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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마에 재를 바르면서 (재의 수요일날)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19-03-07 조회수1,239 추천수2 반대(0) 신고

 

 

재의 수요일 날 머리에 재를 바르며 신부님의 강론 말씀 중 하나의 말씀을 가지고 마치 렉시오 디비나를 하는 것처럼 생각한 게 하나 있습니다. 신부님의 강론 말씀 중에 재를 상기하게 하시면서 재는 아무 것도 아닌 존재를 상징하는 것처럼 우리도 아무 것도 아닌 존재로 인식해야 한다는 그런 내용의 강론 내용 중 일부 내용입니다. 저는 재를 보며 생각한 게 있습니다.

 

재를 보면 뭐가 떠오르는지요? 저는 우리 인간 세상에서 보통 이런 말을 많이 하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사람은 죽으면 한 줌의 흙으로 또는 한 줌의 재가 된다. 이런 말씀 말입니다. 저는 이때의 재를 한번 생각해봤습니다. 저는 제가 나중에 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제가 갈 자리를 알고 있습니다. 재작년에 어머니께서 선종하신 후에 어머니를 모시면서 부모님 묘소를 정돈하면서 저희 가족들이 앞으로 세상을 떠면 가게 될 자리를 갖추어놨습니다.

 

셋째 형이 불의의 사고로 몇 해 전에 세상을 떠났기에 어머니 묘소를 정돈하면서 형을 따로 모셨기에 그럼 대충 제 자리가 나옵니다. 그래서 제가 부모님 묘소를 갔다오면서 항상 앞으로 대충 30년 후면 나도 저기에 있겠네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합니다.

 

참 재미있는 것은 저는 세상적으로 태어난 곳과 바로 나중에 제가 세상을 떠날 때 제 육신이 갈 곳과 거의 비슷합니다. 제가 태어난 곳과 불과 200미터 정도밖에 떨어져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부분에 대해 정말 많은 생각을 해봤습니다. 하늘나라에서 범죄하여 온 영혼이 이 세상에 떨어진 장소와 또 나중에 하늘나라로 귀향할 때 제 육신이 갈 장소가 거의 비슷한 장소이기 때문에 그래서 제가 참 많이 이 부분에 대해 묵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정말 말 그대로 한 줌의 재가 되어 묻힐 곳을 바라보며 저기가 나중에 내가 갈 곳이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면 참으로 한 사람의 이 세상의 삶이 허무하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허무주의자는 아닙니다. 오래전에 저희 집에 자주 오신 스님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스님이 한 번씩 저에게 이야기해 주시는 것 중의 하나가 이런 게 있습니다. 요즘은 백세시대라고는 하지만 스님께서 인간세상의 인간을 표현할 때 사용하시는 말씀입니다.

 

백년도 못 사는 인생이 걱정은 천년만년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묻힐 곳을 보면서 스님의 말씀이 많이 생각나면서 성경 전도서가 생각났습니다.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고 인간으로서 누릴 모든 영화를 다 누려본 솔로몬이 마지막에는 모든 게 헛되고 헛되도다 라고 탄식한 내용이 떠 오르면서 정말 인간의 한세상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세상인데 하느님의 시계로 보면 하루살이 인생과 같을 것인데 이런 인생을 살면서 이런 인생이 마치 영원할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가는 인간 군상의 삶을 한번 생각해보니 참으로 얼마나 어리석은 삶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정말 이럴 때는 불교식 표현이 딱 하나 어울리는 표현이 하나 있습니다.

 

어리석은 중생이라는 표현이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이 짧은 생애를 사는 동안도 마냥 행복한 시간만 있느냐면 그렇지 않습니다. 얼마나 힘겨운 삶이 살다 보면 있습니까?

정말 누구든지 그 한 개개인의 삶 전체를 봤을 때 진정으로 행복한 시간을 따져보면 인생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얼마 되지 않을 겁니다. 이게 바로 하나의 인간의 삶이라면 정말 허무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봤을 때는 무신론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삶이 더 비참한 삶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바로 유한한 인간의 존재로 태어나 이렇게 유한한 삶으로 끝난다면 말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 아니고 비록 육신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지만 그 영혼은 죽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다음 생을 기약하는 신앙인에게는 죽음이 단순히 죽음 그자체로 끝나는 게 아니고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만약 정말 다음 생이 없다면 어떨지를 저는 생각해봤습니다. 속된 표현일 수 있지만 도그 피그 같은 삶과 같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잘 생각해보면 그냥 그 애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거의 비슷한 점이 많이 있습니다.

