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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웅렬신부님복음묵상(유한한 쉼 영원한 쉼)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3-27 조회수1,745 추천수3 반대(0) 신고

 


김웅렬신부님복음묵상

유한한 쉼 영원한 쉼

찬미예수님

오늘 미사 시작하기 전에

미리 성인들 소개 드렸어야 했는데

제가 깜박했습니다.

제대앞에는 많은 성인들의

유해가 모셔져 있습니다.

예수님의 매달리셨던

십자가 보목 나무가 들어있는

유해가 성합 속에 있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유해,

최경환 프란치스코 유해,

토마스아퀴나스 유해,

성자 마리아 비안네 유해,

유스티노 유해,

베네딕도 유해,

프란치스코 유해,

성 파스카 유해,

비오 10세 유해,

성 필립스 유해,

필립보 네리 유해,

어거스틴 유해,

바르톨로메오 유해,

뽈리까르보 유해,

성 빈센트 드 뽈 유해,

십자가의 성 요한 유해,

성 메리 프란시스 유해,

성녀 세실리아 유해,

이렇게 많은 분들의 유해가

지금 제단 앞에 우리와 함께

미사를 봉헌하고 계십니다.

지금 이 자리에는

제대 위에는 사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매달렸던

십자가 조각을 우리들은

십자가 보목이라고 합니다.

5cm 정도 되는

십자가 보목이

십자가 고상안에 모셔져 있죠.

그 보목이 예수님의

등 뒤에 있던 조각인지,

다리를 받쳤던 조각인지는

모르지만,

분명 저 십자가 보목은

2천 년 전 예수님의

거친 숨소리를 듣고

그 밑에 계신 성모님과

사도 요한을 지켜봤던

예수님의 마지막 숨까지

같이 했던 조각입니다.

2천년 동안 뿌리도 없는

나무 조각이 지금도 그대로

나뭇결이 살아 있고,

주님의 성혈이

불그스름하게 있습니다.

워낙 많은 유해기에 한분씩

성광에 모시기가 불가능해서

액자 안에다 이렇게 두 줄로

진열을 해 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 의식하시고

미사 드립시다.

시골 본당 수녀님이 계셨습니다.

공소가 많아 수녀님이 전교하는데

어려움이 많아 신부님이

중고차를 사 주셨어요.

그래서 수녀님은 그 중고차를 몰고

열심히 공소로 공소로 교리를

가르치려 다녔죠.

그런데 어느 날 공소를 갔다 오는데,

그냥 외딴 길 한복판에서

차가 서버린 겁니다.

왜 섰을까요?

수녀님이 정신을 차리고

원인을 찾아보니, 기름이 없어요.

그래서 수녀님은 한 10리나 떨어진

제일 가까운 주유소를 찾아갔습니다.

기름 사러 왔습니다.

기름통에 주세요.’

하니까 시골 주유소라

그런 거 없대요.

그래서 수녀님이 둘러보니까

요강이 눈에 띠길래 거기에

기름을 담아 왔어요.

가서 주유구를 열고,

요강을 한 팔로 받히고

기름자바라로 기름을 넣습니다.

그런데 덤프트럭 하나가

지나가다가 끽 섭니다.

10년째 냉담 중이던 기사는

시동을 끄고 수녀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수녀님은 정말 복되신 분입니다.

오줌이 휘발유로 바뀌리라는

믿음을 가지셨다니!’

그 믿음 10분의 1

저에게 주십시오.‘

그래서 냉담하던 그 운전사는

성사보고 회개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전설이올시다.

오늘 복음은 선교하고 돌아온

제자들이 예수님께 보고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한참 보고를 들으신 다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중요해요.

뭐라 그러셨느냐?

따로 외딴 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따로의 반대가 뭡니까.

함께입니다.

함께 몰려가지 말고

따로따로 쉬어라 이겁니다

외딴 곳의 반대가 뭡니까?

시끄러운데 사람 많은데, 그렇죠?

