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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핑계대면 자신을 절대 볼 수 없다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9-03-12 조회수2,987 추천수9 반대(0) 신고

 

 

 

2019년 다해 사순 제1주간 수요일

 

 

 

     

<핑계대면 자신을 절대 볼 수 없다>

  

 

복음: 루카 11,29-32

 
 

 


성모자


부티노네(Butinone) 작, (1490),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종일 토끼 사냥을 하던 사냥꾼이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빈손으로 산을 내려 왔습니다.

왜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까?”

말도 마십시오. 토끼란 녀석은 귀가 얼마나 예민한지 가랑잎 소리만 나면 벌써 도망을 갑니다. 촉각은 얼마나 발달되었는지 조그마한 발자국 진동에도 적을 알아차립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토끼는 앞다리가 짧고 뒷다리가 길어 언덕을 오르는데 명수입니다. 도무지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그때 마을의 현자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자신이 토끼를 못 잡는데 대한 논리와 철학으로 그런 상황에서도 토끼를 잡는 다른 사람들을 분석해봄이 어떨까요?”

 

 

핑계는 자신의 잘못을 가리는 눈가리개입니다. 핑계는 자신이 저지르는 실수를 지속하기 위한 자기합리화 수단입니다. 자신을 합리화하면 자신의 잘못을 볼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해야합니다. 그래야 교정을 할 수 있고 발전할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잘못을 저지르고 가장 먼저 했던 행위는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라고 말하는 핑계였습니다. 이 핑계는 앞으로 이런 상황이면 또 그러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핑계를 대는 것은 우리 인간의 본성입니다. 제가 군대 있을 때 큰 차량사고를 내고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였습니다. 만약 그 생각을 따랐다면 뺑소니가 되었을 것입니다. 혹은 약속에 늦었을 때 언제나 핑계를 대었습니다. 다음부터는 절대 늦지 않겠다는 결심과 함께 그 상황만 모면하려고 핑계를 댄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핑계를 대는 이상 약속시간에 늦는 습관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나의 변화는 핑계를 멈출 때 시작됩니다. 운전하며 교만해져 전방주시를 소홀히 했기 때문에 사고가 난 것이고, 상대에 대한 존중하는 마음이 부족하여 약속시간에 늦게 나갔던 것입니다. 핑계 없이 자신의 현실과 직시하게 되어야 반성하고 발전하게 됩니다.

 

 

핑계 대는 습관은 어렸을 때부터 형성됩니다. 부모가 핑계를 대면 자녀들은 그 모습을 보고 자신도 그런 방식으로 위기를 모면하려합니다. 따라서 어렸을 때부터 핑계를 대지 않는 습관을 키워주는 것이 좋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부모가 핑계를 대지 않는 것입니다. 누구 때문에 그랬다느니, 상황이 그래서 그랬다느니 등의 말투는 자신의 자녀들도 그런 식으로 핑계를 대는 인생을 살게 만듭니다.

 

 

핑계는 이 세상에서도 패배자로 만들지만, 더 나아가 하느님도 믿지 않게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핑계를 대는 이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반면 핑계를 안 대는 이들은 같은 상황에서 예수님을 믿습니다.

 

핑계 대는 이들은 표징을 청합니다. 표징이 너무 약해서 못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엄청난 표징을 청합니다. 웬만한 기적으로는 자신들을 설득시키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 밤낮을 머물다 나온 것을 본 니네베 사람들이 회개한 사실을 예로 드시며 요나보다 더 큰 예언자가 있는데도 믿지 못하는 그들을 나무라십니다. 또 아무런 표징도 없었지만 솔로몬의 지혜를 배우기 위해 아주 멀리서 그를 찾아왔던 남방여왕도 예로 드십니다. 핑계대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핑계는 굉장히 논리적인 사고 같지만 실제로 자기 꾀에 자기가 빠지게 만듭니다. 부모는 자녀가 자신이 부모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을 만큼의 사랑을 줍니다. 하물며 하느님은 당신이 창조주이시며 아버지이심을 믿게 하시기 위해 얼마나 완전한 표징을 주고 계실까요? 내가 부모의 사랑으로 부모를 믿게 되었다면 하느님의 사랑으로 하느님을 믿지 못하는 것에 대한 핑계는 있을 수 없습니다. 표징을 달라는 것은 그냥 믿지 않기 위한 핑계입니다.

 

 

철학자 플라톤이 한 번은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심각한 오해를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비방하는데도 그는 자기의 처지를 변명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 제자가 플라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선생님! 왜 변명을 안 하십니까?”

그때 플라톤은 다음과 같이 답변했습니다.

그들의 비난을 종결시키는 것은 나의 변명이 아니라 나의 행위이다."

 

 

핑계는 접어두고 행동으로 보여주십시오. 핑계를 대지 않으면 자신의 마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핑계를 대지 말아야하는 이유는 자신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자신을 알아야 고치고 발전할 수 있습니다. 핑계는 자기를 못 보게 가리는 눈가리개입니다. 지금 비난을 받더라도 절대 핑계대지 않는 습관을 기릅시다.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비난에 핑계가 아니라 행동으로 응답하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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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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