 

그냥 자기네들의 욕구만 충족되면 만족하는 그런 걸 보면 정말 그렇다고 생각을 합니다. 근데 우리는 그 애들이랑 다른 건 그 애들처럼 살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도그 피그가 아닐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이 지상에서 끝나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영혼이 다시 우리의 육신과 더불어 부활하리라는 부활신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냥 아무런 존재가 아닌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현명한 사람일까요? 파스칼의 도박이론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이 이론에 대해서 영세를 받고 1년쯤 되었을 때 마산가톨릭 교육관에서 말씀 피정을 했는데 그때 이 내용을 안명옥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주교님께서 둘째날 강의에서 해 주셔서 약 그때 강의를 7분 정도 해주셨는데 정말 지금까지 제가 개종후에 들은 강의나 강론 중 모든 걸 포함해서 그때 그 강의처럼 강렬하게 와 닿은 강의가 없었습니다. 제가 이날 이 강의가 너무 강렬해서 주교님께서 저희 본당에 견진성사를 집전하시러 오실 때 제가 한 번 이날 강의 원고를 부탁드렸는데 주교님께서 비서에게 당부를 하셨고 제 메일로 보내주신다고 하셨는데 워낙 바쁘신 관계로 메일이 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수학자 정도로만 알았는데 파스칼이 신부였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아무튼 주교님께서 파스칼의 도박이론을 수학적으로 표현을 하셨는데 정말 명쾌하게 설명해주셨습니다. 저는 그때 신을 믿고 안 믿고의 차이가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극명하게 알았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요 우리의 인간의 삶이 유한한데 이런 유한한 삶을 살면서 그냥 무가치한 삶으로 삶을 마감하느냐 아니면 사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지금의 삶 이후의 삶을 생각하며 사는 삶과는 정말 많은 차이가 날 거라도 봅니다.

 

그렇다면 답이 나왔습니다. 우리가 이 유한한 인간의 삶을 어떻게 사는 게 현명한 삶인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이 세상의 삶이 끝이 아니고 우리가 이 세상 다음의 삶 즉 영혼이 사는 그런 삶이 있다는 걸 알고 그런 삶을 이 세상에 살 때 그런 삶을 살기 위해 준비를 하는 사람이 이 세상을 현명하게 사는 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의 유한한 삶 다음에는 영원한 영원의 삶이 펼쳐져 있기 때문입니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정말 좋은 투자입니다.

 

투자라는 말에는 조금 이상한 어감도 있지만 제가 만약 투기라고 했으면 정말 이상한 의미가 될 수도 있지만 투자라는 말은 긍정적인 의미도 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도 자기가 하는 일에 성공을 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고 할 때는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지 않습니까? 이처럼 우리의 이런 어쩌면 찰나의 삶을 살면서 이 찰나의 삶을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영혼의 상태가 결정되게 된다면 또 그 상태가 그냥 이 세상의 삶처럼 유한한 길이의 삶으로 결정된다면 별문제일 수도 있는데 그게 아니고 그 시간이 영원무궁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때는 이미 영혼이 결정된 시간이기 때문에 되돌이킬 수 없는 시간입니다.

 

세상말로 표현하자면 이미 버스는 지나가고 그때 손들어 봐야 소용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재의 수요일을 맞아 이마에 재를 묻히면서 우리의 이 세상에서의 삶에 대한 애착을 많이 가지기보다는 그러니까 이 세상의 삶은 잠시 지나가고 스쳐지나가는 삶이라는 걸 염두에 두고 정말 우리의 영혼이 영원히 살게 되는 영혼의 세계를 위해 이 세상을 살면서 준비하는 삶을 사는 게 이 세상을 현명하게 사는 사람이지 않을까 재의 수요일을 지내면서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두서없이 그냥 생각나는 대로 적었습니다만 조금이나마 사순시기를 의미 있게 지내는데 도움이 되고 사순시기 때 이런 걸 한번 묵상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5시 19분이네요. 잠시 눈좀 부쳐야겠네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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