조용한 곳으로 가라.

그리고 외딴 곳으로 가서

운동하고 와라나 놀다

오라는 것이 아니라 쉬어라’.

예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복음 선포를 막는

어둠세력이 얼마나 많고,

또 그와 맞서 싸운다는 것이

아직 성숙하지도 않은

이 제자들에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예수님은 아셨죠.

그래서 제자들이 오자마자

미주알고주알 다 예수님에게

토로했겠지요.

예수님은 그들의 보고를 듣고 난

다음에 하신 첫 번째 말씀이

잘했다.’ ‘애썼다가 아니라.

따로 외딴 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신부님들은 일 년에 한 번씩

모두 모여 사제단 피정을 합니다.

우리 교구도 한 200명이

한 번에 못 모이니,

젊은 신부들은 대전 신학교

하상 바오로 교육관에 가고

나이든 신부들은 꽃동네

연수원에 가서 피정을 합니다.

그런데 늘 해마다 피정 전

오리엔테이션 때 사목국장

신부가 하는 말이 있어요.

신부님들,

일주일 내내 대침묵입니다.’

그 침묵이 잘 지켜질까요?

안 지켜질까요?

어느 신부님은 그 규칙을 지키려고

식사 때도 멀리 구석에서 먹어요.

그러면 이제 또 그걸 가지고

시비를 붙죠.

혼자 별나. 와서 말 좀 해.’

함께 몰려있을 때는 침묵이 안 돼요.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가 가시죠?

그러니까 너희들 12

몰려다니지 말고 따로 따로

외딴 곳으로 가서 쉬어.’

이해가 충분히 되는 이야깁니다.

왜 홀로 머물러야 하는지

영어로 쉰다는 것을

‘rest’라고 합니다.

이라는 것에는

유한한 쉼이 있고

영원한 쉼이 있습니다.

유한한 쉼이라는 것은

우리가 이 몸뚱이를 가지고

지상에서 쉬는 쉼을 말합니다.

유한한 쉼에는 또

몸의 쉼영혼의 쉼이 있습니다.

몸의 쉼이라는 것은 하던 일과

거리를 두고 지친

몸뚱이를 쉬는 겁니다.

요새 TV에 응급실에서

근무하다 과로로 죽은 의사들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람의 병을 고치는 의사지만

그 의사 몸뚱이가 무쇠가 아닙니다.

사람의 몸도 반드시 쉬어야 합니다.

그리고 영혼의 쉼

있다고 했습니다.

전통적으로 우리 교회는

첫 번째 영혼의 휴식으로

기도를 말합니다.

라틴어에 인간은 기도로써

강해지고 하느님은 인간의

기도로써 약해지신다.’

우리 인간들이 하느님에게

기도할 때마다 강해집니다.

담대해집니다.

걱정하면 마귀가 들끓지만

기도하면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느님께서는 어떻게 되신다고요?

안 들어주고는 못 배기실 정도로

그냥 흐물흐물 해지시는 겁니다.

약해지십니다.

우리는 기도로써

재충전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붙잡혀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까지의 총 시간을

13시간 정도로 봅니다.

13시간 동안은 예수님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때리면 맞아야 하고,

침 뱉고 조롱과 욕을 하면

다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못으로 내리치면 그 쇠못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 13시간은

철저한 수동의 시간이었습니다.

능동의 시간,

액티브(acitve) 시간이 아니라

패시브(수동의,passive)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수동의 시간에

예수님은 그 어느 때보다

성부와 가까워졌습니다.

우리의 기도하는 시간은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닌

창조적인 시간입니다.

영혼의 휴식에 기도하지 않고

휴식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두 번째로 영혼의 휴식은

침묵입니다.

그냥 침묵이 아니라 말씀을

들으면서 침묵해야 합니다.

내가 조용해지면 말씀이 들립니다.

그러나 내가 시끄러우면

예수님이 나타나서 어떤 이야기를

해주셔도 안 들릴 겁니다.

