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내가 바라는 바 그대로 꼭 / 사순 제1주간 목요일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9-03-14 조회수1,453 추천수4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중세부터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한 수도자가 성체조배 차례가 되어 성전에 들어갔다. 그런데 앞 조의 수사가 코골며 자고 있었다. 화가 난 수사는 감실을 향해 큰 소리로 주님, 제대 앞에서 자는 이 형제를 용서하소서!’라고 기도했다. 그러자 감실에서 , 조용히 해라. 나까지 깨우는구나. 나도 자고 있다.’라는 소리가 들렸단다. 사랑은 상대에 대한 배려다. 내가 하고픈 것을 그도 하고 싶어 하고, 내가 하기 싫은 것은 그도 싫어할 게다. 상대편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배려의 마음 없이는 전혀 불가능이다.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에서 비롯되었으리라. 먼저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할 때에야 나에게 꼭 그리 할게다. 배려는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살맛나게 해 주리라.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좋은 것을 얼마나 더 많이 주시겠느냐? 그러므로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마태 7,11-12)’ 이 황금률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삶에서 가장 근본적이며 포괄적인 계율이라 할 게다. 이렇게 남을 배려하는 삶은 주님 마음을 헤아리는 거다.

 

논어에도 이와 비슷한 게 있다. 어느 날 제자인 자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선생님, 사람이 평생을 살아가면서 해야 할 일을 한마디로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자 공자는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마라(기소불욕 물시어인; 己所不欲 勿施於人).’라고 대답했단다. 남의 마음을 헤아리기를 내 마음 헤아리듯 해야 한다는 말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자신보다 우리를 더 잘 알고 계시기에 우리가 무엇이 필요한지를 아신다. 부탁하는 기도보다 그분 뜻대로 해 주십사고 드리는 게 평화롭고 행복한 느낌을 더 해 주자. 기도가 매번 어렵고 힘든 이유는 뜬금없이 달라고만 하기 때문일 게다. 부모님은 어떤 상황에도 자식을 좋게만 보시기에 사랑스러울 게다. 그렇지만 그걸 아는 자녀는 많지 않다. 대개는 또 간섭한다고 생각하기에 그 잔소린 이제 지쳤다는 눈치다. 그렇지만 주님은 늘 좋게만 보시어 언제나 좋은 것을 주시려 한다. 우리의 진정한 아버지이시기에.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이라는 하느님께서 어떠한 마음인지를 잘 보여 준다. 아무리 미천한 부모일지라도 자식에 대한 사랑은 그토록 한이 없는데, 어찌 사랑 그 자체이신 그분이야 오죽할 리가 있으랴!

 

사실 다른 이가 너에게 하기를 원하지 않는 일을 너도 남에게 하지 마라는 것에 더 적극적인 것은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이다. 남에게 아무런 손해를 끼치지 않는 이는 남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을 수도.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악을 피하지 말고 선을 적극적으로 행하라신다. 우리는 법대로 살려하지만 그분께서는 무한한 사랑으로 살라신다. 남에게 용서받고 싶은 만큼 용서해 주고 다른 이의 칭찬을 받고 싶으면 먼저 남을 칭찬해야 할게다. 도움 바라는 그대로 반드시 도와주고 받길 원하는 그 이상으로 반드시 해 주도록 힘써야만 하리라.


그렇다.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도 해 주자. 사순의 시기만이라도 발 벗고 그래보자. 우리 주위에는 하느님에게서 버림을 받았다거나 그분이 되레 고통만 안겨 주실 뿐 돌보아 주지 않으신다는 이가 참으로 많다. 우리는 이러한 이웃에게 그분의 따뜻한 사랑과 관심의 손길이 되어 주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하느님 사랑을 느끼지 못하도록 만든 장본인이 바로 우리이기에. 내가 바라는 바 그대로 꼭 해주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율법과 예언서,황금률,배려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