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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3.19)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3-19 조회수1,681 추천수8 반대(0) 신고

 


2019년 3월 19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제1독서 2사무 7,4-5ㄴ.12-14ㄱ.16

그 무렵 4 주님의 말씀이

나탄에게 내렸다.

5 “나의 종 다윗에게 가서

말하여라.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12 너의 날수가 다 차서

조상들과 함께 잠들게 될 때,

네 몸에서 나와 네 뒤를 이을

후손을 내가 일으켜 세우고,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13 그는 나의 이름을

위하여 집을 짓고,

나는 그 나라의 왕좌를

영원히 튼튼하게 할 것이다.

14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16 너의 집안과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굳건해지고,

 네 왕좌가 영원히

 튼튼하게 될 것이다.’”

제2독서 로마 4,13.16-18.22

형제 여러분,

13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는 약속은 율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얻은

의로움을 통해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게 주어졌습니다.
16 그러한 까닭에 약속은

 믿음에 따라 이루어지고

은총으로 주어집니다.

이는 약속이 모든 후손에게,

곧 율법에 따라 사는 이들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이 보여 준

믿음에 따라 사는 이들에게도

 보장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우리 모두의

조상입니다.

17 그것은 성경에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만들었다.”라고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믿는 분,

곧 죽은 이들을 다시 살리시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도록

불러내시는 하느님 앞에서

우리 모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18 그는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너의 후손들이

저렇게 많아질 것이다.”

하신 말씀에 따라

 “많은 민족의 아버지”

가 될 것을 믿었습니다.
22 바로 그 때문에

“하느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복음 마태 1,16.18-21.24ㄱ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20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24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하였다.

누군가의 시선에 민감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보겠냐고,

 사람들이 흉보지 않겠냐면서

늘 걱정합니다.

 이렇게 타인의 시선만을 생각하며

살아간다면 그것은 자신의

인생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타인이 바라는 인생을 살 뿐입니다.
사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그것은 그 사람의 자유입니다.

내 자신이 굳이 신경 쓸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있는 ‘나’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고자 한다면,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그리고

스스로 있고 싶은 모습으로

살아가면 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자유롭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책임도 지지 못할

자유를 누리려고 한다면 그것은

방종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책임 질 수 있는 자유를

누리는 삶이야말로 참 행복의

 길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책임지는 자유는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종종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보면

어느 것은 초점이 어긋나서 흐려지고,

반대로 초점이 잘 맞춰준 것은

선명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초점을 정확하게 맞춰야 하는데

제대로 맞추지 못해서 흐려진 삶,

만족스럽지 않은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 초점이 바로 하느님이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뜻에 초점을 정확하게

맞추게 될 때, 분명히 우리의 삶은

 더욱 더 선명해지면서 만족스러운

삶이 될 수 있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이신

요셉 성인이 바로 그런 분이십니다.

성인께서는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가진 성모님을 받아들이시지요.

율법을 따른다면 그의 처음 생각대로

 파혼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초점은 세상이 아니라

하느님께 있었습니다.

그래서 꿈에 천사의 계시를

들을 수가 있었고, 천사의

말씀을 따라 성모님을 아내로

맞아들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철저히 하느님의 뜻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예수님의

아버지가 되실 수 있었고,

죽음의 순간까지도 하느님과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까요?

혹시 물질적이고 세속적이라고

불릴 수 있는 세상의 것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요셉 성인께서 보여주신 하느님께

 철저히 초점을 맞추는 삶,

그것도 강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책임을 지는 자유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우리 역시 따라야 할 때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행복은 애써

구하는 것이 아니다.

 삶에 최선을 다할 때,

목표를 향해 전진할 때

목표에 열정을 쏟아 결과를

얻는 순간 행복은 따라온다.

(소크라테스)

(성 요셉 축일입니다)


미래의 시간과 돈

“사람들에게 미래에 시간과

돈이 여유로워질지 물었다.

 하나같이 여윳돈엔 인색한 반면

시간은 넉넉하게 예측했다.

우리는 시간에 제한이 없다고

 착각한다.

돈은 노력하면 불릴 수 있지만,

시간은 나중이라고 해서 늘지 않는다.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간이다.

이 시간을 어떻게 소비하고 있는가?”

(에릭 바커)
분명 더 중요한 시간입니다.

그러나 무조건 ‘돈’에만 맞춰진

삶을 살려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시간을 어디에 적합하게 사용하고

있는 지를 묵상해 보았으면 합니다.

주님께 초점을 맞추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요셉성인과 주님의 부자상)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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