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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천상부자는 과연 누구일까?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19-03-22 조회수1,357 추천수0 반대(0) 신고

 

 

한 달 전부터 천상부자와 지상부자라는 주제로 계속 생각을 해보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 한번 정리를 하려고 하다가 그만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오늘 가브리엘 신부님 묵상글을 읽고 여러 가지 순간 영감이 스쳐지나가서 기억 속에서 사라지기 전에 빨리 잡아 두어야 될 것 같아 지금 열심히 타이핑하고 있습니다. 오늘 신부님 묵상글에서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제가 어떤 글에서도 그런 표현을 사용한 적이 있는데 오늘은 색다른 관점에서 한번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지금 세대를 흔히 하는 말로 황금만능주의 시대라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이런 게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극히 일부에만 해당되는 사정일 것입니다. 즉 돈이면 모든 게 다 해결된다는 사고방식입니다.

 

사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이 말이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피상적인 모습에서는 그럴 수가 있습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일까요? 이 말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생각하는 부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우리가 부자라고 하면 일단 무엇을 생각합니까? 바로 재물을 얼마나 많이 소유하는지에 따라 그 사람이 얼마나 부유한지를 판단합니다. 이건 세상의 관점입니다. 당연합니다.

 

그렇다면 좀 더 넓은 시각으로 한번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엄청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있다고 가정을 해보겠습니다. 이 사람의 일생이 백년이라고 가정을 한번 해보겠습니다. 그럼 이 사람은 백년이 지나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 사람이 아무리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더라도 이 세상에 어떤 사람도 죽어서 자신의 자산을 가지고 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아무리 많은 자산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자신이 가진 자산을 자식에게 상속을 하거나 사회에 환원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을 겁니다.

 

아무튼 자신이 가진 부는 살아있을 때만이 가진 부였습니다. 이 사람에게는 설령 아무리 많은 재산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재산으로 할 수 없는 가장 대표적인 것 하나를 꼽으라면 저는 바로 생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생명도 돈으로 살 수가 있다면 분명 이 사람은 생명을 돈으로 자기의 전 재산을 주더라도 사려고 할 것입니다.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왜 그럴까요?

 

설령 자신의 전 재산을 준다고 하더라도 죽는 것보다는 다시 시작하면 될 거라고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만약이라는 조건으로 말씀을 드렸지만 실제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 세상에 돈으로 살 수 없는 게 어디 생명밖에 없겠습니까? 사람과 사람 사이 애정, 사랑 아무튼 정말 많이 있을 겁니다. 우리가 좀 더 이 부분을 진지하게 생각해보려면 또 하나의 가정을 한번 해보겠습니다. 이 사람이 신앙을 가진 여부를 별도로 하고 한번 생각해보겠습니다. 이 사람이 세상에서 부를 누린 시간은 인간의 시간으로는 100년입니다.

 

이젠 신앙의 눈으로 한번 이 사람의 부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겠습니다. 신앙의 눈, 즉 하느님의 눈으로 본다면 인간의 시간으로는 100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입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의 눈으로 보면 이건 우리가 하루살이 날파리를 보는 것처럼 하루살이 인생도 되지 않습니다. 신앙인의 삶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눈다면 지상에서의 삶과 지상의 삶을 다하고 난 사후의 삶일 것입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영혼의 삶일 것입니다.

 

신앙인의 삶도 100년이라고 가정을 한번 해보겠습니다. 신앙인에게는 백년의 삶이 다 끝이 아닐 겁니다. 바로 다음 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도 믿음의 정도에 따라서 아무리 믿음 생활을 한다고 하더라도 반신반의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완전히 믿음으로 똘똘 뭉쳐져 있는 사람이라면 내세가 있다는 걸 확신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이건 자신이 평소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진 믿음의 정도에 따라 결정이 될 겁니다. 아무튼 우리에게는 서두에 언급한 부자나 조금전 신앙인 두 사람 모두에게 인간적인 시각으로 봤을 때 똑같이 100년이라는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그럼 이제는 이 부자가 신앙의 유무에 따라 한번 나누어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먼저 신앙을 가지지 않았다고 한번 가정을 해보겠습니다. 그럼 이 사람은 그냥 고작 하느님의 시각으로 봤을 때 아무리 인간세상에서 부를 누렸다고 하더라도 고작 100년밖에 누리지 못한 부자였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이 부자가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고 한번 가정을 해보겠습니다. 신앙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크게 또 둘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복음에 나오는 부자 청년처럼 영원한 생명을 얻고는 싶어 영원한 생명의 비결을 묻지만 그 비결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계명을 잘 지킨 걸로 봐서는 나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 걸로 판단을 할 수가 있지만 물론 형식적으로 말입니다.

 

그렇지만 정작 하느님께서는 정말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의 재산을 이 세상에 나누어주고 하느님을 따르라고 하셨지만 부자 청년은 자신의 재물에 눈이 어두워 오히려 그 재물 때문에 근심이 되어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지 못해 영원한 생명인 영생을 얻지 못한 부자 청년처럼 이런 신앙인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이 부자는 신앙의 관점에서 봤을 때는 정말 불운한 사람입니다. 왜 그럴까요? 재산은 많이 가졌지만 현명하지 못했습니다.

