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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웅렬신부님복음묵상(사제들의 불문률)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3-20 조회수1,742 추천수3 반대(0) 신고

 


김웅렬신부님복음묵상

사제들의 불문률

찬미예수님

어제 첫 토요일이

은총의 밤이었어야 하는데,

구정 때문에 지난달 9일로 연기했죠.

그런데 지난달에 못 오셨던 분들이

여러 지역에서 왔다가셨어요.

지난달에 안 오셨죠?’

하니, ‘세 달 만에 옵니다.’

어찌나 미안하든지..

내년에 달력을 만들 때에

그런 것까지도 생각을

해야 되겠다 생각했죠.

달력에는 어저께가

은총의 밤으로 되어 있어요.

우리 달력을 본당 신자뿐 아니라

전국에 많이 퍼져 있어요.

어저께는 밖에 나가서

오신 분들에게는

안수를 해서 보내기는 했어요.

그거라도 받고 가니까

덜 서운해 하시죠.

성모님께 달력을 만든

내가 죄인입니다.

내년에는 달력 많이 고민하고

만들겠습니다.’말씀드렸어요.

은총의 밤을 올해 째로

15년 째 하고 있습니다.

진천, 감독, 배티, 서운동.

그런데 은총의 밤이 첫 토요일이죠.

은총의 밤을 못해 본 것은

서운동 와서 첫 달 포함,

2번이에요.

또 한 번이 배티에서 메르스

전염병 때문에요.

은총의 밤은 전국에서 모여

혹시 보균자가 왔다 퍼트리면

감염경로를 알 재간이 없죠.

그래서 그때는 정말

성모님한테 양해를 구하고

도저히 안되겠습니다.’

그 때 어느 교구에는

성수대까지 없앴다고 들었어요.

저는 그것은 이해가 안 가요.

씁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성수가 뭐에요?

하느님이 축성한 거룩한

물이잖아요.

성수를 바르고 치유될 수 있고,

구마도 된다는 것을

교회는 가르치는데,

메르스에 걸린 사람이 손을 댄

성수로 전염될지 모르니까

성수 찍지 말라는 것은

넌센스라 생각해요.

교회 안에 어둠이

들어왔다는 게

바로 이런 거죠.

마귀는 내가 마귀다 하면서

교회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죠.

이성주의, 합리주의를

앞세워 가지고 교묘하게

교회를 밑바닥부터

허물기 시작합니다.

이 방송은 전 세계로

생방송 되고 있습니다.

어제 오셨다 아직도

뿔이 나 계신 분은

이제라도 용서하십시오.

다음에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 약속합니다.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 사제들을

본당에 파견할 때에

불문율이 하나 있습니다.

주교님이 사제들을

인사이동 시킬 때

반드시 짚고 넘어가는 게

하나 있습니다.

절대로 자기 고향에는

본당신부로 안 내보내요.

여기 서운동 출신 신부님들이

우리 교구지만

서운동 본당신부 하신 적이 없죠.

그것이 가톨릭 2000년 동안에

사제를 파견할 때

아주 중요한 불문율입니다.

이런 불문율이 생기게 된 근원이

바로 오늘 성경 말씀 때문이지요.

어떤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한다.

한마디로 오늘 예수님 고향에서

죽을 뻔 했어요. 그렇죠?

그 마을이 산 위에 있었는데

예수님을 산비탈로 끌고 가

절벽에서 떨어뜨리려 했어요,

살인을 하려고 했어요.

강도떼도 아니고

도둑놈도 아니고

바로 고향사람들이요.

나자렛 고향 사람들한테

예수님은 살해당할 뻔 한

사건이 바로 오늘 이에요.

밀어 떨어뜨리려고

딱 한 줄로 나왔지만,

그 광경을 생각하면 끔찍한 겁니다.

그 사람들 가운데는 친척도,

어릴 때부터 같이 컸던

사람들도 있을 수 있었겠죠.

그런데, ‘저 미친놈이네.’

하면서 절벽에다가

떨어뜨리려고 했어요.

다시는 예수님은

자기 고향에를 안 가셨죠.

인구가 몇 만 명이 되면

유대 나라에서는 반드시

회당이라는 것이 있어야 돼요.

