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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3.12)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3-12 조회수1,798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9년 3월 12일

사순 제1주간 화요일

제1독서 이사 55,10-11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0 “비와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그리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싹이 돋아나게 하여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준다.

11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

복음 마태 6,7-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7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8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10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11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12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13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14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15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사람들이 혐오하는 동물이

꽤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아마

 ‘쥐’가 아닐까 싶습니다.

 도시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지만,

 제가 갑곶성지를 개발하기 위해

처음 부임해서 왔을 때에만 해도

쥐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미사를 하고 있는데 쥐가 갑자기

나타나서 아주 난리가 났었던

기억도 납니다.

그래서 이 쥐를 없애기 위해서

참 많은 방법을 동원했습니다.

동물도 키우고, 쥐덫도 놓았고,

몽둥이를 들고 쥐를 쫓기도 했습니다.

저를 무는 것도 아니지만 병균을

 옮긴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쥐를

박멸하기 위해 노력했었지요.
1800년대 중반에 베트남이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고 있을 때,

하노이에 있던 프랑스의 식민지

사령부에서도 저와 같은 고민에

빠졌었나봅니다.

베트남에 너무 많은 쥐가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한 가지 법령을 제정했습니다.

죽은 쥐를 한 마리 잡아서 넘길 때마다

그 대가로 돈을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너무나 많이 돌아다니는

쥐들을 퇴치하려고 했었지요.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들의 예상과 달리 오히려 쥐의

개체수가 훨씬 더 늘어난 것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 사람들은

이제 쥐를 사육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는 역사 안에서

자주 있었습니다.

1947년 지중해 사해 지역에서

고대 두루마기 문헌이 발견되자

 고고학자들은 새로운 양피지를

발견해서 가져올 때마다 비용을

지불하겠다고 공시했습니다.

결과는 어떠했을까요?

사람들은 개수를 늘리기 위해

멀쩡한 양피지를 찢어서

가져왔다고 합니다.
사람들의 생각은 참으로

뛰어납니다.

그러나 편법이고 옳지 않은 길로

 나아갈 때가 많습니다.

순간적인 이익에만

 몰두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생각은 이렇지 않습니다.

진리의 길이고 옳은 길입니다.

그런데 순간적이고 자극적인

 이익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를 보면 순간적인 이익에

몰두했던 것이 아닐까요?
주님께서는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라고 말씀하시면서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주십니다.

 이 기도에는 결코 우리의 욕심과

이기심을 청하는 내용이 없습니다.

그 보다는 하느님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하느님 나라가 오기를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바라는 것을

하느님께 청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기꺼이 주시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성인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어떤 사실을

알려 드리거나 하느님께

 가르쳐 드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온 마음을 다해 청하기 위해,

느님과 친밀해지기 위해,

겸손해지고 우리의 죄를

깨닫기 위해 기도해야 한다.”
지금 내 자신이 바치는 기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묵상해 보는

오늘이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세상에는 일곱 가지 죄가 있다.

노력 없는 부,

양심 없는 쾌락,

인격 없는 지식,

도덕성 없는 상업,

인성 없는 과학,

희생 없는 기도,

원칙 없는 정치가 그것이다.

(마하트마 간디)

(주님께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행복

행복해지고 싶은데

 아무리 해도 행복하지 않다고

고백하는 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행복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

보았다고 하십니다.

그런데도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무리 해도 행복하지 않다면

지금 내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먼저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평소에 반복해서 하는

 일들을 다르게 해 봅니다.
음식도 새로운 것을 먹어보고,

음악도 내가 잘 듣지 않던

것들을 들어보고,

책도 안 보던 장르를

시도해 보는 것입니다.

가구의 위치도 바꿔보고,

예쁜 꽃도 사 봅니다.

성당에 가서 기도하는 방법도

바꿔 봅니다.
뇌 과학자들이

이렇게 말해주더군요.
“우리 뇌는 변화에 민감해서

 긍정적인 새로움을

경험할 때 행복해합니다.”
어떻습니까?

긍정적인 새로움을 찾아서

 경험해보십시오.

분명히 행복한 일들이

계속 주어질 것입니다

(갑곶성지에서 새 신부님들의

첫 미사와 안수가 있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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