영혼의 휴식의 세 번째 단추는

빛이 강한 쪽으로 나아가는 겁니다.

빛이 강한 곳은 분명 있습니다.

우리는 그곳을 거룩한 땅,

성지라고 부릅니다.

서운동 성당 주변에 4곳의 순교 터와

한 곳의 신앙 증거 터가 있습니다.

이곳에서 순교하신 분 중

5분의 복자가 나온 성당입니다.

지난 12월 초 주교 회의에서는

서운동 성당은 순교 성지 성당으로

결정이 났습니다.

이제 성지를 소개하는 모든 책자에도

서운동 순교 성지 성당으로

기록이 될 겁니다.

배티도 빛이 강하고,

감곡도 빛이 강한 곳이지만,

이곳도 빛이 강합니다.

비록 집들에 둘러싸여 있고

길 앞에는 점집이 많지만

그래도 빛이 강합니다.

외딴 곳으로 가서 쉬어라 했기 때문에

오늘 여러분들이 여기에 온 것입니다.

하느님 안에서의 휴식,

그것 때문에 여러분을

이곳에 불러내신 겁니다.

가라고 등을 떠 민 것만이 아니라

장소도 제공해주신 것입니다.

영혼의 휴식을 취하려면

첫째 기도하고,

둘째 말씀을 들으며

침묵해야 하고,

셋째로 빛이 강한 쪽으로

자주 찾아가야 합니다.

1년에 한번 2년에 한번

본당에서 단체로 성지 순례

가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여러분은 각 교구에서 오셨고

각 교구마다 성지가 있습니다.

살아생전에 한국의 성지만

다 순례하여도 은총으로

코팅이 될 겁니다.

루르드나 파티마보다 한국에는

감곡매괴성지라는

동양의 루르드 성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순교 성지,

제가 있던 배티도 정말

많은 은혜로운 장소입니다.

배티에 숨어 살던 교우촌 선배님들이

신유박해 때 끌려온 곳이 여깁니다.

배티에서 갈고 닦은 굳은 믿음으로

이곳 순교터에서 신앙을

증거 하다 돌아가셨죠.

그래서 여기는 빛이 강한 곳입니다

이것이 바로 유한한 쉼입니다.

몸뚱이의 쉼, 그리고 영혼의 쉼.

그러면 무한한 쉼인

영원한 쉼은 과연 뭡니까?

유한한 쉼인 몸과 마음의 쉼은

무한한 쉼인 죽음 너머에 계신

하느님과 함께하는 영생의 쉼을

준비하고 훈련시키는 겁니다.

쉰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장소의 개념이 아닙니다.

아무리 세계적으로 유명한

휴양지에 있다고 해서 쉬고

오는 것은 아닙니다. 맞죠?

쉰다는 것은

장소의 개념이 아닙니다.

이 지상에서는 육신과

우리의 마음을 아무리 쉬어도

피곤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간과 공간과 환경의

제약 속에서 살기 때문이죠.

빨간 글씨 있는 이 구정 기간 동안에

저는 세분의 장례를 치렀습니다.

93세 할머니,

53세 췌장암 걸린 자매,

그리고 어제 장례 치른 87 살 할머니.

53살 된 그 자매님은

작년 6월 은총의 밤부터

성모꽃마을 일원으로서

맨 앞자리에 자릴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8월에 요셉피나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그 다음부터는 주일을 어떻게든

지키려하고 은총의 밤에도

빠지질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복수가 찬

그 몸을 가지고 비틀거리며

늘 앉았던 자리에 항상 앉아 있었죠.

죽기 며칠 전에

신부님 보고 싶다고 해서

남편이 날 데리러 왔습디다.

남편은 늘 성당 안에는

들어오질 않고 밖에서만 기다렸어요.

그리고 기다리다가 날 보면

신부님 우리 요셉피나만 고쳐주면

제가 성당 나갈게요.”