 

이 부자 청년이 현명하지 못한 이유를 제가 가진 상식선에서 한번 말씀드려보겠습니다. 한번 생각해보세요. 자신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비결을 질문했다는 건 자신의 입장에서는 유한한 삶을 살다가 죽는다는 걸 아는 사람이겠죠.

 

자신이 영원한 생명을 갈구하기 때문에 질문을 했을 겁니다. 그렇다면 어차피 자신에게 주어진 하느님께서 주어진 생명의 시간을 다하면 자신의 생명도 더 이상 살지 못할 거라는 걸 알면 제 아무리 많은 재산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다 무로 돌아가는 그런 상황인데도 오히려 어쩌면 그 사람에게는 자신이 가진 부를 하느님의 말씀대로 했더라면 이 세상을 살면서도 부를 누렸고 또 그렇게 누린 부를 더 좋은 가치를 위해서 세상에 환원을 했더라면 하느님의 말씀대로 영생도 얻었을 텐데 그러지를 못했다는 건 정말 어리석기 짝이 없는 부자였습니다.

 

결국 복음에 나오는 이 부자 청년처럼 제가 서두에 말씀드린 부자가 이런 부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 이제는 신앙을 가졌어도 정말 진실된 신앙을 가진 부자라면 당연히 복음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그렇게 했을 겁니다. 그럼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걸 이제는 요약을 한번 해보겠습니다. 신앙을 가지지 않은 부자가 누린 100년이나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도 부자 청년과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은 고작 누려도 100년밖에 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단순히 그냥 지상에서 인간이 누리는 부였지만 하느님의 눈으로 보면 정말 하루살이 인생의 부였습니다. 결국 지상부자로서만 사는 삶을 살고 마친 것입니다. 그렇다면 천상부자는 어떤 사람이 천상부자일까요? 제가 천국에 가보지도 않아서 잘 모르지만 상상은 한번 할 수 있습니다. 천상부자가 되려면 일단 이 세상 지상부자를 바라보면 천상부자가 되기 힘들 겁니다. 그렇다고 지상부자가 천상부자가 되지 못한다는 게 아닙니다.

 

복음에서처럼 그렇게만 실천하면 당연히 천상부자가 될 수가 있을 겁니다. 그럼 제가 말씀드리는 천상부자는 하늘나라에서 많은 재물을 소유하는 그런 사람을 천상부자라는 개념으로 말씀을 드리는 걸로 생각은 하지 않으시겠죠. 설마 하늘나라에서도 이 세상에서 사용하는 그런 개념의 부자라면 저도 그런 부자는 꿈도 꾸고 싶지 않습니다. 천상부자는 어떤 부자가 천상부자일까요? 지금까지 말씀드린 부자의 개념과는 완전 다른 개념의 부자입니다. 그럼 제가 생각하는 천상부자가 어떤 사람인지 제 생각을 한번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이 지상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많이 받아 그 사랑을 많이 가진 사람이 바로 천상부자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이 어쩌면 하느님께서 차별적인 사랑을 하신다는 걸로 이해를 하시는 분은 아마 안 계시겠죠. 하느님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똑같이 비나 해를 비추어주신다고 했으니까 정말 똑같이 사랑을 주시겠죠. 그렇지만 그 사랑을 주시기는 주시겠지만 그 사랑을 먹는 건 자신이 해야 됩니다.

 

그 사랑을 받아 먹는 사람이 있을 테고 또 그 사랑을 외면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결국 그 사랑을 외면한 사람은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과 똑같지 않겠습니까? 하느님의 사랑을 많이 받으면 어떻겠습니까? 그 안에 하느님 사랑으로 많이 무장되어 있으면 당연히 이 세상을 살더라도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또 그 사랑을 나누어주는 삶을 살 게 분명하지 않겠습니까? 바로 그런 삶이 복음에서 말하는 영원한 생명인 영생을 얻는 삶이지 않겠습니까? 결국은 이 세상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여러 개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게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생명도 유한한 삶이 아닌 영원한 생명은 더더욱 얼마나 가치가 있겠습니까? 그런 영원한 생명을 돈으로 산다는 건 정말 상상을 할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근데 그런 영원한 생명을 사지도 않고 얻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진정한 부자가 아니겠습니까? 왜냐하면 그런 엄청난 재산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이니까 말입니다.

 

그렇다면 선택은 자신의 몫일 겁니다. 바보가 아니고서야 천상부자가 되는 게 현명하지 않겠습니까? 결국은 천상부자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세상이 주는 행복의 가치보다는 하느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된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마음에 하느님을 소유한 사람일 겁니다.

 

하느님을 소유한 사람이 바로 천상부자가 아닐까요? 아침에 가브리엘 신부님의 묵상글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단상을 한번 주절주절 해봤습니다. 적다 보니 정말 기발한 생각이 하나 있었는데 그게 사라져버렸습니다. 사실 생각나는 대로 적다 보니 정리가 되지 않은 글이지만 읽다보시면 제가 말씀드리려고 하는 의도는 충분히 전달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감사합니다. 나중에 다시 한 번 더 정리를 해서 올려보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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