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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3.24)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3-24 조회수1,850 추천수8 반대(0) 신고

 


2019년 3월 24일

사순 제3주일

제1독서 탈출 3,1-8ㄱㄷ.13-15

그 무렵 1 모세는 미디안의 사제인

장인 이트로의 양 떼를 치고 있었다.

그는 양 떼를 몰고 광야를 지나

하느님의 산 호렙으로 갔다.

 2 주님의 천사가 떨기나무

 한가운데로부터 솟아오르는

 불꽃 속에서 그에게 나타났다.
그가 보니 떨기가 불에 타는데도,

 그 떨기는 타서 없어지지 않았다.

3 모세는 ‘내가 가서 이 놀라운

광경을 보아야겠다.

저 떨기가 왜

버리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였다.

 4 모세가 보러 오는 것을

주님께서 보시고,

떨기 한가운데에서

“모세야, 모세야!”

하고 그를 부르셨다.
그가 “예,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5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리 가까이 오지 마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6 그분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나는 네 아버지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그러자 모세는 하느님을

뵙기가 두려워 얼굴을 가렸다.
7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내 백성이

 겪는 고난을 똑똑히 보았고,

작업 감독들 때문에 울부짖는

그들의 소리를 들었다.

정녕 나는 그들의 고통을 알고 있다.

8 그래서 내가 그들을 이집트인들의

손에서 구하여, 그 땅에서

저 좋고 넓은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리고

올라가려고 내려왔다.”

13 모세가 하느님께 아뢰었다.

 “제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서,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고 말하면, 그들이 저에게

 ‘그분 이름이 무엇이오?’

하고 물을 터인데,

 제가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하겠습니까?”
14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있는 나다.”

하고 대답하시고,

이어서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

′있는 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15 하느님께서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신 야훼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이것이 영원히 불릴

나의 이름이며,

이것이 대대로

기릴 나의 칭호이다.”

제2독서 1코린 10,1-6.10-12

1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이 사실도

 알기를 바랍니다. 우

리 조상들은 모두 구름 아래

 있었으며 모두

 바다를 건넜습니다.

 2 모두 구름과 바다 속에서

 세례를 받아 모세와

하나가 되었습니다.

3 모두 똑같은 영적 양식을 먹고,

 4 모두 똑같은 영적 음료를

 마셨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을

따라오는 영적 바위에서

솟는 물을 마셨는데,

그 바위가 곧 그리스도이셨습니다.
5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들 대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습니다.

사실 그들은 광야에서

죽어 널브러졌습니다.
6 이 일들은 우리를 위한

본보기로 일어났습니다.

그들이 악을 탐냈던 것처럼

우리는 악을 탐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10 그들 가운데 어떤 자들이

투덜거린 것처럼 여러분은

투덜거리지 마십시오.

그들은 파괴자의 손에

죽었습니다.
11 이 일들은 본보기로

그들에게 일어난 것인데,

세상 종말에 다다른

우리에게 경고가 되라고

기록되었습니다.

12 그러므로 서 있다고

생각하는 이는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복음 루카 13,1-9

1 바로 그때에 어떤

사람들이 와서,

빌라도가 갈릴래아

 사람들을 죽여 그들이

바치려던 제물을

피로 물들게 한 일을

예수님께 알렸다.

 2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그 갈릴래아

사람들이 그러한 변을

당하였다고 해서

다른 모든 갈릴래아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3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처럼 멸망할 것이다.

4 또 실로암에 있던 탑이

 무너지면서 깔려 죽은

그 열여덟 사람, 너희는

그들이 예루살렘에 사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큰 잘못을 하였다고

생각하느냐?

5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할 것이다.”
6 예수님께서 이러한

비유를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자기 포도밭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심어 놓았다.

그리고 나중에 가서 그 나무에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보았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였다.

7 그래서 포도 재배인에게 일렀다.

 ‘보게, 내가 삼 년째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보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네.

그러니 이것을 잘라 버리게.