예루살렘의 성전은

딱 하나지만 회당은

큰 마을마다 하나씩 있어요.

거기서 회당장이 말씀을

설교하든지 지금 같으면

피정하는 분을 불러다가 가르쳐요.

오늘 예수님이 고향

나자렛 회당에서 정성을 다하여

설교하시기 시작하는 겁니다.

회당 안에는 사람들이 꽉 찼겠죠.

궁금해서 온 사람도 있었고,

또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서

사람들도 많았을 겁니다.

정말 내가 아는 바로 그 사람일까?

한 동네 같이 컸던 그 친구가 맞을까?

또 한편으로는 늘 들어 싫증난

회당장 설교가 아니라,

소문에 말을 잘하는 강사래!

예수님은 정성을 다해 강론하셨을 것이고,

사람들은 그분의 말씀에 놀라워합니다.

감탄합니다.

그런데 즉시 어둠이

그들을 사로잡기 시작합니다.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

한 마디 말 때문에 순식간에!

맑은 물에 잉크 한 방울 떨어지면

퍼지듯이 순식간에

어둠의 연대성을 보여줍니다.

그 말이 뭡니까?

저 사람 요셉의 아들 아니야?

목수였던 요셉의 아들 아니야

이 소리에 사람들은 맞아.

우리 집 닭장 고치러 왔던

그 요셉 아들이네.’

저 아이도 우리 집에 일하던 사람이네

은총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경멸의 분위기로 바뀝니다.

존경의 눈길을 주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멸시의 눈길로 바뀝니다.

누군가를 영적으로 죽이고

매장시키는 도구는 혀입니다.

혀를 통하여 선입견이라는

어둠이 사람들에게서 나옵니다.

그 사람의 많은 장점이 다 묻어지고

그 사람의 배경,

소위 말하는 스펙만 남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예수님의 스펙은

이런 거였습니다.

요셉이라는 목수의 아들이라는 것이

첫 번째 예수님의 배경이었습니다.

유대 땅에서 천한 직업 순위로

밑에서 몇 째 안 가는 직업이

목수였기에 경멸합니다.

예수님의 하신 말의

내용을 들었을 때는

정말 은총의 말이라고

했던 그들이 순식간에

예수님의 그 배경을

보면서 경멸합니다.

멸시합니다.

은총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어두움의 분위기로

바뀌었을 겁니다.

여러분들,

한국에 첫 번째 양의사가

누군지 아십니까?

박서양이라는 분으로

나중에 제중원도 만들고

독립군을 돕는 큰일까지 합니다.

첫 양의사이기에 존경을 받고

많은 환자들이 몰려왔다가

소문이 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출신 배경에 대해서

말이 납니다.

저 의사 애비가 백정이었대.

어떤 움막에 살던 사람이래.

가도 되는 건가?’

아버지가 백정인줄 몰랐다

알고 난 후 병원에 가지 않은

환자가 아주 많았다 합니다.

물론 그 사람의 출생,

재산 이런 것들이 인격 형성에

많은 영향을 주기는 합니다.

그러나 사람을 평가할 때

외부적이고 우발적인 것에

의하여 평가하겠다는

유혹에 넘어가서는

안 되는 것이

우리 믿는 자들입니다.

늘 이런 식으로 판단하는

사람들은 자기 영혼의 병을

고치기가 어려울 겁니다.

늘 시기와 질투,

불신에 가득 차 있습니다.

나자렛 사람들은

중병을 앓고 있었지만

명의가 왔는데도 무시하고

죽이려고까지 합니다.

환자가 살려고 하지 않을 때

치유시킬 수 있는 의사는 없습니다.

예수가 한 고향 사람이었고

친척들이었다는 것만으로

절대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세례 받았다고 하는 것,

모태신앙이라는 것만으로

구원이 보증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구원의 문으로

들어왔다는 얘기일 겁니다.

늘 하는 얘기지만,

구원은 신앙의 문제가 아니라

응답의 문제입니다.

여러분 들어오다가

부고를 보셨을 겁니다.

요셉피나(54),

오늘 새벽 2시 반에 운명하셨습니다.

