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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3.26)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3-26 조회수1,765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9년 3월 26일

사순 제3주간 월요일

제1독서 다니 3,25.34-43

그 무렵 25 아자르야는

 불 한가운데에 우뚝 서서

입을 열어 이렇게 기도하였다.
34 “당신의 이름을 생각하시어

저희를 끝까지 저버리지 마시고

 당신의 계약을 폐기하지 마소서.

 35 당신의 벗 아브라함,

당신의 종 이사악,

 당신의 거룩한 사람

이스라엘을 보시어

 저희에게서 당신의

자비를 거두지 마소서.

36 당신께서는 그들의

자손들을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37 주님, 저희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민족이 되었습니다.

저희의 죄 때문에 저희는

오늘 온 세상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백성이

되고 말았습니다.

38 지금 저희에게는

 제후도 예언자도

지도자도 없고 번제물도

희생 제물도 예물도

분향도 없으며 당신께

제물을 바쳐 자비를

얻을 곳도 없습니다.
39 그렇지만 저희의

부서진 영혼과 겸손해진

정신을 보시어 저희를

숫양과 황소의 번제물로,

수만 마리의 살진

양으로 받아 주소서.

40 이것이 오늘 저희가

당신께 바치는

 희생 제물이 되어 당신을

 온전히 따를 수 있게 하소서.

정녕 당신을 신뢰하는 이들은

수치를 당하지 않습니다.
41 이제 저희는 마음을

다하여 당신을 따르렵니다.

당신을 경외하고

당신의 얼굴을 찾으렵니다.

저희가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해 주소서.

 42 당신의 호의에 따라,

당신의 크신 자비에 따라

저희를 대해 주소서.

43 당신의 놀라운 업적에 따라

저희를 구하시어 주님, 당신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소서.”

복음 마태 18,21-35

21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22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23 그러므로 하늘 나라는

 자기 종들과 셈을 하려는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24 임금이 셈을 하기 시작하자

만 탈렌트를 빚진 사람

하나가 끌려왔다.

25 그런데 그가 빚을

갚을 길이 없으므로,

주인은 그 종에게 자신과

아내와 자식과 그 밖에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갚으라고 명령하였다.
26 그러자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제발 참아 주십시오.

 제가 다 갚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7 그 종의 주인은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를 놓아주고 부채도

 탕감해 주었다.
28 그런데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 하나를 만났다.

그러자 그를 붙들어

 멱살을 잡고

 ‘빚진 것을 갚아라.’

하고 말하였다.

29 그의 동료는 엎드려서,

‘제발 참아 주게. 내가 갚겠네.’

하고 청하였다.

30 그러나 그는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서 그 동료가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었다.

31 동료들이 그렇게 벌어진

 일을 보고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죄다 일렀다.
32 그러자 주인이 그 종을

 불러들여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네가 청하기에

나는 너에게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33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34 그러고 나서 화가 난 주인은

그를 고문 형리에게 넘겨

빚진 것을 다 갚게 하였다.
35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양은 지독한 근시라서

바로 제 눈앞의 것도

잘 보지 못한다고 하지요.

그래서 앞서가는 동료 양만을

따라만 다닙니다.

심지어 한 마리 양이 절벽에서

 떨어지면 줄줄이 절벽 아래로

떨어지게 된다고 하더군요.

이 양의 또 한 가지 특징은

무척 게으르다는 것입니다.

양은 자기 우리 안에서도

거의 움직이지 않을 정도로

게으릅니다.

그래서 운동을 할 수 있도록

양 무리 사이에 염소 몇 마리를

섞어 두는 것이 주인의 지혜입니다.
우리도 이 양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돈이나 명예만을 쫓으면서

죄의 굴레에 계속 빠집니다.

또한 주님의 뜻을 따르는 데는

엄청나게 게으릅니다.

나중에 기도하고,

나중에 사랑하고,

 나중에 용서하고...

이런 식으로 ‘나중에’만 외치는

엄청 게으른 우리입니다.
이제 주님을 보지 못하고

세상 것들만을 쫓아 사는

 우리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한 주님의 뜻을 실천하는데

게을러서도 안 됩니다.

선천적으로 시력 나쁜 것을

고칠 수는 없겠지만 주님만을

 따라가면 안전한 길로

기쁨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또한 주님의 뜻을 떠올리면서

실천하는데 성실한

우리가 될 때 착한

양이라 불릴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큰 사랑을 주셨지요.

십자가 안에서 주어진

 하느님의 용서라는

충만한 선물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주시는

큰 선물로 우리의 죄를

모두 용서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선물들을

기억한다면 주님의 말씀을

충실히 따를 수 있습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현대의 대표적인 영적 스승인

칠층산의 저자인 토마스 머튼

신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형제자매는

될 수 있으나 관리자가 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들도 궁극적으로는

하느님의 소유이지

나의 소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곧 그들의 관리자가 되려는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관리자의 모습으로 이웃들에게

다가선다면 사랑이 아닌

똑같이 관리자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겠다고 하십니다.

하느님의 사랑 없이 이 세상을

 살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하느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죄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이웃들에게 사랑으로 다가서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사랑을

한껏 받으면서 기쁨 안에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평생 삶의 결정적

순간을 찍으려 발버둥쳤으나,

 삶의 모든 순간이

결정적 순간이었다.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

(사랑으로 우리를 안아주시는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어디에 집중하고 있습니까?

“죽어라 일했는데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더라.”
왜 그럴까요? 당연합니다.

 일만 했으니까 그렇습니다.
진짜 내 삶을 살고 싶다면

죽어라 일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루 중 70%는 죽어라 일하더라도

 나머지는 30%는 내가 대체 왜,

무엇을 위해 이토록 죽어라 일을

하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집중을 하고 있나요?

100% 세상의 일에만 집중하면

분명히 큰 아픔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자신의 삶에 대해서

고민을 한다면 지금 내 삶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명령하신

사랑의 삶을 살 수가 있고,

이로 인해 이제까지

미처 얻지 못했던 행복의 길에

들어설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가는 길은 어떤 길인가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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