 땅만 버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8 그러자 포도 재배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주인님, 이 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시지요. 그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겠습니다.

 9 그러면 내년에는 열매를 맺겠지요.

그러지 않으면 잘라 버리십시오.’”

다 쓰러져가는 오두막집에

살고 있는 한 가족이 있었습니다.

 이 가족의 유일한 생계수단은

아주 여윈 암소 한 마리뿐이었습니다.

 어느 날, 이 집에 지혜로운

현자가 찾아갔습니다.

현자는 이 집을 한참 돌아보더니

제자에게 몰래 이 암소를

 절벽으로 데리고 가서

 떨어뜨리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스승의 말을 어길 수가 없어서

시키는 대로 했지만,

제자는 한 동안 자책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이 마을에 들어갔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다 쓰러져가는 오두막집에

살고 있었던 가족이 으리으리한

 집을 짓고 잘 살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 이유를 물으니,

 암소가 없어져서 필사적으로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묘목을 가꾸고 약초를 심어서

 팔다보니 지금처럼

부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나의 시도와 모험을 가로 막는

 ‘야윈 암소’는 무엇일까요?

 바로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고정관념을 우리는 절벽에서

과감하게 떨어뜨려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어떤 계획을

가지고 우리를 창조하셨을까요?

 혹시 “음... 오늘은 뭐

재미난 일이 없을까?

 작고 웃긴 피조물들을

좀 만들어서 그것들이

뭘 하는지 지켜볼까?”라면서

우리를 창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이 지루하셔서 우리가

존재하는 것도 아닙니다.

 또한 진흙을 가지고

장난치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레네오 성인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은총을

베푸실 대상으로

우리를 지어 만드셨습니다.”
맞습니다. 결국 하느님의

 궁극적인 계획은 이 땅 안에

당신의 사랑이 가득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하느님의

계획안에서 살고 있을까요?

또한 적극적으로 그분의

 계획에 참여하고 있나요?

우리는 신앙인이라고 하면서

기도를 외우고 전통과

예식에 참여합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하느님의

궁극적인 계획이 펼쳐지기에는

충분하지가 않습니다.
구약성경에서 포도밭과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은유로 자주 쓰입니다.

 따라서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

역시 이스라엘을 뜻합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선택된

민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들만 사랑 받기를,

자기들만 구원받기를 원했던 것이지요.

 이런 잘못된 고정관념으로 인해

 하느님 사랑이 이 땅에 열매

맺을 수가 없게 만듭니다.

그래서 잘라버리겠다고 하지요.
우리도 그러한 것은 아닐까요?

단순히 신앙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또한 단순히 미사 참석과 기도문을

외운 것만으로 모든 것을 다했고,

또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착각했던 것이 아닐까요?

이런 착각이 하느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고 있는

나의 ‘야윈 암소’인 것입니다. 
복음에 나오는 포도 재배인처럼

예수님께서는 다시금 기회를 줍니다.

그러나 그 기회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하느님 사랑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더 열심히 주님의 뜻에 맞춰서

 살아야 합니다.

이제는 나를 막는 내 안의 야윈

암소를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과거의 기억을

사랑하지는 말자.

앞날을 사랑하자.

(임상철)

(전주교구 나바위 성지의 십자바위)


두 번은 없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

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낙제란 없는 법.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두 번의 똑같은 밤은 없고,

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어제, 누군가 내 곁에서

네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렸을 때,

내게 마치 열린 창문으로

한 송이 장미꽃이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함께 있을 때,

난 벽을 향해 얼굴을 돌려버렸다.

 장미? 장미가 어떤 모양이었지?

꽃이었던가, 돌이었던가?
힘겨운 나날들,

무엇 때문에 너는 쓸데없는

 불안으로 두려워하는가?

너는 존재한다.

- 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너는 사라진다.

- 그러므로 아름답다.
미소 짓고, 어깨동무하며

 우리 함께 일치점을 찾아보자.

비록 우리가 두 개의 투명한

물방울처럼 서로 다를지라도.

(천호성지의 박물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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