditatio)이 뒤따르는데, 여기에서는 '성경 본문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를 묻습니다. 여기에서는 각자가 개인적으로, 그러나 공동체적으로 움직여지고 의문에 부쳐져야 합니다. 이것은 과거에 발설된 말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말씀에 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는 기도(oratio)의 순간에 이르게 되는데, 이것은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응답하여 그분께 무엇을 말씀드리는가?'라는 질문을 전제합니다. 청원, 간구, 감사, 찬미의 기도는 말씀이 우리를 변화시키는 첫 번째 방법입니다. 

 

마지막으로 거룩한 독서(Lectio Divina)는 관상 (contemplatio) 으로 끝맺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실재를 판단하는 그분의 시각을 하느님의 선물로 받고 이렇게 자문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서 정신과 마음과 삶의 어떤 회개를 요구하시는가?' 

 

사실 관상은 우리 안에 하느님의 뜻에 따라 지혜롭게 실재를 바라보는 시각을 갖게 하고 또한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마음'(1코린 12,1)을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또한 거룩한 독서(Lectio Divina)의 역동성은 행동(actio)에 이르기 전에는 아직 완결된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행동은, 신자들이 사랑으로 자신의 삶을 다른 이들을 위한 선물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87항)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성령의 은사에 관해서도 알기를 바랍니다."(1코린 12,1)

 

자, 이상의 내용을 우리가 정리해 본다면 다음과 같죠. 거룩한 독서의 첫 번재 단계인 읽기, 바로 여기에서 학문적 읽기가, 성경의 본문의 의미를 파악하는데 즉, 성경 저자, 인간 저자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는 것. 우리가 보통 성서 사도직 공부 그러면 여러분들이 성경을 읽는다. 첫 번째 단계가 이런 과정이죠. 

 

어쩌면 이 방송에서도 여러분들에게 성경 저자가 주려고 하는, 본문이 주려고 하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많이 말씀드릴 거예요. 그리고 성경 해석학의 완성의 자기 것으로 하기. 이것은 둘째 단계의 묵상을 통해서 연결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에 대한 신앙적 읽기가 되겠지요. 

 

여기서 거룩한 독서의 세 번째 단계인 기도와 네 번째 단계인 관상을 통해서 성경의 진정한 저자, 하느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려는지를 파악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들은 우리 신앙생활, 일상생활 안에서 행동으로 드러나야 돼요. 그래서 거룩한 독서의 역동은 행동을 통해 진정한 복음 선포의 완성 즉, 복음화를 통해 우리 신앙은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제가 여러분들과 함께 하는 것이 거룩한 독서에서 읽기 그리고 또 묵상을 위한 준비를 해 드리는 거라면, 이 방송 후에 여러분들이 해야 할 일들, 기도와 관상과 행동으로 드러나야 하는 것이죠. 하느님의 말씀을 잘 알아듣고 그분과 일치하는 길은 뜨거운 신앙과 말씀을 실천하는 사랑입니다. 그러기 위해 성경은 읽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사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히브 4,12)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기에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을 진심으로 읽었다면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해야 합니다. 


"사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는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갈라 5,6) 


"자녀 여러분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1요한 3,18)


http://www.cpbc.co.kr/CMS/tv/program/pro_sub.php?src=%2FCMS%2Ftv%2Fprogram%2Fview_list.php%3Fprogram_fid%3D8095%26menu_fid%3D8096&program_fid=8095&menu_fid=8096&cid=&yyyymm=


평화방송 박기석 신부의 마르코가 전한 예수 제2강 개요 2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박기석신부, 성경에 관한 기본적 지식, 마르코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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