그 말이 엄청 부담스러웠지요.

그래서 이제는 의사가 희망이 없다하니

신랑이 거들떠도 안보겠구나

걱정했더니, 나 에게

신부님 저 요셉 할게요.

우리 처 좀 만나주세요.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면서 자기 부인을 천국에서

만나려면 자기가 요셉이

되는 수밖에 없겠대요.

빨간 날이기에 성모병원에서

많은 교우들이 참석하셔서

장례 미사를 해드렸죠

고별식 후 신랑에게

한마디 할 것 있으면 하라 했더니

이제부터 요셉피나가 앉던

자리에 제가 앉을 겁니다.

내 아내 떠났지만

천주교 신자 셋을

만들어놓고 떠났습니다.’

입교식 할 때 아마 올 거예요.

요셉피나가 앉던 자리

분명히 지킨다고 얘기 했어요.

사람의 육신이라는 것은

언젠가는 떠날 수밖에 없기에

유한한 쉼은 한계가 있어요.

영원한 쉼으로 가기까지

유한한 쉼은 잠시의 충전일 뿐이지

완전을 주지 못하죠.

인간은 한마디로 유약한 존재입니다.

병과 노쇠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허약한 육체입니다.

그리고 환경에 속수무책으로

영향 받는 정신이기도 합니다.

제 신학교 은사 신부님이 계셨습니다.

돌아가셨지만.

영성 신학의 대가입니다

철두철미하게

사제의 삶을 사신 분인데,

10여 년 전 그분과

여행을 한 적이 있었죠.

그분 말씀이 당신이

혈기왕성했을 때에는 영적인 것이

위에 있어서 육신을 눌렀대요.

그런데 80이 넘고 보니까

이제 환경과 육체의 영향을

벗어날 길이 없대요.

같이 묵주기도하며

내가 선창하고 응이 안 나와서

보면 졸고 계세요, 그 강한 분이.

노쇠해지고 쇠약해지는

육체를 이길 사람은 없어요.

어쩌면 무한한 쉼으로 가는

과정일지 모르죠.

나랑 같이 살던 어느 수녀님이

암에 걸려 임종을 앞두고 있어

인사하러 갔어요.

촛불이 깜박깜박 꺼져가는

모습이었습니다.

수녀님, 눈 좀 떠 보셔.

나 기억납니까?’

그 수녀님은 처절하게

날 생각해내려 애를 쓰셨어요.

임종할 때 사제들도

약해질 수가 있겠죠.

사제들한테는 치매 안 오고,

파킨슨 씨 병 안 걸리고,

암 안 걸립니까?

그러나 어느 사제든지

그 사제의 진가는 평탄할 때가

아니었어요.

정말로 그 어마어마한

육신의 싸움 중에서도

어느 사제는 영혼을 지켜내요.

손발이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온몸이 떨려도 정신은 살아 계세요

그러고 하느님 만날 준비를

하고 계시지요

잠자는 것처럼 죽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죠?

잠을 자다 눈떠보니

예수님도 계시고

성모님도 계시고 여기가 천국이네.

그런데 그게 마음대로

되지가 않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따로 외딴 곳으로 가서 쉬어라

만일에 이 세상이 이걸로

끝난다면 내가 지금 이러고

있는 것은 넌센스입니다.

내 인생 어디서 보상받습니까?

여러분들 이 귀한 시간에

왜 여기 와 있는 겁니까.

이 세상에 잘 살기 위해서

이 자리에 온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세상, 천국에 가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방법을

배우러 온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 밖에 나가서

성난 파도 같은 이 세상살이에

지치고 힘들 때,

노아의 방주처럼 이곳에서

하느님 안에서의 쉼을 갖기 위해

여러분은 초대받은 분들입니다.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매달

이 날이 기다려지는 것입니다.

오늘 초대받은 우리들

하느님께 감사합시다. 아멘

201902월 은총의 밤(02/09)

(서운동성당)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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