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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3.13)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3-13 조회수1,891 추천수8 반대(0) 신고

 


2019년 3월 13일

사순 제1주간 수요일

제1독서 요나 3,1-10

주님의 말씀이

1 요나에게 내렸다.
2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네베로 가서,

내가 너에게 이르는 말을

그 성읍에 외쳐라.”
3 요나는 주님의 말씀대로

일어나 니네베로 갔다.

 니네베는 가로지르는 데에만

사흘이나 걸리는

아주 큰 성읍이었다.

4 요나는 그 성읍 안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하룻길을 걸은 다음

이렇게 외쳤다.

“이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
5 그러자 니네베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었다.

그들은 단식을 선포하고

가장 높은 사람부터

가장 낮은 사람까지

자루옷을 입었다.

 6 이 소식이 니네베

임금에게 전해지자,

그도 왕좌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자루옷을

걸친 다음

잿더미 위에 앉았다.
7 그리고 그는 니네베에

이렇게 선포하였다.
“임금과 대신들의 칙령에 따라

사람이든 짐승이든, 소든 양이든

아무것도 맛보지 마라.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라.

 8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두

자루옷을 걸치고 하느님께

힘껏 부르짖어라.

저마다 제 악한 길과

제 손에 놓인 폭행에서

돌아서야 한다.

9 하느님께서 다시 마음을

돌리시고 그 타오르는 진노를

거두실지 누가 아느냐?

그러면 우리가 멸망하지

않을 수도 있다.”
10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아서는 모습을 보셨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마음을 돌리시어 그들에게

 내리겠다고 말씀하신

그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다.

복음 루카 11,29-32

그때에 29 군중이 점점

더 모여들자 예수님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30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31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 사람들을

단죄할 것이다.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32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어느 스승이 제자들에게

닭 한 마리씩을 주면서

“아무도 보지 않는 곳으로 가서

이 닭을 죽여가지고 와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사람들이 없는 곳을

찾아가서 닭을 죽여서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한 제자가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한참 뒤에 그 제자가 닭을

품에 안고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품에 있는 닭은

죽은 닭이 아니라

살아 있는 닭이었습니다.

스승은 물었습니다.
“왜 닭을 죽이지 못했지?

무서웠나?”
제자는 망설이며 말합니다.
“아닙니다.

닭을 죽일만한 장소를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을

찾을 수가 없더군요.

하느님이 보고 계십니다.”
맞습니다. 하느님께서

보고 있지 않은 곳이

과연 어디에 있을까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보고 계신 하느님이고,

심지어 나의 과거와 미래까지도

보고 계신 하느님이신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가 죄를

멀리해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가 있습니다.

하느님의 시선을 확신하고

있다면 하느님의 뜻을

어기면서 살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남방 여인과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상 사람들을

단죄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복음에는 나오지 않지만,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향해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라고 말했었지요.

이런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이 의심하지 않고

믿을 수 있도록 표징을 계속해서

 보여 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생각들이

가득한 곳에서 과연

주님의 어떤 표징을 받아들일 수가

있었을까요?
자신들의 판단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은 무조건 거부하는

유다인이었음을 성경 곳곳에서

우리는 볼 수가 있습니다.

더군다나 그들이 절대로

 벗어나지 못하는 판단은

이방인들과 달리 하느님의

특별한 선택을 받은 자신들만

구원받게 된다는

 선민의식이었지요.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아주 의외의 말씀,

그들이 절대로 인정할 수 없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들이 경멸하는 이방인들이

오히려 자기들을 단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유다인들 만의

하느님이 아닙니다.

 그 누구도 제외시키지 않는

우리 모두의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이렇게 큰데,

우리의 사랑은 너무나도 작고

편협한 것이 아니었을까요?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철저하게 제외하려는 사랑으로

하느님 사랑의 방향과 정반대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하느님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곳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내 뜻이 아닌 철저히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우리가 되도록 합시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어린 소년이 엄마에게

‘전부’ 사랑한다고 말했다.

엄마는 ‘전부’가 아니라

‘아주 많이’라고 고쳐 주었다.

그러자 아이는 말했다.

 “아니야, 전부야.

나는 장난감 말과 자동차를

 ‘아주 많이’ 사랑하지만

엄마는 ‘전부’ 사랑해.”

(레오 보만스)

(몬테카지노 성당 안)


어떤 말을 하고 있나요?

지난겨울에 있었던 일이

하나 생각납니다.

 갑자기 날씨가 너무 추워진

어느 날이었지요.

한 청년이 제게 이렇게 말합니다.
“신부님, 제가 웬만해서는

히트텍을 입지 않거든요.

런데 도저히 안 되겠어서 입고 말았네요.”
히트텍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습니다.

그래서 히트텍이 무엇이냐고 물었지요.

그러자 이것도 모르냐는 표정으로 말합니다.
“겨울에 추울 때 입는 거요.”
“내복?”
“아~ 그렇죠. 내복이죠.”
내복이라 하면 몸이 약한 어르신들이

 입는 것으로 생각되고,

히트텍이라고 하면 젊은이들의

새로운 패션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히트텍이 곧 내복입니다.

똑같은 단어이지만 어떻게

부르냐에 따라서 이미지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 이웃을 향해 어떤 말을

하고 있었을까요?

긍정적인 말, 희망의 말,

사랑의 말을 하면 그만큼

나의 이미지는 올라갑니다.

그러나 부정적이고 절망의 말

등을 담아 부르면 나의 이미지는

형편없이 낮아집니다.
어떤 말을 하고 있나요?

(어제 순례 오신 대전 둔산동성당 성지순례단)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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