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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3.11)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3-11 조회수1,741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9년 3월 11일

사순 제1주간 월요일

제1독서 레위 19,1-2.11-18

1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2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에게 일러라.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나,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11 너희는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속여서는 안 된다. 동족끼리

 사기해서는 안 된다.

12 너희는 나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너희는 너희 하느님의

이름을 더럽히게 된다.

나는 주님이다.
13 너희는 이웃을

억눌러서는 안 된다.

이웃의 것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

너희는 품팔이꾼의 품삯을

다음 날 아침까지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된다.
14 너희는 귀먹은 이에게

악담해서는 안 된다.

눈먼 이 앞에 장애물을

놓아서는 안 된다.

너희는 하느님을 경외해야 한다.

나는 주님이다.
15 너희는 재판할 때 불의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

너희는 가난한 이라고

두둔해서도 안 되고,

세력 있는 이라고

우대해서도 안 된다.

너희 동족을 정의에 따라

 재판해야 한다.

16 너희는 중상하러

돌아다녀서는 안 된다.

너희 이웃의 생명을 걸고

 나서서는 안 된다.

나는 주님이다.
17 너희는 마음속으로

형제를 미워해서는 안 된다.

동족의 잘못을 서슴없이

꾸짖어야 한다.

그래야 너희가 그 사람 때문에

 죄를 짊어지지 않는다.

 18 너희는 동포에게

 앙갚음하거나 앙심을

품어서는 안 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나는 주님이다.’” 

복음 마태 25,31-4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1 “사람의 아들이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와 함께 오면,

자기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것이다.

32 그리고 모든 민족들이

사람의 아들 앞으로 모일 터인데,

그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를 것이다.

33 그렇게 하여 양들은

자기 오른쪽에, 염소들은

왼쪽에 세울 것이다.
34 그때에 임금이

 자기 오른쪽에 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35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36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37 그러면 그 의인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을 보고

먹을 것을 드렸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38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습니까?

 39 언제 주님께서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찾아가 뵈었습니까?’
40 그러면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41 그때에 임금은 왼쪽에 있는

 자들에게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42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43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이지 않았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병들었을 때와

감옥에 있을 때에

돌보아 주지 않았다.’
44 그러면 그들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시거나 목마르시거나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또 헐벗으시거나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시중들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45 그때에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46 이렇게 하여 그들은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 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

저는 지난 주 월요일에 이태리

성지순례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사제관에 돌아와서

저의 짐을 푸는 순간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짐의 양이 너무나 많은 것입니다.

13일간의 일정이니 짐이

많을 수도 있겠다 싶겠지만,

처음에는 그렇게 많은 짐을

가지고 가지 않았습니다.

옷의 양도 줄이려고 했고,

 속옷도 일회용으로 가져가면서

짐의 양을 줄였습니다.

 또한 진공 팩을 이용해서

부피까지도 줄이려고 노력했습니다.

단지 사진을 잘 좀 찍어보려고

하다 보니 렌즈의

숫자가 늘어났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짐이 그렇게 무겁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 정도면 별 무리 없이

충분히 들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방의 무게가

저의 어깨를 누르더군요.

 결국 카메라 렌즈의 대부분은

큰 가방 안에 들어갔고,

 무거운 카메라보다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무겁지 않다고 생각했던 짐은

 세상에서 제일 무겁고

제일 귀찮았습니다.

 그래서 여행을 가게 될 때

제일 중요한 것이

짐을 꾸리는 것이라고

여행 전문가들은 말하지요.

 한두 번 사용할 물건들을

가방에 채우다보면 너무 많은

 짐의 크기를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없어도 되는 것들을

제외시켜 나가다보면 짐 때문에

여행 자체가 힘들어지는 어리석은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식으로 줄여나가면

괴나리봇짐 정도의 양만

있어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실제로 예전에 자전거 여행을

할 때에 짐이 너무나 무거워서

이틀째에 모든 짐을 상자에

 담아서 집으로 택배를 보낸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나머지 일주일을

 아주 자그마한 짐만으로도

여유 있게 생활했습니다.
지금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요?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데 있어서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너무 많은 짐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내 자신의 욕심과 이기심이

주님을 따르는 길보다

더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랑의 대상이 되는

나의 이웃들을 바라보지

못하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길에는

주님을 어떻게

 받아들였느냐가 중요한데,

그 핵심은 바로 가장 작은이들을

향한 사랑 실천이었습니다.

이 사랑 실천이 과연 내 욕심과

이기심이 가득한 곳에서

가능할까요?

아니었습니다.

욕심과 이기심으로 가득 찬

짐들을 줄여나가야만 가능합니다.

대신 내 마음 안에 사랑과 평화,

기쁨 등을 가득 채워야 합니다.
내 자신이 짊어진 짐을

잘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욕심과 이기심으로 만들어진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들이면

분명히 얼마 못가서 무거워

견딜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주님께 대한 사랑으로

 만들어진 짐이라면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까지도 기쁘고 힘차게

걸어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멍에는 편하고

주님의 짐은 가볍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사람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유일한 경로는 사랑이다.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음을 확신할 때

우리는 어지간히 고단한

삶 속에서도 행복하다.

(김규항)

(여행은 새로움을 발견하게 합니다)


자존감

중학교 때의

친구 한 명이 생각납니다.
이 친구는 늘 꼬질꼬질한

옷을 입고 다녔고,

약간 지저분한 행동들을

 거리낌 없이 했습니다.

이런 모습에 친구들은

 약간씩 거리를 두기 시작했고,

그러다보니 늘 혼자였습니다.
어느 날 이 친구와

단 둘이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물었지요.
“아이들이 너 따돌리는 것

같은데 괜찮아?”
이 친구가 따돌리는

이유를 말해주고,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물

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괜찮아. 나도 따돌리면 되니까.”
무엇이 옳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다른 이의 말과 행동에

흔들리지 않는 이 친구의 모습은

 정말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지금도 듭니다.
자존감 높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다른 이들로 인해서 내 행복이

깨질 수 있다는 사실은

너무 억울하지 않습니까?

(이태리의 바닷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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