며칠 전에 병자성사 드리고 왔습니다.

그분은 지난 성모 승천 대축일에

세례 받고, 췌장암과 싸우다

결국에는 갔죠.

그 자매는 비록 1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세례 후 주일 미사,

은총의 밤에 참석한 모습을 보면

그것은 전쟁터에 나가는

용사와 같은 마음으로 하느님 앞에

나왔던 것 같습니다.

복수가 찬 몸뚱이를 붙들고

맨 앞자리에 앉아 마지막 안수까지

한 눈 팔지 않고 초롱초롱

사제를 쳐다보면서,

사제의 뒤에 계시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쳐다보면서,

요셉피나는 죽음을 준비했습니다.

며칠 전에 갔을 때

본인 자신도 며칠 못 산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 남편은 늘 저한테

그런 얘기를 했어요.

신부님, 우리 아내만 살려주시면

제가 세례 받을 게요.’

엄청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의사로부터

구정 못 넘길 거라고

얘기를 듣고 찾아왔습니다.

요셉피나가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이 누굴까?’

요셉피나를 만나 주십시오.’.

성체를 모시고 갔죠.

남편은 예전에는 아내 살려주면

신자 된다고 했지만,

내가 요셉이 돼야만

아내를 만나러 갈 수 있기 때문에

요셉이 될 겁니다.

우리 아내가 천국 갈 것 믿습니다.

하느님 원망하지 않습니다.’하며

성당에 자주 보이더라도

쫒지 말라 달라고 했습니다.

아내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지극했는지 몰라요.

요셉피나는 남편과

장성한 아들, 딸 전부

다 신자가 될 것 알고

떠났을 겁니다.

비록 세례 받고 1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매 순간을 얼마나 철저하게

응답하고 살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구원이라고 하는 것은

세례 받고 얼마를 살았느냐,

예수님과 한 동네 사람들이었냐,

본당에서 어떤 직책을 맡았느냐가

중심이 아니고 기준이 아니고,

얼마나 성실하게 하느님에게

응답하고 살았느냐의 문제입니다.

그 자매는 하느님이

어떤 분이 어떤 분인지,

살아계신 하느님을

체험하고 간 겁니다.

사제의 부모,

수녀의 부모라는 것,

구교라는 것만으로

우리는 구원되지 않습니다.

사제, 수녀가 많이 나온 본당에서

오히려 본당신부님들이

사목하는 것이 힘듭니다.

선입견에 사로 잡혀

경멸하는 분위기에서

평화를 만들어낼 수가 없습니다.

기대에 차 있고

겸손한 분위기에서는

말씀의 은혜가

충분히 내려갑니다.

철야기도 때,

그 늦은 밤이지만

졸지 않습니다.

피정 때 얼마나 많은

은혜가 내려갑니까?

교도소라든지 군대에서도

전혀 다릅니다.

시간 때우러 나온 사람에게

예수님이 설교를 해도

절대 귀에 들어오지

않을 겁니다.

오늘 이 사건 이후로

예수님은 나자렛을 영원히 떠나

다른 곳으로 가십니다.

그래서 슬프게도

예수님 업적의 수혜자들은

고향사람들이 아니라

이방인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346절에

바오로 사도는

이런 말을 전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먼저 여러분에게

전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것을

배척하고 영원한 생명을 받기에

스스로 합당하지 못하다고

판단하니, 이제 우리는

다른 민족들에게 돌아섭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하느님이

불러주신 것도 은총이고,

사제의 입을 통해서

하느님의 말씀이

들리는 것도 은총이요,

주님의 성체를 통하여

내 안에서 기적이 일어나는 것도

은총임을 우리는 믿어야 됩니다.

영혼의 병이라고 하는 것은

천국 가는 길을 가로막습니다.

그래서 늘 명심합시다.

구원이라고 하는 것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응답의 문제다.

매일 매일을 새로 세례 받은

사람답게 살아야 됩니다.

매일 매일을 거듭나는 삶을

살도록 애쓰고 노력합시다. 아멘.

2019년 연중 제 4주일(2/3)

(서운동성당)

- 김웅열(느티나무) 신부님 강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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